한때 ‘부러우면 지는 거야’라는 말을 많이 했다. 부러움은 사람이 느끼는 여러 가지 감정 중 하나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그런데 ‘부럽다’고 말하는 게 스스로 부족하다는 고백 같아서 쉽게 입 밖으로 내놓기 창피했다.
비교대상은 언제나 많았다. 가까이에 있는 동료, 자신의 일을 멋지게 하면서 사는 친구, SNS에서 보는 익명의 엄마들과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혔다. 나는 다 어렵고 힘든데 남들은 걱정 없이 잘 살고, 뭐든 뚝딱 잘 해내는 것 같으니 괜히 위축이 됐다. 마음을 다잡아도 다음날 아침 SNS에 접속하면 다잡은 마음은 온데간데 사라졌다. 주기적으로 감정이 변했다.
부러움의 근본적이 마음이 뭘까 생각해봤다. 내가 이루지 못한 걸 이룬 사람에게 가지는 마음, 내가 갖지 못한 재능을 가진 사람에게 가지는 마음, 언제나 행복해 보이는 사람에게 가지는 마음, 나보다 풍족해 보이는 사람에게 가지는 마음......
그건 모두 짐작일 뿐이었다. 나는 그들의 진짜 삶을 모른다. 보이는 모습만 보고, 내가 보고 싶은 모습만 보면서 부러워했던 건 아니었을까?
블로그에 남기는 글을 읽고 ‘진짜 부러워요’ 하고 글을 남기는 분들이 있다. ‘직장 다니고, 아이 키우는 엄마가 언제 서평도 쓰고 모임도 할까.’ 같은 마음이었을 거다. 글을 남기는 분들 블로그를 타고 가보면 나도 그분이 부러워졌다. 아이들과 독서하는 기록을 남기는 분, 미라클 모닝을 꾸준히 하는 분, 영어 필사 모임에 참여하는 분, 연봉이 올라 좋다고 하는 분, 책을 내신 분...... 내가 해보지 못한 걸 이미 해본 분들이 많았다.
예전의 나였다면 ‘나만 이렇게 게으르게 사나 봐.’ 같은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괴롭혔을 거다. 아니면 반대로 ‘이미 늦었으니 어쩔 수 없지 뭐.’ 체념했을 거다. 이제는 부럽다는 생각이 들면 내 마음을 먼저 들여다본다.
‘뭐가 부러운 거지?’ ‘뭘 해보고 싶은 거지?’ 같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내가 정확하게 부러워하는 지점이 뭔지 알고 나면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할 수 있게 된다.
부러워, 하고 끝내도 되는 일이면 거기서 끝내면 그만이었다. 부러워, 하는 마음이 든 뒤에 계속 그게 생각난다면 해보자! 마음먹고 실행해 옮겼다.
부캐 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다’는 거였다.
부러움이 부러움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일단 해보자. 부러워할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많다는 건 행운이다.
계속 나를 긴장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니까. 그리고 그런 마음이 든다는 건 그만큼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는 뜻이기도 하지 않을까.
부러운 감정을 나쁘게 받아들이지 말고 기꺼이 즐겨보자. 나는 멋진 사람들을 발견할 때마다 부러워서 미치겠다. 그리고 좋아서 미치겠다. 나도 해보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리고, '내가 할 수 있을까?' '나도 해보면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한껏 기대에 부푼다.
당장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지 못하더라도 꾸준히 했을 때 어제와 다른 내일이 찾아온다는 경험이 쌓여서일까. 지금 하고 있는 글쓰기와 지갑 프로젝트가 어떤 미래를 만들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나는 그저 묵묵히 하루를 채워간다. 여전히 앞날이 두려우면서 궁금하고, 순간적으로 무기력해질 때도 있다. 성공과 실패, 그 무엇도 짐작할 수 없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끝까지 가보지 않으면 어떤 결과를 얻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 『재밌어서 만들다 보니』, 한주희, 미디어 창비
시작했다가 멈췄다고 해서 포기한 게 아니다. 다시 새로운 걸 찾아서 할 수도 있고 멈췄다가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 그러니, 부러워만 하는 마음을 숨기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걸 지금 시작해 보면 어떨까. 시작을 해야 끝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