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부터 시작된 목의 통증은 오른쪽 어깨를 타고 팔로, 손목으로 내려왔다. 그것만도 고통스러웠는데 왼쪽 손목에는 결절종까지 생겼다. 한의원에서 침을 맞으면서 통증을 버텼다. 몸이 아프니까 평소와 별다르지 않은 아이들의 투정과 요구에 나도 모르게 자꾸 욱했다.
눈치 보는 아이들한테 미안해서 억지로 몸을 움직여 놀아주다 보니 통증은 잘 낫지 않았다. 몸이 아프니 의욕이 사라지고, 기분은 가라앉고, 지금 하는 모든 일들이 힘들게 느껴졌다.
일하는 엄마가 되고 나서 직장인으로서의 '나'와 엄마로서의 '나'가 자주 부딪쳤다. 퇴근과 동시에 직장인 모드 OFF, 엄마 혹은 개인적인 '나' 모드 ON, 빠르게 전환되면 좋을 텐데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종종 직장 일을 집으로 끌어들이거나, 집안일을 직장으로 가져가게 되었다. 아이들이 기다린다는 생각에 마무리하지 못한 일을 두고 퇴근할 때, 엄마와 헤어지기 싫다는 아이들을 억지로 떼어 놓고 출근할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둘 다 놓치기 싫어서 스스로를 괴롭혔다. 그러다 완전 방전 상태가 되어서야 겨우 '나'를 위로하기 위해 애썼다. 임시방편이었다. 바로 펑 터지지 말라고 급하게 막아두는.
열심히 살아야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내 삶의 몫을 살아야지. 직장에서도, 아이들에게도 인정받아야지. 여력이 된다면 남편에게도 부모님에게도 괜찮은 아내, 괜찮은 자식이 되어야지.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책임을 스스로에게 지우느라, 그걸 낑낑대고 이고 가느라 힘들어하는 내 마음은 모른 척하면서 살 때가 많았다.
다섯 살 아이는 다섯 살이라서, 열한 살 아이는 열한 살이라서 힘들다. 나이 터울이 있다 보니 각자의 눈높이를 맞추려면 몸을 두 개라도 모자랐다. 아이들에게 ‘엄마 힘들어.’라고 말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참았다. 몸이 아파도 아이들 밥을 챙기느라 몸을 일으켰다.
부캐로 모임 활동을 하면서 시간 분배나 감정 분배는 가장 중요한 문제로 다가왔다. 육아와 직장일만으로 벅차던 시간에 ‘모임’이 들어오니 빈틈이 아예 없었다. 즐겁자고 하는 일인데 이렇게 힘들면 금세 포기할 것 같아서 다시 일상을 들여다봤다.
그때 깨달았다. 내게 가장 필요한 일은 멈추는 순간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내는 거였다. 직장에서도 육아에서도 굳이 내가 아니어도 괜찮은 일들이 분명히 있다. 모든 일들을 다 내가 해야 한다는 책임감, 그걸 다 하지 못했을 때 따라붙는 죄책감 때문에 스스로를 더 힘들게 하고 있었다.
무기력해지는 순간조차 열심히 살려고 아등바등하지 말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땐 아무것도 하지 말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그 순간에 집중해보자.
멈추자. 그래야 다시 힘을 낼 수 있다.
다 잘할 필요도 없고, 당연히 다 잘할 수도 없다는 걸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너무 열심히 살려고 했다.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면서 정작 나 스스로를 챙기지 못했다. 아플 때 아프다고 말하는 게 쉽지 않았다.
앞으로 일 이년만 살고 말게 아니니까 우리 멀리 보자. 다른 사람을 위해 너무 애쓰며 살지 말자. 하고 싶지 않은 순간 그냥 멈춰보자. 그래야 다시 힘을 낼 수 있다.
이제 열심히 사는 인생은 끝이다. 견디는 삶은 충분히 살았다. 지금부터의 삶은 결과를 위해 견디는 삶이어서는 안 된다. 과정 자체가 즐거움이다. 그래서 인생이 재미있다. 앞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뿅 하고 건너뛰고 싶은 시간이 아닌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지. 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하완, 웅진지식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