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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그녀 Oct 20. 2022

당신의 시작을 응원합니다

  “엄마, 또 공부해? 엄마는, 누가 숙제 내주는 것도 아닌데 알아서, 찾아서 자꾸 공부하는 거야? 엄마 정말, 대단하다. 대단해!”      


틈만 나면 노트북과 책을 들고 자리에 앉는 저를 보고 아이가 말했습니다. 아이는 별생각 없이 한 말이었을 텐데 저는 가슴이 콩닥거렸습니다.      


풀타임 직장인으로, 두 아이의 엄마로 하루 24시간을 살아내는 일이 힘들었어요. 늘 아등바등 쫓기며 사는데 늘 ‘내’가 아닌 ‘남’이 중심이 되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아이들 먼저, 집안일 먼저, 남편 먼저, 부모님 먼저, 직장일 먼저, ‘나’보다 우선 되어야 할 사람들이, 일이 얼마나 많던지요. 


그게 엄마의 삶이라는 게 싫었어요. ‘나도 꿈이 있는데, 나도 멋지게 살고 싶은데......’ 같은 생각을 하느라 밤잠을 설치고, 작은 일에도 쉽게 짜증이 나고요.      


아이 이야기 아니면 할 말이 없을까?

아이들이 진짜 나를 괴롭게 했던 걸까?

나는 나 자체로 설명될 수는 없을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날이 늘어갔습니다. ‘언니’들의 이야기를 찾아 읽었어요. 누구나 들으면 알만한 잘 나가는 언니들, 대기업 임원, 방송인, 창업을 통해 성공했다는 언니들의 이야기를 읽고, 그들의 삶을 따라 해 보려고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처음엔 부러웠어요. ‘아이 키우며 어떻게 저렇게 부지런하게, 열정적으로 살 수 있지?’ 그다음에 든 감정은 회피였습니다. ‘나도 아이 봐주는 사람이 있으면’, ‘나도 공부를 더 했다면’, ‘부모님이 부자였더라면’ 하고요. ‘나’의 문제가 아니라 나를 둘러싼 환경의 문제로 돌려버렸어요. 그다음은 체념 상태로 넘어갔습니다. ‘어차피 나랑은 다른 사람들인데...’ ‘쫓아가지도 못할 텐데.’ 하면서요.    

  

그랬던 제가 지금은 아이에게 “엄마, 대단하다!”라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뭐가 달라졌을까요?      


‘인정하기’였습니다.  

    

결혼을 선택한 여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두 아이의 엄마라는 걸 인정하고, 엄마로서의 삶과 직장인으로서 삶을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걸 인정하고, 두려운 마음을 인정하고...... 그렇게 하나씩 인정하고 나니 이런 질문 하나가 남았습니다.  

    

“그럼, 이제 나는 어떡하지?”    

  

출처 : 픽사 베이



이상하지요. 인정을 하고 나니 다음은 오히려 쉬웠습니다. 방법을 찾고 싶어 졌습니다. 

인정한 다음 “망했어.” 하고 자포자기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요.     

 

스스로 인정하고 나니 변하고 싶어 졌습니다.      

본캐로서의 저는 마흔셋, 11년 차 두 아이의 엄마, 19년 차 직장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하루 24시간 중 16시간 남짓을 그렇게 살아요. 매일 반복되는 그렇고 그런 날이었습니다.      


스스로 부캐를 만들고, 모임을 꾸리면서 일상이 달라졌습니다. 더 이상 제게 그렇고 그런 날은 없습니다. 

‘목요일 그녀’라는 부캐로 독서 모임과 글쓰기 모임을 꾸린 지 2년을 채워갑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독서모임 '소심'은 9기를, 글쓰기 모임 '우연'은 10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올해 처음 시작한 필사 모임 '마음' 은 10기가 시작되었고요. 석사 2학기 차 대학원 공부도 함께 병행하고 있습니다.     


하루에 길면 3시간 남짓 ‘목요일 그녀’라는 부캐로 살 수 있습니다. 짧을 수도 있는 그 시간 덕분에 나머지 시간들도 즐겁게 살게 되었습니다.  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일, 좋아하는 일이 뭘까 생각하다가 책모임을 시작했습니다. 그 뒤엔 글쓰기 모임을 시작했고요. 


시작하는 순간에는 늘 두려웠습니다. 제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의심하기도 했고요. 용기를 내서 시작하고 나니 잘하고 싶어 졌습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은 성과보다 과정을 생각하게 해 주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저 스스로’를 들여다보게 해 주었습니다.      


저는 시작은 반이 아니라 끝이라고 생각해요. 시작을 해야 끝을 볼 수 있습니다. 중간에 멈춘다고 포기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잠시 쉼이 필요해 멈춘 거라고 생각해요.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는 걸 지난 3년의 시간이 제게 알려주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제가 할 수 있는 일, 좋아하는 일을 해나갔습니다. 그러는 사이 제 부캐는 점점 더 확장되고, 그 덕분에 본캐로서의 저 역시 같이 성장했습니다.      


제게 부캐는 일상을 단단하게 만들어갈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부캐로 돈을 많이 벌게 된 것도 아니고, 본캐로 사는 삶이 갑자기 쉬워진 것도 아니에요. 그렇지만 또 다른 ‘나’로 살아가는 즐거움을 경험하고 나니 이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졌습니다. 더 나아가고 싶어 졌어요.      


본캐가 아닌 부캐로 사는 즐거움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부캐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거나 부캐 이상의 ‘부업’ ‘N 잡러’로 수익을 올리는 묘책은 저도 잘 몰라요.  대신 ‘누군가가 제 이야기를 읽고 무언가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본캐로 사는 삶이 지루하고, 매일 쳇바퀴 돌아가는 일상이 의미 없게 느껴지고, 자신의 존재감이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분에게, 뭘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는 분에게 제 이야기가 작은 동기 부여가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뭐든 해보자!’ 하는 의욕이 생긴다면, 꾸준히 하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덜컥 시작하게 된다면 더없이 기쁠 것 같아요.

앞으로 나아가는 길 위에서 언젠가 만날 수 있기를 바라요. 


언제나 당신의 시작을 응원합니다.   




   

본캐 본래의 캐릭터를 말한다주로 게임용어로 사용되었지만 요즘에는 원래 자신의 모습을 본캐라 비유해 사용하기도 한다

부캐 자신의 본 캐릭터 외의 캐릭터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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