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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그녀 Oct 14. 2022

멋진 할머니가 되고 싶어졌다

좋아하는 할머니가 몇 분 있다.      


무레 요코의 <<모모요는 아직 아흔 살>> 속 모모요 할머니, 요시모토 바나나의 <<아르헨티나 할머니>> 속 아르헨티나 할머니(유리), 가노도 에이코의 <<딸기색 립스틱을 바른 에이코 할머니>> 속 에이코 할머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여전히 호기심 가득하고 세상 씩씩한 모모요 할머니를 만났을 땐 아흔이 되어도 저렇게 당당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생각했다. 아르헨티나 할머니 유리를 만났을 땐, 따뜻함과 다정함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마녀 배달부 키키>>를 쓴 에이코 할머니를 만났을 땐,  가지런히 정리해 놓은 옷가지와 액세서리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여전히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단정하게 살림을 꾸리는 모습도 잊지 못했다. 닮고 싶게 만드는 할머니들이다.      


최근 좋아하는 할머니가 또 한 분 생겼다. 94세, 그림 그리는 김두엽 할머니다. 할머니는 83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무심코 그린 사과 그림을 보고 아들이 ‘잘 그렸다. 엄마 그림 잘 그리네.’ 하고 칭찬해준 게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아들에게 칭찬받고 싶어 그리다 보니 그림 그리는 할머니라는 수식어를 가지게 되었다.    

 

『그림 그리는 할머니 김두엽입니다』라는 책 속에서 할머니는 ‘여든, 그림 그리기 참 좋은 나이’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고작 마흔을 넘겼으니 이제 시작’이라고 말이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이제 시작, 다시 시작하기에 충분한 나이.   

    

나는 오늘도 또 그림을 그려요. 
내일도 그릴 거예요. 
내년에도 그리고 싶어요.      
그림이 주는 행복이 매우 크기에, 
힘들어도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그림 그리는 할머니 김두엽입니다』, 김두엽, 북로그컴퍼니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멋질까. 매 순간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산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현실에선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좋아하지 않은 일, 하기 싫은 일 사이사이 진짜 좋아서 하는 일 한 가지씩 끼어 넣으면서 살자고 말이다. 

      

사십 대가 된 이후 전보다 자주 할머니가 된 내 모습을 상상한다. 오늘의 일상을 잘 살아가고 싶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다정하고 인자한 모습으로 젊은 사람들에게 미안해하는 모습으로 살고 싶지 않다. 매일 손녀를 보며 노년을 보내야 하는 삶도 싫다( (나의 딸을 양육해주신 엄마에게 죄송하지만).      


출처 : 픽사 베이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 혼자 어디든 갈 수 있고,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할 줄 알고, 여전히 책을 좋아하고, 읽고, 나누면서 살고 싶다. 조금은 까칠해 보이더라도 밉지 않은, 멋쟁이 할머니가 되고 싶다.      


예전엔 나이가 들면 늙어가는 일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내가 본 할머니의 모습이 그랬다. 자식의 도움 없이 살 수 없거나, 자식들의 눈치를 보느라 할 말을 삼키며 사는 삶은 어린 내 눈에도 작은 존재처럼 보였다.    

  

그건 할머니의 잘못이 아니었다. 우리 할머니들은 그런 시대를 살아왔다. 아주 오래 여자는, 엄마는 어때야 한다는 사회적 강요에 자유롭지 못한 시대를 살 수밖에 없었으니 드러내기보다 참는 게 자연스러운 삶이었을 거다. 그 시간을 견디며 자식들을 키우고, 자신의 삶을 일궈 낸 것 자체로 그들은 존경받아야 하지만 그런 삶을 대물림해서 살고 싶지는 않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가고 싶은 곳에 가고, 할 말을 하는 여자들이 늘어나는 건 그래서 반갑다. 우리가 할머니가 되었을 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더 큰 소리로 말하고 웃으며 지난 시간보다 남아 있는 날들을 즐겁게 살아낼 궁리를 할 수 있다면 좋겠다.      


더 열심히 지금의 내 삶을 가꾸고 싶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누구 때문이 아니라,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가장 우선에 두는 삶.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자식들이, 먼 훗날 손녀, 손자가 할머니를 보호해야 되는 대상이 아니라 ‘와, 멋지다 우리 할머니’ 하고 엄지척 해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나’를 멋지게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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