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할머니가 몇 분 있다.
무레 요코의 <<모모요는 아직 아흔 살>> 속 모모요 할머니, 요시모토 바나나의 <<아르헨티나 할머니>> 속 아르헨티나 할머니(유리), 가노도 에이코의 <<딸기색 립스틱을 바른 에이코 할머니>> 속 에이코 할머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여전히 호기심 가득하고 세상 씩씩한 모모요 할머니를 만났을 땐 아흔이 되어도 저렇게 당당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생각했다. 아르헨티나 할머니 유리를 만났을 땐, 따뜻함과 다정함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마녀 배달부 키키>>를 쓴 에이코 할머니를 만났을 땐, 가지런히 정리해 놓은 옷가지와 액세서리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여전히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단정하게 살림을 꾸리는 모습도 잊지 못했다. 닮고 싶게 만드는 할머니들이다.
최근 좋아하는 할머니가 또 한 분 생겼다. 94세, 그림 그리는 김두엽 할머니다. 할머니는 83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무심코 그린 사과 그림을 보고 아들이 ‘잘 그렸다. 엄마 그림 잘 그리네.’ 하고 칭찬해준 게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아들에게 칭찬받고 싶어 그리다 보니 그림 그리는 할머니라는 수식어를 가지게 되었다.
『그림 그리는 할머니 김두엽입니다』라는 책 속에서 할머니는 ‘여든, 그림 그리기 참 좋은 나이’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고작 마흔을 넘겼으니 이제 시작’이라고 말이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이제 시작, 다시 시작하기에 충분한 나이.
나는 오늘도 또 그림을 그려요.
내일도 그릴 거예요.
내년에도 그리고 싶어요.
그림이 주는 행복이 매우 크기에,
힘들어도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그림 그리는 할머니 김두엽입니다』, 김두엽, 북로그컴퍼니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멋질까. 매 순간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산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현실에선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좋아하지 않은 일, 하기 싫은 일 사이사이 진짜 좋아서 하는 일 한 가지씩 끼어 넣으면서 살자고 말이다.
사십 대가 된 이후 전보다 자주 할머니가 된 내 모습을 상상한다. 오늘의 일상을 잘 살아가고 싶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다정하고 인자한 모습으로 젊은 사람들에게 미안해하는 모습으로 살고 싶지 않다. 매일 손녀를 보며 노년을 보내야 하는 삶도 싫다( (나의 딸을 양육해주신 엄마에게 죄송하지만).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 혼자 어디든 갈 수 있고,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할 줄 알고, 여전히 책을 좋아하고, 읽고, 나누면서 살고 싶다. 조금은 까칠해 보이더라도 밉지 않은, 멋쟁이 할머니가 되고 싶다.
예전엔 나이가 들면 늙어가는 일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내가 본 할머니의 모습이 그랬다. 자식의 도움 없이 살 수 없거나, 자식들의 눈치를 보느라 할 말을 삼키며 사는 삶은 어린 내 눈에도 작은 존재처럼 보였다.
그건 할머니의 잘못이 아니었다. 우리 할머니들은 그런 시대를 살아왔다. 아주 오래 여자는, 엄마는 어때야 한다는 사회적 강요에 자유롭지 못한 시대를 살 수밖에 없었으니 드러내기보다 참는 게 자연스러운 삶이었을 거다. 그 시간을 견디며 자식들을 키우고, 자신의 삶을 일궈 낸 것 자체로 그들은 존경받아야 하지만 그런 삶을 대물림해서 살고 싶지는 않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가고 싶은 곳에 가고, 할 말을 하는 여자들이 늘어나는 건 그래서 반갑다. 우리가 할머니가 되었을 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더 큰 소리로 말하고 웃으며 지난 시간보다 남아 있는 날들을 즐겁게 살아낼 궁리를 할 수 있다면 좋겠다.
더 열심히 지금의 내 삶을 가꾸고 싶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누구 때문이 아니라,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가장 우선에 두는 삶.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자식들이, 먼 훗날 손녀, 손자가 할머니를 보호해야 되는 대상이 아니라 ‘와, 멋지다 우리 할머니’ 하고 엄지척 해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나’를 멋지게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