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책을 읽으려고 노력하지만 어느 날엔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순간이 있다. 억지로 책을 펼친 뒤 몇 분이 지나도록 같은 페이지만 보고 있는 날도 있다.
책뿐일까. 간절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책이 읽기 힘든 날은, 다른 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한 시기일 수 있고 머릿속에 다른 걱정이 가득 찬 순간 일 수도 있다.
블로그 댓글에 읽고 싶은데 너무 정신없어서, 너무 바빠서 요즘 책을 못 읽겠어요, 하고 글을 남기시는 분들이 있다. 물론 나도 종종 그런 순간을 마주한다. 생각해 보니 그땐 책 읽기 뿐 아니라 다른 무엇도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말 그대로 무기력한 상태.
너무 힘들 때 힘이 되는 게 책이기도 하지만 가끔은 독이 되는 게 책이기도 했다. 책 속의 이야기들은 남과 비교하지 말라고 하지만 책 속의 사람들은 이미 비교 불가할 만큼 무언가를 이룬 사람 같고, 그들이 하는 말은 뭐해! 부지런히! 열심히! 너도 해 봐! 하고 채근하는 것처럼 들릴 때가 많았다. 그럴수록 주눅이 들어 책을 읽는 즐거움보다 괴로움이 커졌다.
책을 읽기 힘든 시간이 온다면 잠시 책을 내려놓아도 괜찮다. 대신 자신의 일상이, 감정이 계속 엉키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보면 좋겠다. 매일 의욕에 넘치는 삶을 살 수는 없으니까 우리에겐 잠시 멈추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잠시 숨을 고르며 지금 자신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게 무엇인지 들여다보면 어떨까. 그 순간의 마음을 그대로 인정하자. 누구도 나를 나만큼 위로할 수 없다는 걸 나는 육아를 하면서 깨달았다. 아이에게 받는 위로, 남편에게 받는 위로 말고 나 스스로가 나의 마음을 돌봐주고 위로해주는 일이 ‘나’를 지키는 가장 큰 힘이라는 걸 알게 됐다.
만약에 가만히 있는 것조차 불안하다면 그럼에도 책으로 위로받고 싶다면 본인이 원래 좋아하던 분야의 책 말고 전혀 다른 분야의 책을 펼쳐 보는 걸 추천한다. 나는 책을 읽는 게 취미인 사람이지만 그 책들 중에서도 최후로 남겨두는 분야가 있다. 요리책. 책이 잘 읽히지 않는 날이나, 마음이 복잡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에는 레시피가 가득 담긴 요리책을 펼친다. 레시피와 사진으로 가득 찬 페이지를 한 장씩 넘기다 보면 ‘아, 이 요리는 해 보고 싶다’ ‘아 먹어보고 싶다’ 같은 생각이 들면서 차츰 가라앉았던 감정이 조금씩 제자리로 돌아오고는 했다.
얼마 전부터는 ‘요가’를 시작했다. 수련원에 가는 건 아니고 아침 루틴의 하나로 평일엔 하루 20분 남짓, 주말엔 40분 정도 영상을 보며 요가를 하고 있다.
요가를 하면서 배운 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아침마다 영상 속 요가 선생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매트 위에서 짧은 몇 분의 시간 동안 하루치의 위로를 미리 받는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돼요.”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자신의 호흡에 집중해 보세요.”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이면서 무리하지 않기.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기. 내면의 나에게 집중하기.
어떤 날은 잘되고 어떤 날은 넘어지고. 어떤 날은 1분도 버티는데 어떤 날은 호흡 열 번도 못 채우고 그래요." 할 때마다 멀었다고 생각한다. 좋았던 날도 완벽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열심히 수련하고 요가원을 나서러 땐 세상 무서울 게 없었다. 나는 점점 강해질 거니까. 포기하지 않는 것만이 재능이니까. 아주 느리더라도 뒷걸음질 치지는 않을 테니까.
- 『단정한 실패』, 정우성, 민음사
요가는 요즘 내게 매일 말해준다. "괜찮다고. 안 돼도 괜찮다고. 지금 안 된다고 내일도 안 되는 건 아니라고. 오늘 된다고 해서 내일 또 된다는 보장도 없다고. 그러니 괜찮다고. 괜찮다."라고.
요가를 하며 내 안의 나를 다스리는 법을 배운다. 요가는 무엇이든 계속하다 보면 점점 잘하게 될 거라는 믿음을 갖게 해 주었다. 그러니 지금 잠시 멍한 시간을 보내고 있더라도 괜찮다. 내일은 좋아질 수도 있으니까.
정체기가 찾아온다고 해서 ‘나 지금 너무 무기력해’하고 숨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구에게나 정체기는 찾아온다. 당신이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왔다는 증거다. 그러니 ‘나 진짜 열심히 잘 달려왔군, 이제 잠시 나를 쉬게 하면서 다음을 위해 준비해볼까?’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곧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들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