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정희 <<사춘기 문예반>>을 읽는 밤
내 글쓰기 역사는 초등학교 3년 때부터 시작되었다.
학교 신문에 실릴 글을 모집한다는 걸 보고 무슨 이유 때문인지 덜컥, 글을 써서 내버렸다.
그것도 거짓말이 잔뜩인 글을. 그런데 그 글이 또 덜컥 신문에 실려버렸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그 글의 내용은 대충 이랬다.
'엄마는, 언니와 나를 차별한다. 언니는 학원도 여러 군데 보내면서 나는 한 군데도 보내주지 않는다.
엄마는, 자꾸 공부를 강요한다. 그런 생활이 나는 너무 힘들다. '
담임선생님은 그 글을 본 뒤에 나를 따로 불렀다.
그렇게 힘들었구나. 그런데 선생님이 볼 때 넌, 글 쓰는 재주가 있는 것 같아. 그러니 힘내.
같은 말을 한참 하셨다.
하, 세상에. 난 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창피해서 숨고 싶어 진다.
어찌 되었든, 그 이후 나는 막연하게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고등학교에 입학해선 문예반이나 다름없던 교지편집부에 들어갔다.
학교에서 주최하는 혹은 시에서 혹은 대학에서 주최하는 백일장에 열심히도 나갔다. 장원은 아니었지만 차상, 차하, 장려, 같은 상들을 계속 받았다.
기억에 남아 있지 않지만, 아마 그 글들 역시 사실보다 거짓에 대해 쓰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때 나는, 모범생인 척, 아무 근심 걱정 없는 척도 잘하는 아이였으나 내가 쓰는 글은 늘 어둡고 음침했다.
그때 문학 선생님은 그런 나를 바로 알아봐 주셨다. 그때는 마음을 의지할 곳이 없어서 선생님께 참 많이 의지했다.
그런 시간들이 모여 문예 창작을 전공하고, 소설을 쓰겠다고 습작을 하고, 사람들과 모여 합평을 하면서 나의 이십 대를 보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내가 소설가가 되지 못했다는 결과가 아니라, 지금의 '나' (그래도 그럭저럭 괜찮은 어른이 되려고 노력하는)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나는 믿는다.
불우하다고 생각했던 어떤 한 시절을 그래도 삐뚤어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힘이 바로 그 '글쓰기'에 있었음을 안다.
『사춘기 문예반』을 읽는 내내 마음이 쿵쾅거렸다.
지나 간, 지나 온 그때의 시간들이 속절없이 떠올라서 한 페이지도 쉽게 넘길 수가 없었다.
폭력적인 아버지 때문에 집을 나간 엄마, 그런 부모 대신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선우.
부유한 가정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의 힘듦을 애써 감추면서 살았던 미수.
자신의 삶도 불행하다 여겼지만 글을 통해 끊임없이 아이들을 위로하고, 아이들의 편에 서 주려고 노력했던 문예반 문 선생님.
그리고 각자 삶의 무게를 힘들게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는 문예반 아이들.
십 대를 지나고 그것도 한참을 지나고 그 시절을 떠올리는 건 때론 막연한 추억, 왜곡된 향수, 같은 것들을 불러일으킨다. 시간이 지났으니 그때의 나를 일일이 증언해 줄 누군가도 없으니 적당히 미화해도 그리 죄책감이 따라붙지 않는 기억들.
때론 너무 강렬하게 남아있거나 너무 흐릿해서 진짜 있었던 일인가 헷갈리는 기억들.
이 책은 그 기억들을 하나하나 되살려 그래, 그 시간들은 그랬었지, 그래도 잘 컸다 나. 뭐 이런 생각들을 하게 했다.
그리고 그때의 친구들. 친했거나 좋았거나 별로였거나 했던 모든 친구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모두 안녕할까.
지독하게 외로웠다. 미수가 진짜 내 곁을 떠나는구나 싶었다. 본래 혼자라고 생각해 왔고 앞으로 혼자 죽어갈 거라고 생각했던 내가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게 좀 우습지만 정말로 그랬다. 나도 미수처럼 누구든 붙잡아 주절거리고 싶어 졌다. 대우받아야 할 내 오랜 슬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내 슬픔으로부터 강해지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슬픔은 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맞설 때 진정한 모습을 갖추게 되는 거니까. 그래야 내 슬픔도 대우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선우가, 미수가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 혹은 어떤 어른이 될까를 상상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때의 그 감정이 슬픔이었는지, 분노였는지, 외로움이었는지 명확하게 보일 때가 있다.
그러려면 어른이 된 뒤에 나는 그때의 나보다는 조금 더 성숙하거나 덜 외로워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 아이들이 그런 어른으로 자라길, 자랐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되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온전히 혼자가 되는 경험도 하고 떠나간 누군가를 그리워도 하고, 그때 서로가 느꼈던 감정들이 소중해지는 경험도 하면서.
소설의 중간쯤에 그런 장면이 나온다.
문예반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익명으로 글을 올리라고 한다.
아이들은 익명의 힘을 빌려 하나 둘 글을 올린다.
왕따를 당한 적이 있던 경험에 대해, 특기도 의욕도 없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는 자신의 감정에 대해, 부모님의 이혼에 대해, 술을 마시고 들어와 엄마를 때리는 아빠에 대해, 엄마의 집착 때문에 힘든 시간들에 대해.
그때의 나 역시 비슷한 고민을 하면서 자랐다.
생각해보면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어서 혼자 안으로 숨기면서 그 이야기들을 마치 다른 아이의 이야기인 듯 글로 표현해 냈던 것 같다.
혹시 너희들 중에는 '차마 꺼내지 못한 슬픔'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지금은 안 써도 된다. 하지만 기다릴게. 그때가 언제든 말이다......
어쩌면 '글'이란 건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라도 자신의 감정을, 기분을, 마음을 드러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그 순간엔 너무 힘들어서 차마 꺼내지 못한 일들도 글로 써내면서, 언어로 바꾸면서 치유되는 경험.
많은 아이들이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다면, 혼자여도 조금은 덜 외롭지 않을까.
<<사춘기 문예반>> / 저자 장정희 / 출판 / 서유재 / 발매 2019.05.30.
덧붙임
1. 글이 길어지면 소설의 줄거리를 주저리주저리 말하게 될 것 같아서 여기서 그만.
지금 힘든 시간을 건너가고 있는 아이들이, 그런 힘들 시간을 지나온 어른들 모두에게 위로가 될 이야기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추천하고 싶은 마음에 줄거리는 최대한 적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2. 소설을 읽고 나면 싸웠던, 혹은 애틋했던 그 시절의 친구들이 마냥 그리워질 수도 있다. 추억을 더듬거리느라 한동안 멍해질 수도 있다. 그래도 그 시절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느끼게 되지 않을까.
3. 결국, 이렇게 주저리 덧붙임 글이 길어지는 이유는, 아직 내가 이 이야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에게 조금 더 친절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미안한 마음에. 그래도 이만큼 자라줘서 고맙다는 대견함 때문에.
그리고 그 시절 함께 보낸 그 친구들의 안녕을 기도하는 마음까지 덧붙여서.
4. 진짜 마지막으로,
작가의 말을 덧붙이지 않을 수가 없어서.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크고 작은 상처를 글쓰기의 질료로 삼아 서로를 보듬고 일어서고자 애쓰는 문예반 소녀들이다. 이들은 아픔과 고통을 멍에처럼 짊어지고 살아간다.
나는 작품 속 문예반 소녀들처럼 글쓰기가 오늘의 청소년들에게 자신을 지켜 나가는 힘, 타인의 고통과 아픔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손길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
언젠가 한겨울 시골 장터에 갔다가 촛불을 넣은 깡통을 깔고 앉아 시린 엉덩이를 덥히고 있는 노인을 봤다. 뭉클했다.
촛불 한 자루의 힘!
글쓰기가 혹한의 겨울 같은 세상을 건너갈 아이의 가슴에 온기 어린 한 자루의 촛불이 되어 주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