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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그녀 Sep 15. 2019

새로 시작하는 육아

- 괜찮은 척 말고, 진짜 괜찮아지고 싶다는 바람

새로 시작하는 육아는, 게다가 나 마흔에 하는 육아는 상상보다도 더 가혹했다.

우선 체력이 떨어지는 걸 느꼈고, 첫 아이 출산 때보다 쉽게 감정이 오락가락했다.

첫 아이 마음을 달래느라 갓 태어난 아기를 돌보는 일에 소홀해지게 되는 것도 나를 힘들게 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토요일에 저녁에 출산을 하고 월요일 오전에 퇴원을 해서 그날 오후부터 큰 아이 유치원 픽업을 갔다. 조리원은 애초에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산후조리 역시 딴 나라 이야기였다.

큰 아이는 내 옆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나는 그런 아이의 마음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터울이 좀 있으니까 수월하겠다.”

“언니가 동생 예뻐하겠네.”

주변 사람들의 말은 모두 틀렸다. 적어도 예윤이의 경우에는.   

   

6년 동안 혼자 받던 사랑을 나누는 일이 아이에겐 버거운 일 같았다.

다른 사람은 몰랐을지 모르겠지만 엄마인 나는 아이의 그 마음이 너무 가까이에서 느껴졌다.

     

아이를 낳고 내게 주어진 시간은 3개월.

출산휴가 3개월이 끝나면 바로 복직을 해야 했다.

마음이 급해졌다.      


예윤이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학교에 입학하기 전 어떻게든 아이 마음이 조금이라도 안정되기를 바랐다. 나의 바람대로 라면 예윤이가 동생을 예뻐하고, 엄마가 동생 우유 먹이는 순간엔 잠시 기다려 줄 줄도 알고, 혼자 책도 읽고, 엄마 옆에서가 아니라 혼자 잘 노는 아이여야 했는데 그건 그냥 엄마인 나의 바람일 뿐이었다.     

 

결국 둘째가 태어난 지 한 달도 채우지 못하고 모유수유를 포기했다.

예윤이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분유를 먹이면 내가 없어도 아빠 혼자 충분히 아이 케어가 가능하다는 생각도 반 이상 차지했다. 예윤이 때는 그렇게 안 나오던 모유가 둘째가 태어난 뒤에는 빵빵하게 차올랐다. 매일 뭉치는 젖가슴을 부여잡고 아이 몰래, 남편 몰래 훌쩍이다가 결국 손들고 말았다.      

모유를 먹이지 않는다고 해서 신생아에게 엄마가 필요하지 않은 것도 아니어서 내 몸은 순간이동을 하듯 이리저리 바삐 움직였고, 그럴수록 울적해졌다.

감정이 회복되는 시간도 점점 길어졌다.      

아무도 나에게 혼자 감당하라고, 힘들어도 참으라고 강요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엄마니까.     


예윤이는 다시 아기가 된 것처럼 굴었다. 동생이 젖병에 분유를 먹으면 자기도 젖병에 우유를 달라고 했고, 동생을 안아 재우고 있으면 자기는 왜 안 안아주느냐고 속상해했다. 아침이면 엄마랑 채민이는 집에 있는데 왜 자기만 유치원에 가야 하느냐고 울었고, 유치원 차도 타고 싶지 않으니 꼭 엄마가 걸어서 데리러 와야 한다고 부탁했다.      


잠을 자는 걸 포기하고, 혼자 하는 외출을 포기하고, 두 아이에게 매달렸던 출산휴가 기간 3개월은 휴가라고 하기에는 너무 짧았고, 버거웠다.      


신랑은 육아 참여도가 높은 편이기는 했지만 아이들은 자주 아빠보다는 엄마를 찾았다.

아이들이 잠든 틈을 타서 갖는 짧은 시간만이 유일한 자유의 시간이었으나 그 마저도 쉽지 않았다. 둘째는 수시로 깨서 울었고, 둘째가 깰 때마다 첫째까지 같이 일어나 “잠을 못 자겠잖아!”하고 울어댔다.   

   

옆방에서 편하게 자고 있는 신랑이 이유 없이 미워지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휴가 중이고, 신랑은 출근을 해야 했으니 어떻게든 혼자 두 아이들 다 데리고 자면서 괜찮은 척하려고 애썼다.      


거울을 볼 시간도 없었지만 화장실에 오갈 때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는 게 싫었다.

둘째를 낳고 푸석해진 피부는 둘째 치고, 내 표정이 내가 보기에도 우울해 보였다.

매일 괜찮은 척했지만 자주 괜찮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괜찮은 척이 아니라 진짜 괜찮아지고 싶어 졌다.

억지로 짓는 미소가 아니라 진심으로 환하게 웃어주고 싶어 졌다.

아이들에게, 출근하는 신랑에게, 그리고 ‘나’에게.      


내 마음이 달라져야 한다는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 지금도 모유수유를 포기했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서 다시 선택하라고 한다면, 그래도 내 선택은 같았을 거다. 모유수유를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둘째에 대한 미안함 혹은 엄마로서의 모성 충만함을 조금 더 오래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첫 아이에 대한 미안함은 그대로 오래 지속됐을 거다.

퉁퉁 불어 딱딱해지는 젖가슴을 매일 밤 마사지하며 눈물을 흘렸을 거고,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나 우울했을 거다. 모유수유가 모성의 척도인 양 들이대는 시선들을 과감히 무시하고 우선 엄마인 ‘나’부터 챙겨보자.


* 그래도 다시 돌아간다면 일주일이라도 산후조리원은 꼭 들어가겠다.

그게 ‘나’를 먼저 챙기는 일이란 걸, 길고 가늘게 쭈욱 해야 하는 게 육아라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팔목, 발목이 시려 추위에 약한 사람이 된 뒤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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