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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그녀 Oct 19. 2019

도망치고 싶은 순간에 찾아오는 것들

고등학생 때부터 내 꿈은 소설가가 되는 거였다(라고 적으면서 왜 슬프지). 

작문 시간에 소설책을 몰래 읽을 때면 괜히 짜릿했고, 문장을 어떻게 완성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소설 비슷한 걸 쓰기도 했다.      


무슨 계기였는지 모르겠지만, 고등학생 되면서 책 읽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무작정 서점에 가서 시간을 보내면서 마음에 드는 책을 찾아 읽었다. 

하필이면 그때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게 소설이었다. 

이해도 잘 못하면서, 닥치는 대로 소설을 읽으면서 우울했던 그 시간을 견뎠다.     

 

문예창작과에 진학한 뒤로 소설가에 대한 꿈은 점점 커졌다. 

글을 쓴다는 게 80% 정도는 재능이 필요하다는 건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래도 썼다. 그리고 읽었다. 그때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면서 읽는 일도, 쓰는 일도 점점 우선순위에서 멀어져 갔다. 

더구나 소설 읽기는 잠도 모자라는 시기에 어쩐지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니, 소설을 읽으면서 점점 아무런 감흥을 느낄 수가 없었다. 단어와 문장만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엄마가 된 뒤 느끼는 좌절감, 피로감, 우울함을 극복해 내기 힘들었다. 

그때부터는 소설을 잠시 내려놓고 다른 분야의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아이를 잘 키우고 있나’

‘나만 이렇게 힘든 건가’

‘나는 잘 지내고 있는 건가’

같은 끊임없는 질문들에 대한 답이 필요한 시간들이었다.     


확실한 건, 그때의 책 읽기가 결혼 전 소설을 중심을 읽던 내 세계관을 완전히 뒤바뀌게 한 계기가 되었다는 것.      

엄마들이 쓴 엄마들의 이야기는 공감이 되고, 위로가 되어 주었다. 

사는 곳도, 얼굴도, 하는 일도 잘 모르지만 ‘엄마’라는 공통점 하나면 충분했다. 

육아를 하면서 방향을 잃을 때마다, 내가 뭐 하고 있는 건지 무너질 때마다 심리학, 인문서는 조금씩 내 마음의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토닥여주었다.

  

자는 시간을 아껴서라도 읽고 싶었고, 책을 읽는 동안은 누군가 ‘그래, 다 알아. 이해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물론 책을 읽는다고 해서 갑자기 내 마음이 너그러워지거나, 육아가 행복해지는 기적을 경험할 수는 없었다. 여전히 내 앞에 놓인 현실로 돌아오면 자주 미쳐 버릴 것 같은 답답함과,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찾아왔으니까. 

그럴 때면 읽었던 책 내용은 다 잊어버리고, 위로받았던 시간들은 다 잊어버리고 다시 마음이 어두워지는 시간들이 찾아왔다. 그런 시간은 오래도록 계속 반복됐다.

      

그래서 쓰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나면 한 줄이라도 책 속에서 기억하고 싶은 문장을 찾아 적어두었고, 

책을 읽고 위로받은 내 마음속 이야기를 적어두었다.

엄마들이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은 책들은 따로 정리해 블로그에 올리기도 했다.      

내가 쓴 리뷰를 읽고 ‘좋아요’를 눌러주는 사람들, 공감한다고 댓글을 달아주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역시, ‘엄마’라서 느끼는 공감의 힘이 크다는 걸 다시 알게 된 경험이었다. 

익명의 엄마들을 통해 받는 위로의 힘이 ‘나만 그런 거 아니야. 괜찮아’ 다독여주었다.     

 

책을 읽고 쓰는 글이 쌓이면서 조금씩 내 마음도 안정을 찾아갔지만, 어쩐지 그건 온전히 나를 표현하는 글은 아닌 것 같아서 아쉬움이 남았다.      


긴 글을 쓸 마음의 여유도 시간적인 여유도 없어서 시작한 게 그림일기 쓰기였다. 

그림이라면 사람의 형태도 잘 못 그리던 내가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다. 

아마, 어떻게든 그 시간들로부터, 어두운 마음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것 같다.      


처음엔 선 그리는 연습부터 했다. 

책을 구입해 도형 그리기, 얼굴 그리기 같은 기본적인 그리기 연습을 했다. 

처음엔 ‘이게 뭐야. 이렇게 못 그리다니’ 싶어서 블로그에 일기를 올리면서도 이걸 올려도 되나 싶었고, 글을 마지막엔 꼭 ‘이렇게 못 그리다니’ 같은 말을 붙였다.      


어느 날, 그림일기를 본 친구가 이런 댓글을 달아주었다.      


‘못 그린다는 말 하지 마. 그 그림들로 인해서 충분히 너를, 네 감정을 표현하고 있잖아. 그거면 충분하지.’     


그 댓글 한 줄이 내게 큰 힘이 되었다. 


‘그래, 내가 지금 그리고 쓰는 일이 누군가에게 내 보이고 싶은 거라면 그만하자. 그게 아니라 그냥 나를 위한 거라면 계속해보자.’      


그림일기를 쓴 지 일 년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내 그림실력은 그리 늘지 않았다. 

그림판으로 그리거나 프로그램을 사용해 그리는 사람들이 부러웠지만 내 능력 밖의 일이었다. 여전히 연필이나, 사인펜을 이용해 손으로 그린다. 여전히 선은 삐뚤빼뚤하고, 같은 얼굴을 그려도 매일 다른 형태로 표현되고, 내가 그리고 싶은 것과 그려지는 것이 완전히 다르기도 하지만 더 이상 ‘이렇게 못 그리다니’ 같은 생각은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많이 봐줬으면, 댓글도 좀 달아줬으면 하는 생각도 언제부턴가 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나를 위해 쌓여가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 큰 힘이 됐다. 그 시간들을 잘 건너가고 있구나 스스로 느끼는 만족이 커져 가고 있었으니까.      


어두운 감정을 계속 담아두고만 있는 ‘엄마’들에게 책을 읽는 것과 그림일기 쓰기를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건 적어도 책을 읽는 것과, 그림일기를 통해 얻어지는 위로는 배신하지 않는다는 걸 경험했기 때문이다.      


꼭 그게 아니더라도, 자신에게 맞는 방법으로 자신을 표현할만한 걸 찾아서 시도해보길 권한다.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나를 지켜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아무것도 없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을 지나가 그다음을 계획하고 상상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게 되었다.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천하에 게으른 나도 했으니까.

옆에 있는 아무 책이라도 펼쳐보자. 굴러다니는 종이에 아무거나 그려보자. 마음속에서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간질거리는 느낌, 분명 있을 거다.      


그거면 충분하다. 

시작했다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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