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녀의 삶을 응원하며
엄마와의 사이가 좋은 사람들이라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친정 엄마가 알아서 척척 육아에 살림을 도와주는 경우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그렇지 못했다.
사이가 좋지 않다기보다는 나 스스로 엄마에게 받은 상처가 크다고 생각하면서 자랐기 때문에
어른이 된 뒤에도, 아이를 낳은 뒤에도 오랜 시간 엄마를 미워했다.
내가 해준 게 얼만데, 내 아이 정도는 기꺼이 돌봐 줘야 되는 거 아니야? 란 이기적인 생각도 많이 했다.
나를 키운 건 엄마가 아니라 ‘나’ 스스로였다고 생각했다.
내가 필요할 때 늘 내 옆에 없던 엄마였다.
엄마는 늘 자신이 가능할 때 곁을 내주던 사람이었다.
이런 생각들은 오랜 시간 나를 괴롭혔다.
그럼에도 첫 아이를 낳고 결국 손을 내밀 수밖에 없었다.
직장을 그만둘 수 없었고,
신랑은 나와 엄마의 사이를 그럭저럭 괜찮은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까이에 사는 친정엄마를 두고 베이비시터를 구하는 게 있을 수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결국 그렇게 엄마는 꼬박 6년을 큰 아이의 주 양육자가 되어 주었다.
드디어,
엄마에게 자유를 주고 나 역시 조금 홀가분한 마음이 되었을 때
찾아온 둘째 소식을...
엄마에게 전하기가 가장 어려웠다.
둘째를 낳고 3개월의 출산휴가가 끝났을 때
내 옆에는 역시 엄마가 있었다.
그 사이 어깨 수술을 하고, 몸이 약해진 엄마여서 첫 아이를 맡길 때보다
마음이 더 무거웠지만 엄마는 그래도 조금 더 해보겠다고 선뜻 손을 내밀어주셨다.
두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엄마에 대한 미움은 커졌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했다.
아이들이 잠든 밤,
아이들 머리맡에 앉아서 잠든 아이들을 보면서
‘엄마는, 너희들에게 적어도 짐이 되지는 않을게’ 여러 번 다짐했다.
내 마음속 엄마와 화해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엄마가 나의 아이들을 돌봐주어서가 아니라,
엄마가 된 뒤 잃어버린 ‘나’를 찾아 헤매면서
나보다 더 어린 나이에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던,
여자로서의 엄마 삶이 보이기 시작했다.
참 외로웠겠다.
남편이랑 사이가 좋지도 않고, 이혼 후엔 자식 하고도 떨어져서, 돈도 별로 없어서,
사랑받지 못해서 ‘엄마’도 참 여자로 사는 게 외로웠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이런저런 유혹에 참 쉽게 넘어갔겠구나.
누군가 옆에 다가오면 뿌리치기 힘들었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내 마음속 엄마를 이제 놓아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여전히,
엄마가 어렵고 쉽지 않지만
그런 엄마라도, 힘들 때 손 내밀 수 있는 곳에 있다는 게
내미는 손을 늘 잡아 주는 것에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엄마로서의 삶이 아니라,
여자로서의 그녀의 삶이 지금보다 조금 더 행복해 지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