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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솜 Jun 17. 2024

내가 왜 여기서 살지?

전원주택 구입기

나는 전원생활 3년 차다. 이 집을 구입한 지는 8년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전원생활을 꿈꾼다. 언제나 꿈과 현실은 거리가 있는 법, 전원생활은 원하지만 막상 걸리는 게 많아 선뜻 결정하기는 어렵다. 사람일이란 삶이 원한다고 해서 다 되는 것도 아니고 지금 살고 있는 삶이 원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살고 있다고도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즉 내가 전원생활을 그렇게까지 동경한 것도 아니었지만 조경분야에 일을 했으니 전원생활에 아주 관심 없었다고 할 수도 없다.

 

옛 어른들이 말씀하셨다. 집과 결혼은 인연이 있어야 한다고....

 

그 해 4월 남편은 34년 직장생활의 마침표를 찍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 제대하고 첫 직장이었고 은퇴를 하면 다시는 직장에 다닐 생각이 없다 누누이 말했으니 마지막 직장이 된 것이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은퇴의 의미는 상당히 복합적이다. 은퇴 후 너무 많은 일이 주어지면 '그동안도 얼마나 열심히 일만 했는데..'라는 생각이 들 것이고, 일이 없으면 '무료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지?' 하는 걱정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한 두해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준비와 상관없이 현실이 녹록지 않았다. 현실의 문제는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 하는 것이 더 문제였다.  평생을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던 생활을 했는데 하루 종일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당시 남편은 '눈 뜨면 움직인다'를 되뇌었다. 이는 회사에 가지 않아도 게으르게 생활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을 것이다. 최소한 거실 소파에 앉아 TV채널이나 돌리지는 않으려 노력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TV앞 소파는 항상 남편의 자리였고 그 자리는 점점 푹 꺼져갔다. 


아파트 생활이라는 것이 뻔하지 않은가? 밥 해 먹고 치우는 일이 대부분이다. 평생 차려진 밥상만 받아왔으니 부엌일은 해보지 않아 전혀 모르고 할 마음도 없었다. 대신 남편은 청소하는 것을 좋아했다. 청소를 마치 직장일 하는 것처럼 열심히 했다. 아파트는 청소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중 좋아하는 당구를 치기 위해 당구장 가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그런 시점에 우리가 전원주택을 한채 샀다는 표현보다는 집이 우리에게 왔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뒤늦게 키워야 할 골치 아픈 아이 하나를 키우게 되었다.




 나는 '집은 엄마와 같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최고의 집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동네를 사랑하자며 부동산에는 아예 관심을 두지 않았다. 우리 동네는 신도시였다. 처음에는 공사장을 방불케 하는 동네 분위기며 자리잡지 못한 녹지 등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5~6년 지나니 인프라가 갖추어지고 10년 가까이 되니 주변에 심은 나무들이 자리를 잡아 삭막한 분위기를 벗어나고 있었다. 나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카페도 가고 백화점을 드나들며 화려한 물건들의 눈요기하는 것이 너무나 즐거웠다. 대형 책방이 있어서 하루종일 책을 봐도 누구도 관여하지 않으니 세상에 이런 천국이 있나 하는 정도였다.  


사람이란 참으로 간사한 것이 시부모님을 모시고 대가족이 살던 시절은 모두 잊어버렸다. 내가 언제 시집살이를 했던가? 삼시세끼 식사 준비, 생일, 제사, 명절....  일 년 내내 빡빡하게 돌아가는 일정으로 집안일에 허덕이며 아이들 키우던 일상은 먼 옛날로 느껴졌다. 아이들마저 결혼하니 부부만 남아 새벽 6시 반 아침 식사 준비가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이었는데 그마저 여유로워졌다. 


신도시는 더 이상 삭막하지 않았다. 백화점 쇼핑몰 대형서점과 같은 인프라가 자리를 잡으며 즐길거리 먹거리 놀거리가 넘쳐났다. 결혼한 딸이 가까이 이사 왔다. 손녀를 보니 할 일이 더 많아졌다. 






3월 초 동생의 생일이었다. 세 자매가 모여 점심을 먹었다. 식사 후 분위기가 이상했다. 동생들은 언니인 나에게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차을 마시며 동생들은 말했다. 춘천에 있는 회사 연수원을 나에게 사라고 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냐고 했더니 그 집을 살 사람은 언니가 가장 적당하다고 했다. 그 이유가 첫째 남편이 은퇴할 것이니 여유로운 시간이 있을 것이고, 둘째 남편이 부지런하니 집을 잘 관리할 것이며, 셋째 은퇴 자금이 있으니 금전적으로도 가능할 것이라는 것이다. 지방에 전원주택을 갖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로망이지만 막상 집을 갖는 것은 큰 부담이다. 자금이나 운영이 힘들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동생네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회사에는 사원들 복지를 위한 집이 있었다. 주말이면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하루씩 묵었는데 직원들에게도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동생은 가끔 친정식구들을 이곳으로 불렀다. 나도 몇 번 가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회사가 팔리는 바람에 이 주택도 함께 팔렸다. 형제들은 이 집을 좋아했다. 그대로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기에는 너무 아쉬워했다. 형제 중 누구라도 샀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용도도 그렇고 관리도 그렇고 가격도 그렇고 누구 하나 선뜻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동생들은 내가 샀으면 하는 바람으로 나에게 홍보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감탄하지만 동생은 수완이 정말 좋다. 사실 이제 자기 소유도 아니고 모르쇠해도 되는데 마치 부동산중계소 직원이라도 된 양 이 집이 얼마나 좋은지 신이 나서 설명했다. "언니 이 땅은 사람으로 보면 장동건이야, 얼마나 번듯한지... 이 집에 인연이 있으려면 3대가 공덕을 쌓아야만 차지할 수 있는 복 있는 사람이야. 지금까지 관리하던 양소장  있지?  처음 여기 왔을 때 집도 없었고 부인이 교통사고 나서 잘 걷지도 못했는데 지금은  아파트 사고 부인도 건강해져서 형편이 상당히 좋아졌대. 공기 좋고 경치 좋고 얼마나 좋아? 은퇴 후 사는데 최고지. 생활비도 얼마 들지 않아."  


옛날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다. 집과 결혼은 인연이 있어야 한다고.....


정말 이 집을 놓치면 크게 후회할 것 같았다. 

"뭐 하나 사놔야 돈이 없어지지 않지. 부동산이 최고야."

"은퇴하면 뭐 할 거야 소일거리가 있어야 하잖아." 

....   

우리는 우리가 사야 할 이유를 끊임없이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집이 나에게로 왔다.  


내가 전원주택을 갖게 되다니...    어찌 되었던 기분은 좋았다. 




그날부터 우리 부부는  바빠졌다. 시간만 나면 와서 보고 전원생활에 감탄했다. 공기 좋은 곳에서 하루 저녁 자고 가면 너무 좋았다. 마당이나 거실에서는 북한강이 보이고, 다양한 수상놀이를 볼 수 있었다. 수상스키 바나나 보트도 지나갔다. 아침이면 강에는 물안개가 피고 그 속으로 작은 배가 지나가는데 정말 그림 같았다. 고깃배였다. 수자원보호지역이어서 낚시는 할 수 없으나 주민 중에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허가받은 어부가 있다는 것이다. 주말이면 강변 자전거 길에는 울긋불긋 차려입은 사람들의 자전거가 쉼 없이 달렸다. 이곳이 우리나라 4대 아름다운 자전거길의 하나라고 한다. 


주변에는 펜션이 즐비했다. 전에 이곳에서 묵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스치듯 보아온 것이 내 소유가 되고 보니 달라 보였다. 사람들이 하나하나 보였다. 자전거 타고, 수상스키 타고, 레일바이크 타고... 내 눈에는 모두가 노는 사람들이었다. 35년 가까이 아침 6시 반이면 아침을 먹고 출근해야 하는 남편만 보아왔는데 세상사람들은 이렇게 놀면서 살고 있었구나 하고 놀랐다.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니 그 풍광에 금방 익숙해졌다. 나도 그 풍경의 일원으로 놀면서 하루하루 정신없이 지나갔다.



이 집에는 거실에 "不二齋"라는 액자가 걸려있다. 


不二란  "현실 세계는 여러 가지 사물이 서로 대립되어 존재하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모두 고정되고 독립된 어떤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근본은 하나"라는 뜻으로 상태 분별이 없고 절대 차별이 없는 세계를 나타내는 불교사상이다. 齋는 "정신을 맑게 치성드리는 곳"이다. 보통 경건하게 제사를 드리거나 조신하게 공부를 하거나, 소박하게 안식하는 건물에 붙여지는 이름이다. 나는 집의 이름을 "불이재"로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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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二란  "현실 세계는 여러 가지 사물이 서로 대립되어 존재하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모두 고정되고 독립된 어떤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근본은 하나"라는 뜻으로 상태 분별이 없고 절대 차별이 없는 세계를 나타내는 불교사상이다. 齋는 "정신을 맑게 치성드리는 곳"이다. 보통 경건하게 제사를 드리거나 조신하게 공부를 하거나, 소박하게 안식하는 건물에 붙여지는 이름이다.



이 집 덕분에 남편의 은퇴생활은 화려했다. 남편은 수시로 형제들 친구들을 불러 실컷 놀았다. 텔레비전에서나 보아온 부러워하던 바비큐 파티가 현실이 되었다. 결혼한 딸들과 사위들 첫 손녀가 가장 수혜자였다. 사람들이 모이면 어찌하든 내가 일이 많아지기 때문에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오지 못하게 해도 딸들은 한 번이라도 더 오고 싶어 했다. 특히 코로나로 아파트에서 갑갑하게 육아휴직을 보내는 딸들은 호시탐탐 올 수 있는 기회만을 엿봤다. 모두가 즐거웠다. 손녀는 잔디밭에서 뛰고, 나무 아래서  유아용 삽으로 모래장난을 했다.  층간소음으로 스트레스받으며 사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생활환경이었다. 






그러나 누군가 말하더라. 별장과 첩은 공통점이 있다고... 구입하기 전에는 좋아 보이지만 일단 손에 들어오면 골칫덩어리라고...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안방에서 물이 샜다. 그러나 그것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내 집이라고 생각했을 때와 그냥 그렇다고 들을 때와는 나에게 와닿는 느낌이 달랐다. 문제가 있으면 우선 내가 몸이 움직여야 하고 그럴 때마다 돈이 들어가니까...


집은 언제 지어졌는지 알 수 없으나 아주 허술하게 지어진 듯했다. 10년 전 동생이 구입해서 그때 당시 많은 돈을 들여 리모델링을 하였다고 한다. 겉으로는 그런대로 괜찮은 주택으로 보였다. 그러나 기초 골조나 배관이 오래되어서 상하수도 보일러 등에 많은 문제가 나타났다.  주인이 살면서 관리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때그때 땜빵식 해결이었다.  외관상으로도 가장 마음에 거슬리는 것은 리모델링 당시에 유행하던 나무데크로 바닥과 난간 처마를 덮은 것이다. 데크는 벽돌이 주재료인 이 집의 아름다움을 잘 살리지 못했다. 또한 10년 가까이 지났기 때문에 수명이 다하여 여기저기 삐걱거렸다.  


지금까지는 문제가 있을 때마다 팔아버릴까 아니면 고쳐서 다시 쓸까를 고민하다 이번에도 다시 고치기로 결정을 했다. 지금부터 고치는 과정,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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