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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솜 Jun 10. 2024

나무처럼 자라는 건물

신도시 고층 아파트

“엄마, 버스에서 내렸는데 무서워서 걸어갈 수가 없어요.

정류장으로 나와주세요.”     


퇴근하고 돌아오는 딸아이의 전화를 받고 정류장으로 나갔다. 딸아이를 데리고 불빛도 없는 공사장을 가로질러 집으로 왔다. 딸아이는 집에 오는 내내 투덜거렸다. 요즘 얼마나 좋은 곳이 많은데 어떻게 이렇게 이상한 동네에 집을 샀냐는 것이다. 딸은 엄마 아빠가 사는데 편리하고 남들 보기에도 번듯한 곳에 살았으면 좋겠다고 투덜거렸다. 그럴 때마다 우리 부부는 딸들에게 말했다. 빨리 결혼해서 너희들이나 비싸고 좋은 아파트에 살라고 하며 입을 막아버렸다.  

    

이제까지 남편과 내가 태어나서 살아온 지역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은 핑계였을지 모른다. 직장이 있는 강남의 집값은 이미 상상할 수 없이 올랐다. 만약 우리가 강남에 집을 산다면 지금 사는 집의 반정도 되는 공간에서 살아야 한다. 그런 도전을 하기에 너무 늦었고 태어나고 형제들이 사는 지금 이곳이 좋았다. 그러던 중 마침 우리 지역에 신도시 개발계획이 발표되었다. 


신도시가 계획된 지역은 허허벌판에 높은 첨탑의 교회 한 채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멀리 보이는 도시고속도로와 한편에 이 동네 아이들이 다니던 중학교가 눈에 들어왔다. 초기에 분양받아 시간만 나면 우리가 살 아파트가 얼마나 지어졌나 보기 위해 들렸다. 도로와 건물이 지어질 자리가 구분되고 건물이 앉을자리에는 기초공사를 하고 건물은 높이높이 올라가면서 점점 형태가 갖추어졌다. 드디어 아파트가 다 지어졌다. 허허벌판에 우리 아파트만 세워지고 주변이 모두 공사장이었다. 


처음 27층에서 바라본 신도시는 삭막했다. 벌판 가운데 서 있는 높이 솟은 교회의 첨탑은 더 높아 보였다. 부동산마다 이미 계획된 신도시개발계획의 지도가 널려 있었다. 길에도 부동산에서 나온 파라솔에서 사람들을 불렀다. 전철역, 정류장과 같은 기반시설 백화점, 아웃렛과 같은 상업시설이 표시되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건물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났다. 마치 건물이 나무처럼 자라는 거 같다고 생각했다. 인근에 다른 아파트들이 지어지고 큰길을 따라 몰을 갖춘 대형 쇼핑센터가 들어서고 그 안에는 책방을 비롯해서 요즘 인기 있는 제품의 상점들이 한꺼번에 채워졌다.     


 우리 집 거실에서 처음에는 멀리 하천도 보이고 호수도 보였다. 점점 건물로 채워지면서 시선을 올려보면 앞 건물의 꼭대기가, 시선을 내려다보면 옆 아파트의 정원만 보였다. 빌딩숲이라는 표현이 실감 났다. 다행히 뒤쪽은 산이어서 푸른 녹지를 볼 수 있었다.   


처음 신도시라고 이사 왔을 때와는 상전벽해되어 별천지가 되었다. 


        




우리는 이 모습에 익숙하다.      

신도시의 경계가 정해지면 기존에 살던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건물은 철거된다. 깨끗하게 밀어버린 땅에 마스터플랜대로 도로를 내고 수도 전기 하수 통신선 등 지하공동구를 설치한다. 그다음 건물을 짓기 시작한다.     

 

우리나라는 신도시 개발은 이런 식이다.  신도시가 개발되기 전 그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가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내 의지로 지역을 옮기는 것도 아니었는데 내가 살던 곳이 사라지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살던 곳을 떠나간 사람들, 신도시에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집에서 마음을 잃어 집에 대한 경제적  가치에 더 매달리는 거 같다.


내가 살아온 반백년 동안 어느 시절도 집 문제로 들썩이지 않은 적이 없었다. 정부에서는 주거 안정을 위해 계속 신도시를 개발하고 아파트를 지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정권이 바뀌고 30년 동안 주거의 숫자가 가구 수만큼 많아져도 주거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지금도 집을 찾아 헤매고 있다.

 

집이란 초가삼간이라도 내 집에 들어오면 우주를 가진 거와 같이 편안하고 행복해야 한다. 

대궐 같은 집에 살면서도 내 집을 바라보기보다 머릿속에는 더 좋은 집 더 비싼 집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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