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수리 - 2, 리모델링 전 생각할 것
미국 친구집에 갔다.
친구가 목욕을 하라고 하면서 성냥을 들고 집 뒤로 가는 것이었다. 어디 가냐고 따라 나갔더니 온수보일러를 켜러 간다고 한다.'온수보일러를 성냥불로 켠다고? 그것도 온수통이 있는 집 뒤편으로 가서?'. 2019년 미국 왔는데 지금이 19세기인가 의아했다.
친구가 이 집으로 이사 올 때 새로 지었다고 들었다. 미국의 집들은 도로에서 안쪽까지 길이는 같은데 도로를 접하는 폭으로 집의 크기가 결정된다. 친구의 집은 미국에서 그리 큰 집은 아니었으나 앞뒤로 정원이 있고 앞뒤로 거실이 있는 우리가 보기에는 꽤 큰 집이었다. 집을 새로 지으면서 보일러 시설을 전에 사용하던 것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었다. 친구는 '여기는 새로운 것으로 바꾸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아'라고 하며 웃었다. 불편하지 않나?
그렇지만 집주인이 원하는 부분에서는 확실하게 주인의 취향을 적용했다. 여느 미국 집과는 다르게 바닥을 나무로 깔아서 마치 우리나라 마루 같았다. 미국에 왔을 때 신을 신고 안에 들어오는 것이 싫어서 한국식으로 인테리어를 했다고 한다.
유럽의 도시는 볼거리가 많다. 현재의 로마 거리에서 2000년 전 로마시대 건물에서부터 현대 건축물까지 볼 수 있다. 한 건물에서도 건축양식이 다른 경우도 있다. 건물을 필요한 부분만 고쳐가며 한 시대를 넘어 다음 시대까지 사용하고 있다. 이런 다양한 건물들이 모여 만든 도시경관을 보기 위해 세계에서 관광객이 유럽으로 모여든다.
로마에서 자동차가 울퉁불퉁 돌길을 달린다. '그리스가 철학 수학 민주주의 와 같은 인문학이 발달한 것에 비해 로마는 정치 법률 토목 건축과 같은 실질적 학문이 발달하였다. 그 가운데에서도 토목의 발달로 유럽 전역에 길을 만들었다. 그 길을 통해 전쟁으로 영토를 넓히고 세금을 걷어들이고 사람들이 모여들어 경제가 발달하였다. 그래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다....' 도로 하나만 보고도 끝없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우리는 그저 불편한 돌길을 달렸을 뿐인데....
이야기는 옛 건물이나 유적이 제대로 남아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랜 세월의 힘을 견디지 못해 넘어지고 쓰러진 유물이나 유적을 보고도 이야기는 남아 있다. 로마의 팍스로마노를 보면서 2000년 전을 상상하면 더 재밌다. 무너진 돌더미라서 더 실감 난다. 만약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해 놓았다면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없어 재미가 덜 했을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의 상상력은 더 활발해진다. 역사가 있는 폐사지(廢寺址)의 발굴 현장을 보고 역사적 사실을 상상하는 일은 즐겁다. 부엌의 아궁이 유적이나 무심히 굴러다니는 돌 함지박을 보고 한창 번성했을 당시 이곳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갔나를 가늠할 수 있다.
경제 발전 시기 국가에서는 곳곳에 다목적 댐을 건설하였다. 다목적이란 이 댐을 건설함으로 해서 여러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뜻이다. 가뭄과 홍수를 관리하고, 농사에도 도움이 되고, 물을 저장했다 낙차를 이용해서 전기를 생산하고, 넓은 호수의 수자원을 이용한 관광산업을 활성화시키고...
많은 부분이 성공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경제발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마을이 잠기면서 마을의 이야기도 함께 물속으로 사라졌다. 가끔 안동에 가면 안동댐 임하댐을 지날 때가 있다. '저 물속에 잠긴 마을길, 고목들, 고건축과 서적 등 집집마다 보관된 오던 많은 물건들... 문화재급의 물건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일부 건축물은 한 곳에 모아 다시 마을을 만든 곳도 있지만 그곳에 살았던 많은 이야기는 얼마나 남아 있을까? 다목적이라는 정부의 방침에 빠른 경제발전에 묻혀 역사문화부문이 소홀하지 않았나 해서 아쉬움이 남는다.
시간이 포함된 문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집에도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가 있는 집, 나는 그런 집을 원한다.
우리 집이 언제 지어졌는지는 모른다. 경치 좋은 북한강가에 자리 잡은 우리 집은 처음에는 펜션이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대학생들이 MT를 갔다. 이곳은 학생들이 MT장소로 적합했다. 별 건축규제가 심하지 않던 시절 조적조로 허술하게 지어졌다. 이 집을 사서 고쳐 가면서 우리나라 펜션업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다.
사실 우리나라 법에 펜션은 없다. 펜션이라고 영업을 하는 많은 숙박시설이 법적으로는 농어촌 민박이다. 이 집을 구입하고 알았다. 농어촌 민박은 농어촌 지역의 소득 향상을 위하여 살고 있는 집에서 숙박을 할 수 있도록 허가는 내주는 취지의 법이다. 살고 있는 집에서 남들이 숙박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옛날이야기에서 나오듯이 '하룻밤 묵어갈 수 있겠소?' 해서 허락을 받아 공짜고 자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영업을 하는 한 숙박의 기본을 갖추어 놓아야 한다. 지금은 농어촌 민박이 현대식 숙박시설을 갖추고 펜션으로 영업하고 있다. 우리가 펜션을 할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집을 고치면서 집의 특성을 살리기로 했다.
다음에 집은 회사 연수원으로 사용되었다. 전 집주인은 집을 회사 직원들의 복지를 위하여 구입했다. 지금도 동네 사람들은 우리 집을 연수원이라 부른다. 전 주인은 이 집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했다. 집의 중앙에 H 빔을 설치하여 구조를 보강하였다. 그 위에 2층을 올렸다. 2층에는 화장실과 싱크대가 구비된 방 4개를 증축했다. 주말이면 신청한 회사의 직원들이 가족과 하루를 즐기다 갔다. 이 집에 한 번 다녀 간 사람들은 집을 너무나 좋아했다고 한다.
나는 이 집이 많은 사람들에게 쓰이기를 원한다.
옛날부터 엄마는 말씀하셨다.
집에는 사람들이 오가야 한다고...
이러한 생각을 갖고 리모델링을 시작했다.
집의 모양이나 구조 못지않게
집의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이야기는 큰 자산이다.
나는 그 이야기 위에 새로운 이야기를 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