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始原은 동굴
북극곰이 겨울잠을 자기 위해 바위틈 작은 굴로 들어갔다. 곰은 그곳에서 거의 움직임 없이 6개월을 산다고 한다. 먹이가 부족한 겨울을 견디는 방법으로 곰은 동굴에서의 겨울잠을 선택했다. 먹이가 풍부한 가을 동안 충분히 에너지를 보충하고 겨울 동안은 움직이지 않고 먹이를 먹지도 않고 심지어 배설을 하지 않고 최소한의 에너지만을 소비하며 동굴에서 시간을 보낸다. 동굴에서 겨울잠을 자는 동안 뱃속에 있는 새끼를 출산한다. 봄이 되면 곰은 새끼와 동굴 밖을 나온다.
동굴은 동물에게 안식처다. 추위와 다른 동물의 침입을 막아준다. 한 때는 인간도 살아남는데 동굴에서의 생활이 큰 도움이 되었다. 동굴은 오랫동안 인간의 주거지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이 동굴에서 살았던 시간을 한동안 잊고 살았다.
넓은 초원에 비를 맞으며 얼룩말 무리가 서 있다. 비가 지나가고 태울 듯한 햇볕이 내리쬔다. 비를 피할 곳 열기를 식힐 곳은 초원 어디에도 없다. 숲 속 나무를 헤치고 돌아다니던 인간은 동굴을 발견했다. 그곳은 비바람을 피할 수 있었고 강한 햇볕을 막아줬다. 입구를 막으면 다른 동물로부터 안전했다. 무엇보다 동굴 안은 따뜻했다. 인간은 오랫동안 동굴에서 살았다.
동굴이 처음부터 인간이 살기에 적합한 것은 아니었다. 바닥을 평평하게 만들고 벽을 갈고닦았다. 동굴 가운데 구덩이를 파고 돌을 모아 쌓아 올렸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사람들은 둘러앉았다. 인간은 이곳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갔다. 인간은 이미 사냥할 줄을 알았다. 낮에는 밖에서 사냥을 했다. 밤이면 한편에서 잡아 온 짐승의 배를 가르고 가죽을 벗기고 뼈와 살을 발랐다.
동굴에는 가족이 모여 살았다. 아버지 어머니 작은 아버지 큰아버지 가족은 함께 사냥을 하고 먹을 것을 나눴다. 여자들은 아이를 키웠다. 어머니는 아이들을 위해 잠자리를 마련했다. 바닥을 평평하게 고르고 그 위에 부드러운 풀더미를 깔고 아이를 뉘었다. 한쪽 구석에는 먹을 것도 저장해 두었다. 먹다 남은 새끼 곰의 고기는 다음에 다시 짐승을 잡을 때까지 그들에게 요긴한 식량이었다.
한동안 살았던 인간이 동굴을 떠났다. 인간이 비운 동굴에는 곰이나 승냥이가 주인으로 들어왔다. 동굴에는 점토와 먼지가 가득했다. 천장에서는 돌부스러기가 떨어졌다. 동물들은 인간과 같이 동굴을 가꾸지 못했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인간의 한 무리가 다시 동굴을 찾았을 때는 그 속에 전 주인에 대한 말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동굴은 인간이 지은 것이 아니라 자연에 의해 생긴 것을 인간이 찾아낸 것이다. 자연이란 스스로 그러할 뿐 그저 존재하는 것이지 인간을 위해 만든 것은 아니다.
고고학자들이 동굴을 찾은 것은 인간이 떠나고 몇 만년이 흐른 뒤였다. 다행히도 산은 매우 견고해서 동굴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 인간이 살았던 모습을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다행히 고고학자들은 동굴의 흙 속에서 작고 거친 석기 몇 점을 발견하였다.
그 석기는 끝을 뾰족하게 만든 돌칼이었다. 고고학자들은 원시인들이 이 칼로 짐승의 배를 가르고 가죽을 벗기고 뼈와 살을 발랐다는 것을 알아냈다. 돌칼은 단순한 도구였지만 인간이 사냥하고 사냥한 동물을 자신들이 필요한 용도에 맞게 손질하는데 유용했다.
한 무리의 인간이 함께 사냥하고 숙식을 해결하고 아이를 돌보았던 장소, 그곳은 동굴이었다.
동굴에서는 많은 유물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고고학자들은 동굴에서 발견된 유물로도 많은 것을 알아냈다. 만약 경험이 없는 일반 사람들의 눈이라면 그저 한낱 돌조각에 불과한 것도 고고학자들은 이 파편 속에서 미래의 망치와 칼과 톱과 송곳을 찾아냈다. 고고학자들은 칼처럼 날이 선 것, 언저리가 톱날처럼 들쭉날쭉한 것, 끝이 뾰족하고 날카로운 것 등을 분류할 수 있었다. 이것들은 오늘날 우리가 쓰는 연장의 조상임이 분명했다.
대개의 경우 발굴 작업이란 위에서 아래로 계속해서 내려간다. 처음에는 제일 위층을 파고, 아래로 아래로 역사의 밑바닥으로 깊숙이 파내려 간다. 고고학자는 마치 책을 끝 페이지에서부터 읽는 것과 같이 역사를 읽어나갔다. 그 역사책은 마지막 장에서 시작해서 맨 처음 장에서 끝이 났다. 가까운 조상에서 먼 조상으로 읽어갔다. 인간들이 몇 번이나 동굴을 버리고 떠났다가는 다시 몇 번에 걸쳐 동굴을 다시 찾았는가 알게 되었다.
동굴은 원시인에게는 생활공간이었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상상의 공간이다.
동굴 발굴작업은 일만년 전 인간의 조상을 유추하는 흥미로운 일이다.
등불을 들고 동굴 안으로 들어가 보자.
바위 복도는 차차 좁아진다. 천정에는 물이 뚝뚝 떨어진다. 지하수의 흐름으로 불빛을 받아 동굴 안을 비춘다. 누군가가 외친다. '저기 좀 봐' 가까이 다가가 보니 벽 위에 검은 빛깔과 빨강 빛깔의 들소가 보인다. 놀란 우리는 한동안 그곳에 서 있다. 조금 전까지 움직였을 것 같은 생생한 들소의 모습이다. 동굴에는 원시인들이 그린 그림도 남아있었다.
몇 발자국 더 들어가니 동물의 탈을 쓰고 춤을 추는 그림이 있다. 그림에는 사람이 들소의 탈을 쓰고 춤을 추고 있다. 원시인들은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곰을 잡으면 곰을 잡아 경건하게 상좌에 놓고 곰을 위해 곰의 시체를 에워싸고 춤추고 노래를 부른다. 곰의 뒤뚱대는 걸음걸이를 흉내 내기도 한다. 춤은 현대인에게는 오락이나 예술 중 하나다. 원시인들이 예술에 대한 애정으로 혹 위안으로 춤을 추었다고 할 수는 없다. 원시인들의 춤은 의식이다. 원시인에게 춤은 이상한 동작으로 마술을 걸고 숨은 요술의 힘으로 대초원 속에 있는 들소를 불러 내려고 애쓰는 의식이다. 춤과 노래가 끝나면 곰을 먹기 시작한다.
동굴에서 사는 원시인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이들은 네안데르탈인이나 크로마뇽인이라고 한다.
현생인류(호모 사피엔스)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