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일하고 배우고 가르친다는 것
아버지는 항상 말씀하셨다.
"사람은 어울려 사는 거야."
엄마는 '어울려 산다'라는 말을 싫어하셨다.
"어울리기는 뭘 어울려 살아요? 지 좋은 대로 각자 살면 되는 거지."
아버지가 장손이며 학교 선생님이셔서 집안은 항상 일가친척 친지 동료 등 사람으로 붐볐다.
많은 사람들을 해 먹여야 했던 엄마는 항상 일이 많았다. 엄마의 소원은 식구끼리 오붓하게 살아보는 거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가 되신 엄마는 제일 이해되지 않는 것이 당신이 혼자 지내야 된다는 사실이다. '내가 밥 해 먹였던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 가고 혼자 이렇게 외롭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셨다. 요양원에서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엄마는 즐거워하셨다. 지금도 엄마의 소원은 여러 자식들과 함께 북적북적 식사하는 것이다.
'어울리다'의 뜻은 '여럿이 모여 한 덩어리나 한판이 되다' '함께 사귀어 잘 지내거나 일정한 분위기에 끼어들어 휩싸이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인간이란 말속에는 인간들이라는 의미가 숨어있다. 인간은 결코 홀로 살지 않았다. 만약 인간이 홀로였다면 인간들의 집단이 아니라 제각각 흩어져 살았다면 결코 오늘날과 같은 인간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과 같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발전한 것은 그 옛날부터 인간이 어울려 살았기 때문이다.
매머드가 빙하기를 대표하는 동물로 잘 알려졌지만 빙하기 아닌 시절에도 살았다. 인간이 거주했던 지역에 매머드의 뼈가 다량 발견되었다. 과학자들은 매머드의 멸종 원인이 인간의 사냥으로 추정하고 있다. 매머드 이외에도 대형 포유류가 많았다. 대부분 인간이 진출한 이후 멸종되었다. '인간에 의한 멸종설'은 인간의 과도한 사냥으로 인한 개체수 감소로 알 수 있다. 물론 복합적인 요인이 있을 것이다. 여러 문제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인간이 매머드를 사냥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렇게 커다란 동물을 인간이 어떻게 죽일 수 있었을까?
인간이 채집가에서 수렵가가 되기까지의 몇 천년 사이 돌무기가 상당히 정교해졌다. 인간은 돌로 창칼이나 창끝을 만들기 위해서 적당한 돌을 골라 울퉁불퉁 모가 난 곳을 깎아내고 널빤지 모양을 만든 다음 뾰족하게 날을 만들었다. 이러한 도구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으로 보면 아주 단순한 것도 당시에는 매우 힘든 작업이었기 때문에 도구를 소중히 여겼다. 사용한 도구를 잘 보관했다. 다음에는 더 훌륭한 돌촉을 만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하게 돌촉을 만든다 해도 돌은 역시 돌이다. 매머드와 같은 거대한 동물을 죽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매머드의 표피는 강철과 같이 단단했다.
매머드 같은 거대한 동물을 사냥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이기보다는 '인간들'이었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서로 도왔다. 인간이 서로 협력하지 않았다면 인간은 결코 지금과 같은 문화와 과학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이 혼자였다면 인간은 아직 짐승과 같은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들은 떼 지어 매머드를 쫓아다녔다. 한 자루의 도구가 아니라 몇십 자루의 창이 매머드의 옆구리를 찔렀다. 몇 십 개의 두뇌 또한 쉬지 않았다. 경험이 많은 노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소리 지르며 통제했다. 커다란 매머드를 사방에서 에워싸고 늪으로 몰아갔다. 노인들은 초보자에게 매머드의 어디를 찔러야 쉽게 죽을 수 있는지 알려줬다. 매머드를 꼼짝할 수 없게 만들고 움직일 수 없는 매머드를 죽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사람이 함께해서 좋은 점은 서로 배우고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선가 이어받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큰 목수가 되려면 자기 스스로 도끼와 톱과 대패를 발명하고 그 도구의 사용법까지 스스로 생각해내야만 했다면 아마 이 세상에는 한 사람의 목수도 없었을 것이다. 뭔가 선대로부터 배운 후에는 숙련이 필요하다. 숙련이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어느 곳에서나 필요하다. 에베레스트산에 오르고 싶다면 이미 다녀온 사람에게 미리 정보를 알아봐야 한다. 이러한 공부 없이 개인 각자 시행착오를 겪으며 에베레스트를 찾는다면 인간의 수명은 몇 배 필요할 것이다. 인간이 정해진 수명 안에서 이와 같은 발전을 이룬 것은 전 세대의 지식이 다음 세대로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세계는 갈수록 사람이 배워야 할 것이 많아진다. 다른 사람들의 축적된 기술 습득 후에 나의 기술이 발전할 수 있다. 사람이 혼자 살 수 없는 이유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기술자가 아니다. 성장하면서 조상이나 스승에게 배운 것이다.
만약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튼튼한 발톱이 있었다면, 사냥에 필요한 아주 좋은 기술을 갖고 있었다면 더 이상 배울 없었을 것이다. 인간은 날카로운 이빨과, 빠른 달리기 실력도, 멀리 볼 수 있는 시력도 갖지 못했다. 대신 인간은 살면서 알고 있는 노하우를 다른 사람에게 가르쳤다. 이 점이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길을 갈 수 있게 했다.
가르치고 배우면서 발전하는 인간사회는 선사시대도 예외는 아니었다. 천년 간 늙은 사냥꾼들은 젊은이에게 힘든 수렵술을 가르쳤다. 짐승이 땅 위에 남겨 놓는 흔적을 살펴보는 법을 가르치고 어떻게 하면 짐승들이 놀라지 않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가를 가르쳐 주었다. 석기시대 사냥꾼들은 자기가 만든 몽둥이 작은 칼 창칼 등 도구 만드는 방법을 젊은이에게 가르쳤다.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사냥을 하는 남자들만의 일은 아니었다. 여자들 또한 일을 배워야 했다. 집안일을 돌보고 집을 짓고 나무를 베고 옷을 마름질하는 방법을 그들의 선조로부터 배웠다. 어떤 인간의 무리 속에도 노련하게 여러 가지 일을 알고 있는 남녀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들은 오랜 세월에 걸친 노동 생활의 경험을 젊은이들에게 전했다.
인류문명이 이처럼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이 무리 지어 함께 살며 자신이 아는 것을 후손에게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후손은 그들의 선조가 했던 시행착오를 겪지 않아도 됐다.
현대 사회는 어릴 때를 지나면 더 이상 부모에게서 동네에서 배우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부모보다 인터넷의 각종 플랫폼이 그들의 선생님이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한 이 시대, 사람들이 도시로 도시로 가는 이유다. 도시는 볼 것과 즐길 것이 넘쳐난다. 도시가 점점 거대해지고 시골에 사람이 줄어드는 공동화 현상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정책 입안자들은 '도시의 인구를 지방으로 분산시키기 위해서 교통과 통신의 환경을 개선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오히려 지방의 젊은이들이 도시로 몰리는 현상은 전보다 심해졌다.
사람은 사람이 많은 곳에 가야 볼 것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가상공간에서 모이는 인터넷 세상에서는 어떨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