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진화
" 아부 ~~~~ "
" 아 ~~~~~~ "
큰 손녀가 처음 말을 배울 때 할아버지인 남편을 " 아부 ~~~~~ "라 하더니 작은딸 둘째가 또 할아버지를 " 아부 ~~~~ "라고 한다. 할머니인 나는 " 아 ~~~~ "다. 뭔가 나름의 법칙이 있는 거 같다. 가장 늦게 태어나 이제 겨우 돌이 지난 셋째가 할아버지인 남편을 보면 "아빠 아빠"하고 좋아한다. 나에게는 아빠라 하지 않는 것을 보면 분명 남자 여자 정도는 구분하는 것 같다.
은퇴 후 기쁨 중 하나가 손자 손녀 재롱을 보는 것이다. 그중 매일매일 하는 영상통화는 삶의 활력소다. 돌 지난 막내도 이제는 화면만 켜면 벌써 누구인지 알고 호기심을 보인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좋아서라기보다 스마트폰 자체가 아이들에게 신기한 물건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어떤 이유에서건 스마트폰 덕분에 아이들과의 교감이 많아진 것만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스마트폰으로 통화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아이들이 항상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네댓 살이 되면 인사하고 저들의 놀이에 방해되지 않는 범위에서 예의상 통화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 정도로도 만족한다. 화제가 다양하지 않은 노인들과의 통화보다 또래 세계에게 노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나에게는 두 딸이 있다. 큰딸에게 3명, 작은딸이 2명 돌 지난 아이부터 8살까지 다섯 명의 아이가 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복이 많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복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할 일도 많다고 할 수 있다. 딸과 사위들의 육아를 보면서 전에 내가 키울 때 보다 복잡해져서 신경 쓸 일이 많다. 남편과 나는 "자신이 낳은 아이는 낳은 사람의 책임으로 키워야 한다"는 철칙이 있다. 아이들은 자율적이고 다양한 육아 방법으로 잘 자라고 있다. 우리 딸들이 다자녀의 계열에 있는 것을 보면 아이는 키울수록 아이를 좋아하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워킹맘인 두 딸이 도움을 요청하면 가능한 한 달려갔다. 손녀를 보는 일은 자식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자식보다 책임이 적어 온전히 귀여워해 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말 배울 시기 나랑 함께 했던 아이가 말을 잘해 딸들은 나를 3살 전문 육아 할머니라고 좋아한다.
아이의 성장은 신기함의 연속이다. 아이가 눈을 마주치고 웃고 우는 표정부터 옹알이를 하며 소리를 내고 어른들의 표정에 반응을 하면 모든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가 천재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이들은 입술소리부터 배운다. ㅁ이나 ㅂ 이 들어간 엄마 맘마 아빠 어부바를 하는 것은 보통 돌이 되는 시기다. 태어나서 일 년 정도는 뒤집고 기고 서고 걷는 몸으로 하는 시기라면 일 년이 지나면 말을 배우는 시기다. 때문에 두 돌까지가 가장 예쁜 시기다. 말을 하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자신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언어가 중요한 이유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언어는 삶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어는 청산유수로 말하는 기법만을 말하지 않는다.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언어다. 표정이나 제스처 분위기 등이 포함된다. 인간은 어떻게 말을 하게 되었을까?
원시인들의 모습을 보면 가운데 모닥불이 있고 여러 사람이 빙 둘러앉아 있다. 모닥불에 뭔가 굽기도 하고 잡아 온 사냥감을 손질하기도 하고 한쪽에 앉아 도구나 옷과 같은 필요한 물건을 만들기도 한다. 여러 사람이 함께 살면서 언어는 더욱 발달하였다. 언어는 소통이며 교감이다. 홀로 살았다면 언어는 지금과 같이 발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의 첫 언어는 몸짓말이었다. 현생인류 이전 네안데르탈인부터 여러 사람이 협업하며 일을 하였기 때문에 말이 필요했다. 원시인들은 몸짓으로 말을 했다. 몸짓은 말 없는 말이다. 처음에 그들은 마치 개가 머리에서 꼬리까지 온몸을 사용하듯 온몸을 사용해 말을 했다. 다행히 인간은 손이 남과 의사를 통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자르다'라고 말하는 대신 손을 홱 저어 보이고 '달라'라고 하는 대신 손바닥을 펴 보였다. 한 손에 보이지 않는 활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시위를 당기는 시늉을 하면 우리는 활을 쏘는 장면을 연상할 수 있다.
몸짓 손짓에 의한 말은 지금도 남아있다. '그렇다'라고 할 때는 고개를 끄떡이고 '여기' '저기'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인사할 때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 두 손을 벌리고, 눈살을 찌푸리고, 발을 구르고, 껴안기도 하는 행동으로 의사표시를 한다. 말 없는 말은 현대에도 사용한다. 돌이 지난 손녀에게 영상으로 '인사해 봐'라고 하면 고개를 끄떡이고 '깜짝이야'하며 놀라는 표정을 하면 손을 입에 대고 놀라는 표정을 흉내 낸다. 분명 원시인들도 이 과정을 거치며 말 없는 말의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몸짓말은 한계가 있었다. 해가 지고 깜깜해졌을 때 멀리 떨어져 있거나 숲 속과 같이 뭔가 가리고 있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말하는 사람의 몸짓말을 알 수 없었다. 동시에 인간은 여러 지혜를 지니게 되었다. 다른 동물들이 내는 소리에 민감하게 되고 과일의 향이나 시체가 썩는 등 냄새에 민감하게 되었다. 그중 소리는 위험을 알리거나 협업할 때 아주 훌륭한 신호수단이었다. 인간은 위험할 때 좋을 때 소리를 질렀다.
이후 목소리로 의사표시를 도왔다. 부르짖고 외치면서 상대의 주의를 끌고 말을 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언어학자들은 현재에도 남아있는 원시인간의 언어를 찾아내어 언어의 발달과정을 증명하고 있다.
인간의 목소리는 분화되었다. 인간은 목소리로써 서로 자기의 의사를 전해야만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처음에는 혀끝이나 목절이 좀처럼 인간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으나 하나의 목소리가 다른 목소리와 구분하게 되었다. 절규하는 목소리 화가 나서 지르는 목소리가 다르다. 목소리가 분화되고 인간은 마침내 혀 끝으로 발음을 낼 수 있게 되었다. 듣는 사람은 소리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고 말하는 사람은 소리를 지르고 혀로 똑똑한 발음을 낼 수 있었다. 말로 서로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을 익히게 되면서 손짓말은 보조수단이 되었다.
지난주 KBS '다큐 온'에서 인류 최후의 수렵 채집 부족, 하드자와 함께한 3일간의 기록이라는 프로를 방영하였다. 이들은 농사를 짓지도, 가축을 키우지도 않고 정착생활을 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인류가 어떻게 생존해 왔는지 보여주는 살아있는 역사다. 이들의 생활방식은 철저히 자연에 의존한다. 밤이면 장작불을 피우고 부족민들이 함께 모여 야생동물의 공격을 방어하며 잠을 청한다. 여성과 아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공간이 마련될 뿐, 대부분의 부족원은 흙바닥에서 잠을 잔다. 방송은 이들의 치열한 생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고대 언어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스토리와 자연이 담겨 있다.
원시인들은 사냥할 때 그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서로 소통하였다. 사냥에 성공해서 함께 웃으며 떠드는 소리가 그들의 언어였다. 그들의 이름은 독특한 소리와 함께 복잡하고 길었다. 태어날 때 열린 열매가 있으면 열매를 이름으로 하고, 비가 내리는 날씨였다면 날씨가 이름이 된다. 인디언의 이름 중에 '주먹 쥐고 일어서'처럼 태어날 당시 상황을 그대로 붙여 주는 경우가 많다.
인간의 언어는 물건과 신앙의 교환이 함께 이루어진다.
언어는 종족마다 달랐다. 호랑이를 잘 잡는 종족이 있다고 하자. 그들은 사냥에 좋은 화살촉이 필요했다. 좋은 화살촉을 잘 만드는 종족을 찾아갔다. 그들은 호랑이 가죽을 주고 화살촉을 가져와야 한다. 서로 다른 언어로 인해 처음에는 몸짓말로 소통했으나 서로가 서로의 언어를 사용하여 서로의 언어를 배웠다. 그들은 돌아올 때 귀에 익지 않은 언어를 익혀 돌아왔다. 서로 만나고 소통하면서 언어는 발달하였다.
언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사상이다. 이 사상도 서로 석이고 교환되었다. 다른 종족의 신이 자기들의 신과 나란히 자리를 차지하고 앉게 되었다. 많은 신앙 가운데 전 세계를 어우르는 신이 생겨나게 되었다. 신들도 여행을 했다. 새로운 장소에 와서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같은 의미의 신이 다른 이름을 갖게 되었다.
물건과 말과 신앙의 교환은 함께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