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모여 살기 시작한 강가 마을

환호(環濠) 취락

by 풀솜

처음 인간은 씨족사회였다. 씨족사회는 같은 조상을 가진 혈연 공동체다. 이들은 살기 좋은 곳에 집을 지었다. 그곳은 보통 강가였다. 강가는 물을 구할 수 있었다. 강가에서는 사냥에 필요한 돌을 구할 수도 있었다. 시야가 넓게 확보되어 나무가 빽빽한 숲보다 사냥하기도 좋았다. 사냥에 실패하더라도 강에 뛰어들어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다. 평평한 모래밭은 움막을 짓기에도 좋았다. 첫째 움막집이 나타나고 이어 또 둘째 움막집이 나타나고 여러 씨족이 강가로 모여들었다. 강가는 마을을 이루었다. 부락이 되었다. 씨족사회가 부족사회가 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몇 천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부족사회, 인간은 이미 채집하는 대신 농사를 지었고 사냥을 하면서도 움막 옆에 우리를 만들어 작은 동물을 키우고 있었다. 그들은 다음 해 심을 낱알을 보관하기 위해 토기를 구웠으며 능숙하게 불을 사용할 줄 알았다. 그들의 도구는 점점 정교해졌다. 돌을 갈아 묶어서 화살촉으로 사용했으나 동물의 뼈를 가는 것이 돌을 가는 것보다 쉽고 만들어진 화살촉도 더 날카롭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의 삶은 한층 윤택해졌다.


물론 함께 사냥하고 공동으로 사냥감을 나누기도 했지만 점점 소유에 대한 개념이 생겼다. 사냥꾼의 능력에 따라 사냥하는 도구에 따라 노획물의 양이 달랐다. 농사기술에 따라 수확물 양에 있어 차이가 났다. 물물교환이 시작되었다. 수확양이 많은 것을 갖고 다른 부족에게 가서 필요한 물건으로 바꿨다. 의견이 맞지 않아 부족 간에 다투는 일도 생겼다.


춘천 중도에 이들의 생활을 알 수 있는 유적이 발굴되었다.

춘천 중도 청동기시대 환호보존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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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중도 청동기시대 환호보존유적


이곳은 청동기 시대 환호(環濠, 마을을 방어하기 위해 만든 도랑)와 집터가 집중적으로 확인된 구역으로 향후 청동기 시대 유적공원과 춘천 중도 유적박물관 건립 예정이다.(61,500제곱미터)
1967년 의암댐이 만들어지면서 섬이 된 춘천 중도는 예전부터 선사유적지로 알려져 왔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대대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신석기시대 이후 고려~조선시대까지의 매장문화재가 다수 조사되었다. 대부분 청동기시대와 원삼국시대의 유구(遺構, 옛날 구조물의 형태를 파악할 수 있는 흔적)와 8천여 점의 유물이 보고 되었다. 이 구역에서 확인된 둘레 400m 정도의 청동기시대 환호는 강원도에서는 처음 발견된 사례다. 평면의 형태와 마을의 구조, 만들어진 시기 등이 이전에 조사된 평지식 환호와 차별성을 갖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또 춘천 중도에서 발견된 유구 중에서 1/3 이상(1,200여 점)이 청동기 시대 집터인데, 이렇게 많은 주거지가 대규모의 마을 형태로 발견된 것은 매우 드문 사례이다.(춘천 중도 유적지 발굴조사 보고서, 2020. 참조)


환호취락

- 주위에 호를 파서 두른 취락.

- 방위를 위하여 구축.

- 분포 면으로 보아 습지에 이루어진 취락






도시는 보통 강을 끼고 발전한다. 문명의 발상지가 강가라는 점은 강이 인간에게 얼마나 고마운 곳인지 알 수 있다. 강가는 오랜 시간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현대에도 강은 사람들의 식수원이며 교통수단이며 관광자원이다.


춘천시 서북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북한강은 의암댐이 건설되면서 의암호라는 넓은 호수가 생겼다. 의암호 안에 몇 개의 섬이 있다. 의암호가 생기기 전에는 그냥 북한강변의 넓은 취락지였을 것이다. 의암댐이 생기면서 물을 가두다 보니 물이 많아져 섬이 된 것이다. 보통 중도라 하면 이 섬들을 말하는데 위쪽부터 고구마섬 상중도 하중도 붕어섬 이렇게 여러 섬이 있다.


춘천 중도에 선사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있다.


중도의 유구나 유물은 대부분 신석기시대 청동기 시대의 선사시대부터 고려~조선시대까지의 다수의 매장문화재가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특히 1,300기에 달하는 집터는 방어 시설인 환호와 고인돌, 경작지 등으로 구성되어 우리나라 고고학 역사상 최대 규모를 갖는 청동기 시대 유적이다. 길이 400m에 달하는 환호는 강원도에서는 처음 발견되었다.


국가가 형성되기 전 부족사회 역시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마을을 이룬 그들의 취락지 가장자리에는 목책을 설치하고 도랑을 팠다. 이후 목책은 성벽으로 도랑은 해자로 발전하였다. 목책과 도랑은 동물의 침입이나 다른 부족의 침입을 막을 수 있는 방어시설물이다. 발굴조사 시 이러한 방어시설 집터가 발굴되면 당시 살았던 사람들 집단의 규모나 생활상을 추정할 수 있다.


도시는 결국 마을이 확장된 개념이다.

인류문명이 이처럼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이 무리 지어 함께 살며 자신이 아는 것을 후손에게 전해 주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사람을 만나야 마음을 전하고 새로운 문물을 배울 수 있다. 인간이 씨족사회에 머물지 않고 강가에 모여 살며 부족국가를 이루었다는 것은 인류사에 대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인간이 모여 사는 데는 많은 문제도 함께 했다.


인간은 함께 살아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양보하고

무엇을 지켜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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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요시노가리에서 찍어 온 목책과 도랑의 모습



위 사진은 2년 전 일본 규슈 여행했을 때 요시노 가리라는 선사유적지에서 찍은 사진이다. 다른 나라는 선사유적지를 어떻게 보존하는지 보여주는 사진이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기 위해 찍었다.


춘천 중도는 아직 보존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춘천 중도에서 개발과 문화유적 보존의 갈등이 심하다. 레고랜드를 중도에 지으면서 촉발된 갈등이다. 요즘은 국가정원을 만들고자 대대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다. 문화재의 보존과 개발이 대립이 아니라 서로 보완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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