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과 순간(박웅현, 인티앤, 2022)
몇 개의 문구를 뽑아서
책 읽은 감회를 써보려다
그만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인상 깊었던 부분의 귀퉁이를 접어놓았는데
거의 책 절반에 가까웠던 까닭이다.
어떤 곳은 한 장이 통째로 좋았고
어떤 곳은 단어 하나가 곱게 날아와 박혔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눈이 아니라 몸으로 읽은 까닭에
어느 한 부분에 집착하는 것은
글쓴이에 대한,
글쓴이가 옮겨놓았지만
이미 영원이 되어버린
단어와 문장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책은 도끼다', '다시, 책은 도끼다'로
얼어붙은 감수성을 단호하게 깨부순 글쓴이가
이 책의 첫머리에 적은 한 문장.
"늘 찬란해지길 바랍니다."
라는 그 문장이,
도끼로 내리친 얼음호수가
얼마나 찬란해질 수 있는지
새삼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하얀 양장본 겉면에
손끝이 느낄 수 있도록 아로새겨진
윌리엄 블레이크의 말은
제대로 깨진 내 감수성이 나아갈 바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 문장. 딱 하나로
이 책을 마무리하려 한다.
한 알의 모래알 속에서 우주를 보고
한 송이 야생화에서 천국을 보니
당신의 손바닥에 무한이 있고
한순간 속에 영원이 깃든다.
윌리엄 브레이크, '순수의 전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