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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앙마 Jan 09. 2023

우아하다는 착각에 빠진 이들에게

고슴도치의 우아함(뮈리엘 바르베리, 아르테, 2007)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돈과 수완이라는 산소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적인 감정을 아주 미약하게, 또 정말 무심하게 느낀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들은 수위이기 때문에, 죽음은 삶이 진행되는 동안 부당함과 비극적인 참사라는 옷으로 뒤덮여야 하는 것 같았다." - 102p.

'르네'라는 이름을 가진 한 수위가 있다. 부자들이 모여 사는 한 건물의 조그마한 수위실을 아지트 삼아 자신을 숨기고 사는 '은둔고수'다. '고수'라고 지칭한 것은 그녀가 거칠고 무뚝뚝한 모습 뒤로 철학, 예술,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바탕으로 한 지혜로움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건물에 살고 있는 부자들은-여느 부자들이 그렇듯- 속이 텅 비어 있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자신만만하며 잘난 척 으스대고 있지만 정신은 병들어 있고 매너리즘에 빠진 일상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수위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수위가 무슨 철학이야!'라는 생각이라도 할 수 있으면 다행일 정도로.


"우리는 가장 약한 자들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건 우리의 동물적 본성에 아주 끔찍한 모욕이고, 타락이며, 깊은 모순이다." - 77p.

'팔로마'는 그 부자들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소녀다. 하지만 '꽤 총명했던' 탓에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자신을 둘러싼 허위스러운 세상에 염증을 느끼고 자살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물론 조용히 삶을 끝맺을 생각은 없다. 허위스러운 세상의 상징과도 같은 그 건물을 불태움으로써 세상을 한껏 조롱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그러던 팔로마에게 르네의 정체가 엿보이지 않을 리 없다.


"미셸 부인, 그녀는 고슴도치의 우아함을 지니고 있다. 겉으로 보면 그녀는 가시로 뒤덮여 있어 진짜 철옹성 같지만, 그러나 속은 그녀 역시 고슴도치들처럼 꾸밈없는 세련됨을 지니고 있다고 난 직감했다. 겉보기엔 무감각한 듯하지만, 고집스럽게 홀로 있고 지독하게 우아한 작은 짐승 고슴도치." - 206p.

하지만 그들의 직접적인 조우는 한 부자의 죽음 후 이사 온 오주 카쿠로의 등장 이후에나 가능하다. 허위로 가득 찬 공간은 그들에게 일말의 접점도 허용치 않으며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르네 역시 자신의 철옹성에 숨은 체 정체를 숨기기 급급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주 씨의 등장은 극적이다. 이질적인 이방인(부자지만 일본인이다)의 등장은 공간에 균열을 초래하고 모든 이의 관심을 끈다. 뒤틀린 욕망의 시선에서 오주 씨는 동경과 선망의 대상이지만 그건 오직 그가 가진 재력과 독특한 공간의 재구성에서 오는, 즉 겉모습에 대한 호기심일 뿐이다. 그리고 오주 씨 역시 그들의 그러한 호기심과 관심에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다만 르네와 팔로마가 감추고 있는 내면의 깊이와 혼란이 오주 씨의 관심을 끌 뿐이다. 오주 씨는 그들을 이어주는 동시에 자신 역시 그 관계 속으로 들어간다. 소설은 오주 씨의 등장과 동시에 세 사람을 급격하게 소설의 중심으로 끌어올리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 사랑과 우정의 관계로부터 파생될 수 있는 모든 격정을 펼쳐 놓는다.


물론 그 짧은 펼침은 우리 대부분의 삶이 그렇듯 빠르고 가파르게 휘몰아치다가 '끝'에 다다른다. 다만 그 끝은 현상학적인 끝일뿐이다. 뒤늦게 깨달은 해방과 자유, 사랑과 우정은 생각을 바꾼 팔로마에게 이어지고 다시 펼쳐질 씨앗으로 남는다. 마치 겨울철 동백꽃처럼.


"자유, 결심, 의지, 이 모든 것, 그것들은 몽상이다. 우리는 꿀벌들의 운명을 나누어 갖지도 않은 채 꿀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우리 또한 임무를 완수한 다음 죽게끔 되어 있는 불쌍한 꿀벌일 뿐이다." - 349p.
"생은 많은 절망이 있지만, 또 다른 종류의 시간인 아름다움의 몇 순간들도 있다. 마치 음악의 한 소절이 시간 속에 일종의 괄호와 정지를, 바로 여기 속의 다른 곳, '다시는' 속의 '언제나'를 만드는 것처럼." - 480p.

좋은 책은 읽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 소설은 분명 좋은 책이다. 공허한 자본주의의 내면을 고발하며 짜릿함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하면서도, 결국 어찌할 수 없는 게 아닌가 하는 허무함을 느끼게도 한다. 한꺼번에 폭발하는 사랑과 우정의 협주 부분에 이르러서는 웬만한 로맨스 소설을 잊게 만드는 황홀함과 '그로부터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해피엔딩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게도 한다. 어찌 보면 참 발칙한 수준이다.


그래서 더 감미롭게 느꼈다. 저자에게 부탁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팔로마의 20년쯤 후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이 책 나온 지 딱 그 정도쯤 흘러가고 있으니까. 과연 팔로마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또 한 명의 고슴도치가 되었을까. 아니면 과연 '다시는' 속의 '언제나'를 찾았을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글로 다 담지 못하는 게 아쉬운 책이다. 그래서 더 좋은 책이다. 마지막으로 그냥 잊기에는 너무 멋진 문장 2개를 남겨 놓는다.


"예술은 생이지만, 그것과는 다른 리듬을 가졌다." - 222p.
"언어의 황홀도, 그 아름다움도 모르는 영혼이 가난한 자들은 불행하도다." - 2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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