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서 살 것이다(정지돈,워크룸프레스,2019)
이 책.
어렵다.
완전히는커녕 어느 정도 이해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한 페이지를 넘어가는 한 문장, 어지럽게, 아무 데서나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화자와 문장, 독백과 서술. 정신도 없고 도통 뭔 말인지 모르는 구석도 많다. 니체를 처음 접했을 때와 같은 기분이다.
그런데.
묘하게 끌려간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이 책에 만연해있는 정신없고 어지러운 서술 형태의 일부분을 따라간다. 그래. 이래서 정지돈, 정지돈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믿음 없이 사는 건 힘든 일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무얼 믿고 있죠?
우리는 이상이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p.38)
우리는 소통 체계 속의 자폐아다.
우리는 언어를 교환하는 규칙의 세계를 만들고 외부의 체계와 자신의 체계에 동시에 갇힌 이중의 자폐아다.
(존 케이지와의 대화, p.54)
나는 뉴라이트를 지지한 전력이 있는 사람이 대표로 있었던 출판사에서 등단했고 진보 꼰대의 상징과 같은 출판사에서 일했으며 상업주의를 표방하는 출판사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시상식장에 나타났고 상금도 받았지만 다행히 책은 많이 팔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다행일까?
(All Good Spies Are My Age, p.109)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에서 거듭 떠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페이지 상단 왼쪽이나 오른쪽 귀퉁이를 접어 놓곤 한다. 이 책은 위 문구가 적힌 3개 페이지뿐이다. 내 기준에 의하면 적은 편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정확히 어떤 부분이 인상 깊었던 것인지 떠올릴 수가 없다. 맥락 전체의 흐름 속에서 분명 꺼내온 것인데 그 출처와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것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 이 책은 이런 맥락 없는 단절성이 매력인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건, 정지돈이 기존의 모든 소설적 장치를 과감하게 해체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지돈은 이 책의 첫 번째 소설(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와 두 번째 소설(첫 번째와 마찬가지다) '존 케이지와의 대화'에서, memex라는 개념을 반복해서 사용한다. 이 단어는 버니바 부시가 1945년 <디 애틀랜틱>에 기고한 글(첫 번째 소설과 동명의 제목)에서, 급속도로 팽창하는 정보를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의 부재를 지적하며, 자유롭게 기억을 저장하고, 활용하고 공유할 있는 가상의 기기, 즉 개인 기억(memory)을 확장(expend)하고 색인(index)하는 장치, 다시 말해 '우리가 생각한 대로 자유로운 사고와 연상 과정을 지원해 주는 기계'를 통해 구현할 수 있다는 개념을 설명하며 등장했다. 정보의 비선형적 연결을 핵심으로 하고 있는 이 개념은 실제 구현되지는 못했지만 인터넷과 하이퍼텍스트 개념으로 이어져 지금의 '컴퓨팅' 기술의 근간이 되었다고 한다.
사실 우리에게 들어오고 해석하며 재현하는 모든 정보와 상황들은 파편적이고 독립적이다. 소설을 비롯해 모든 글쓰기의 과정은 그런 조각들을 한데 모으고 재구성하여 만들어내는 인위적 서사다. 선택하고, 재편하고, 조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지돈은 묻는다. '진실과 내면, 의미를 A라고 한다면, A에 대해 말하는 것이 A를 구성하는 것 아닌가, A를 말하는 이는 사실 특정한 방식으로 A를 말하는 것을 A라고 말하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은 이상 어떻게 그의 A와 다른 이의 A가 다르며 특정 A가 존재하거나 보편 A가 존재할 수 있는가 또는 그것이 전달될 수 있는가.'(존 케이지와의 대화, p.51)
그런 의미에서 6편의 짧은 단편들은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자 노력하는 모든 독자들을 무력하게 만든다. 책 맨 뒤표지의 한 문장(이 글을 언젠가 소설이 될 것이다)은 독자들을 혼란하게 만드는 동시에 자기 본위로 독자들을 홀리게 만드는 이 책의 마력을 응축한 표현이다.
그런 복잡함 속에서, 정지돈의 천재성이 더욱 빛을 발한다. 이상이 그랬듯, 니체가 그랬듯 시대를 앞서간 천재성이 분명 엿보인다. 의미의 해체, 내면의 재구성, 진실을 뒤섞는 그의 작품 세계를 계속 관심 있게 지켜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