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릇한 상추 위에 노릇하게 구워진 삼겹살 한 점을 올리고 그위에 갓 지은 흰쌀밥을 올린다. 그리고 쌈장과 마늘까지 야무지게 넣고 크게 한쌈 싸 입에 넣고 말한다. "엄마 맛있어" 우물우물 씹으면서 엄마를 향해 맛 표현을 잊지 않는다. 정말 맛있는 날에도 또는 조금 부족한 날에도 난 무조건 맛있다고 말한다. 그날 이후부터 말이다. 현재 시각은 8시 30분 PM이 아닌 AM.
집집마다 아침 풍경은 다르겠지만 우리 집은 가볍지 않은 푸짐한 아침을 챙겨 먹는 집들 중 하나다. 엄마 딸로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모태 아침밥 러버가 되었다. 특히나 삼겹살, 아귀찜, 해물파전, 닭볶음탕 같은 저녁에 먹을 것 같은 음식을 우리 집은 아침에 먹는다. 이유는 복잡하지 않다. 우리 집에 살고 있는 엄마를 제외한 가족의 식성을 반영한 것이다. 아마도 엄마의 취향에 맞췄다면 우린 채소 위주의 식사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과분한 것을 얻어도 처음부터 그것을 노력 없이 갖게 되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기 어렵다. 나에게 엄마 아침밥상이 그랬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껏 당연하게 얻었기에 푸짐한 밥상을 매일 받으면서도 감사의 마음보다는 엄마니깐 당연하다는 생각 쪽에 더 힘이 실려있었다. 그리고 나만이 누리는 특권이 아니라 다른 집도 대부분은 엄마의 손에 의해 아침밥이 차려지기 때문이었다.
"맛있어?" 엄마의 물음에 나는 꽤나 솔직하게 대답을 했다. 맛있는 날은 맛있다고 했지만 조금 나의 입맛과 맞지 않을 때는 정확히 짚어냈다. 맛있는데 짜다던지 고기는 조금 더 바싹 익혔으면 좋았을 거 같다든지 말이다. 철없는 딸의 대답에 엄마는 친절했다. "그래? 짜? 덜 익었어? 다음에는 그렇게 해줄게."라고 말이다. 푹푹 찌는 여름의 어느 날 딸은 무심하기도 했다. 불 앞에서 요리하면 땀이 뻘뻘 난다는 엄마의 말에 " 에어 켠 켜고 하면 되잖아"라고 말이다. 에어컨을 켜도 불 앞에서는 소용이 없다는 것을 그땐 알지 못했다.
당연하다고 느꼈을수록 부재는 더욱 크게 다가오는 법이었다. 엄마 생일에 맞춰 아빠, 엄마, 언니가 여행을 떠나면서 며칠간 홀로 집을 지키게 됐다. 회사 일정을 조율할 수 없었던 나는 함께하지 못했다. 밥 잘 챙겨 먹으라며 집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걱정하던 엄마와는 달리 나는 괜찮았다. 겨우 4일이었고 사실 아침을 먹지 않고 잠을 더 잘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점심은 직장동료와 사 먹으면 됐고 저녁은 친구랑 먹으면 됐으니깐.
별생각 없던 것과는 달리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핸드폰을 보니 평소 일어나는 시간과 비슷했다. "일어나서 밥 먹어" 엄마 알람이 들려야 이불속에서 꼼지락 거리며 일어났었는데 더 자려던 계획대로 하지 못하고 이상하게 눈이 떠져 벌떡 일어났다. 고요한 우리 집은 엄마 없는 티를 바로 냈다. 탕탕탕탕 도마 위에서 무언가를 썰던 칼질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칙~~~~ 압력밥솥에서 김 빠지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추운 계절이 아니었는데도 집안의 온기가 어딘가로 다 빼앗긴 느낌이었고 그래서 어딘가 모르게 쓸쓸한 기분도 들었다.
매일 같은 시각 아침을 먹던 습관은 허기를 불러왔고 아침밥을 먹지 않겠다던 계획은 변경되어 난 아침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3분 돌린 햇반과 엄마가 만들어 놓고 가신 멸치볶음과 우엉조림 그리고 계란 프라이 하나가 식탁 위에 차려졌다. 엄마를 닮아 요리하는 것도 즐기고 손맛이 없는 편도 아니었지만 나의 아침밥상은 부실했다. 나를 위한 밥상을 차리기 위해 1시간 먼저 일어나 찌개를 끓이고 생선을 노릇하게 굽고 고기 볶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쉬운 용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혼자 먹는 밥은 반찬이 부실한 것도 한몫했겠지만 무엇보다 쓸쓸한 식탁이 맛이 없게 만들었다. 매일 아침 엄마의 고생은 가족을 같은 시각 모이게 했고 맛깔난 아침밥을 먹으며 떠드는 수다는 가족을 가깝게 만들었다. 가족이란 이유로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밥 정이 쌓여 가까워지는 거였다. 우리 가족의 접착제는 엄마의 아침밥상이었다. 엄마의 아침밥상이 너무도 귀하고 감사하다는 것을 내내 놓치고 살다 우연히 깨닫게 되었고 그때부터 나는 무조건 엄마의 밥은 맛있어졌다. 그리고 언제나 맛있다는 표현을 잊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