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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징 Nov 06. 2020

이렇게 잊어 간다

가을색 체크무늬 블라우스에 고동색 코트 그리고 분홍빛 머플러

오늘 같은 차림을 작년 이맘때도 하고 있었다. 그때 내 곁에 있던

그 사람은 파란색 파카를 입고 있었다. 지금은 무얼 입었는지 모르겠다.

그날 우린 강화 어딘가 예쁜 호숫길을 걸었고 우연히 만난 

겨울축제에 들러 눈으로 만든 조각상을 구경했고 그 앞에서 다정히

사진도 찍었다. 지금 이 옷차림 그대로 난 그 사람 옆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조금의 변화라면 머리를 틀어 올릴 만큼의 길이가 이젠 어깨선에 닿아 찰랑이고 있는 정도겠다.

시간 속에 그 사람을 향한 그리움, 미움, 보고픔 등의 감정을 깊숙이 잘 묻어두었다고

생각했는데 겨우 같은 옷차림 때문에 그 사람이 내게 올 거라 생각지 못했다.  

그를 잊기 위해 애쓴 시간들이 쓸모없었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내 기억 속으로 들어왔다.

그날처럼 따뜻한 표정을 짓고서 말이다. 

속상했던 기억은 지우개로 싹싹 지워 흐릿해지고

행복했던 순간은 선명해지면 그 사람을 진심으로 미워할 수가 없다. 

그래도 어쩔 도리가 없어 잊어야 하는 사람이니깐 그래야 하는 거니깐

억지로 마음을 눌러 내린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나의 감정은 사춘기 소녀처럼 제멋대로 군다.

어떤 날은 그 사람을 미워해 괜찮았고

어떤 날은 그리워 오늘처럼 울었다.

그래도 어쩔 도리가 없는 나는 이러다 감정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린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그 사람을 많이 사랑했구나 그냥 그렇게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래도 이젠 엉엉 우는 게 아닌 눈물만 글썽이니 다행이다 싶다.

이렇게 잊어가는 모양이다. 



인스타그램 주소 http://instagram.com/poohzing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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