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견에게 밥은 정말 중요하다!! 사람도 마찬가지 겠지만 젊을 때 한 두 끼 굶는 것과 나이가 들어 한 두 끼 굶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일단 한 끼만 건너뛰어도 배가 홀쭉하게 들어가고 기운 없는 게 느껴진다. 그런데 복돌이 밥그릇에 밥이 줄어들지 않았다. 밥그릇 앞에 오래 서 있어서 밥을 먹고 있는 중인 줄 알았는데 가보면 사료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최애 간식 잘게 자른 오리 육포를 사료 위에 뿌려줬다. 밥투정할 때도 오리 육포만 뿌려주면 밥을 싹 비워냈는데 이번에는 먹으려고 시도는 하는데 오리 육포도 사료도 줄어들지 않았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데도 밥을 먹지 않았다. 이상한 건 밥그릇 앞에는 자주 가는데 밥을 먹지 않는 거였다. 복돌이가 밥그릇 앞에 다가갈 때 옆에 철퍼덕 앉아 복돌이를 지켜봤다. 주둥이로 사료를 콕콕 찌르긴 하는데 먹는 거 같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사료 한알을 집어 복돌이 입 앞에 갖다 줬다. "복돌아 누나가 먹여줘?"
사료를 입에 데주자마자 입을 쩍 벌려 받아먹는다. 또 한알을 집어 주니 오도독 오도독 맛있는 소리를 내며 씹어 먹는다. 이 상황이 웃겨서 설거지 중이던 엄마에게 소리쳤다.
"엄마 복돌이 먹여주니깐 엄청 잘 먹네"
"어리광 피우네. 누나가 밥 먹여 주니깐 좋은가보다"
이게 출발점이었다. 자율급식은 그렇게 끝이 났다. 밥그릇 앞에는 가지만 밥을 먹진 않았고 사료를 한알 씩 먹여줘야지만 먹었다. 이번에도 엄마는 복돌이가 왜 그런지 알아 차렸다.
"아무래도 혀놀림이 힘들어서 그런 거 같아."
"혀놀림?"
"나이 드니 이제 그것도 힘든 거지. 혀놀림이 잘 안되니깐 속상해서 밥을 안 먹은 거 같아."
난 생각지도 못했던 건데 엄마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정말 그랬다. 어리광인 줄 알았는데 혀로 사료를 말아 들어 올려 먹어야 하는데 혀놀림이 잘 되지 않아 밥을 잘 먹지 못하는 거였다. '우리 복돌이가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을까.' 여전히 아가복돌이 때 모습 그대로라 노견이라는 걸 종종 잊는다. 그러다 이런 순간을 마주 할 때면 마음이 아릿하다. '복돌아 너무 속상해 하지만 누나랑 밥 먹으면 돼지.'
밥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식사 당번은 엄마와 나 둘 중 시간 맞는 사람이 챙겼다. 밥은 하루에 두 번 먹었는데 복돌이 생활리듬에 맞춰 깨어 있을 때 먹였기 때문에 식사시간은 일정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엄마가 밥을 줘도 잘 먹고 내가 밥을 줘도 잘 먹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누나랑만 밥을 먹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내가 사료를 주면 입을 벌리는데 엄마가 사료를 주면 입을 꼭 다물고 버텼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내가 밥 당번이 되었고 일을 쉬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는데 가끔 약속이 있을 때가 문제였다.
복돌이와 나의 타이밍이 잘 맞아 외출 전 밥을 먹이고 나가면 나도 마음 편하고 복돌이 배고 고프지 않아 딱 좋은데 이 녀석이 일어날 생각을 안 하고 꿀잠을 잘 때면 내 속은 타들어갔다. 그날이 그랬다. 오랜만에 친구랑 약속이 있어 낮에 나가야 했다. 약속시간이 다가올수록 나의 마음은 조급해졌다. 눈을 꼭 감고 곤히 자는 복돌이 얼굴을 수시로 쳐다보며 일어났는지를 체크했다. 사료와 영양 캔은 진작 챙겨 밥 먹을 준비는 미리 해 두었다. 일어나서 30분 정도 돌아다니다 밥을 먹기 때문에 지금 시간쯤엔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시계 보고 복돌이 보고 반복하자 옆에 있던 엄마가 걱정 말고 나갔다 오라고 한다. 약속 시간에 조금 늦더라도 일어나기만 하면 밥을 먹이고 나가려고 했지만 여전히 쿨쿨 자는 복돌이를 두고 나는 집을 나섰다.
친구와 수다 삼매경에 빠져있을 때쯤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엄마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복돌이 밥 좀 먹으라고 말해봐"
한계치에 다다른 목소리였다. 밥을 먹이려는 엄마와 입을 벌리지 않는 복돌이 사이에서 팽팽한 기싸움이 있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엄마가 시킨 대로 복돌이에게 말했다. "복돌아 누나가 약속이 있어서 밖에 나왔어. 오늘은 엄마랑 밥 먹어야 돼. " 전화기 너머에서 내 얘기에 맞장구치며 복돌이에게 한차례 더 얘기하는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복돌아 들었지. 오늘은 엄마랑 밥 먹어야 된다잖아."
용건을 끝낸 엄마는 전화를 바로 끊었고 나는 몇 시간 후 집으로 복귀했다.
현관문을 열자 알 수 없는 냉랭한 기운이 느껴져 조심스럽게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복돌이 밥 먹었어?"
"먹었겠니."
가방만 내려놓고 조용히 밥을 챙기고 잽싸게 복돌이를 안아 거실 바닥에 앉았다. 소파에 등을 기대고 다리사이에 복돌이를 앉히고 사료에 영양 캔을 찍어 복돌이 입 앞에 갖다 줬다. 복돌이가 밥을 먹나 안 먹나 옆에서 쳐다보고 있는 강렬한 엄마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한테도 조금 애를 태우다 사료를 받아먹었으면 좋았을 텐데 눈치 없이 입을 쩍 벌려 오도독 오도독 소리를 내며 사료를 씹는다.
"어머 어머 아주 귓방망이를 날려야 돼"
"복돌아. 엄마랑 밥 왜 안 먹었어."
입으로는 엄마를 위로하고 손으로는 연신 사료에 영양 캔을 찍어 복돌이 입에 쏙쏙 넣었다.
"내가 몇 번이나 밥을 줬어. 그때는 입 꾹 다물고 한알도 안 먹더니. 네가 주니 순순히 먹는 것 좀봐.
누가 보면 밥 안 먹는다는 거 거짓말하는 줄 알 거야."
"이 눔 시키 왜 그랬어"
한참을 복돌이 밥 먹는 걸 지켜보다가 엄마가 피식 웃었다. 목소리 톤도 한결 누그러졌다.
"먹으니 다행이지. 아니다 복돌이가 효자야 효자 엄마 고생하지 말라고 누나랑 밥 먹는 거지?."
으잉 뜬금없이 이건 무슨 전개 일까 생각되지만 엄마에게 귀한 개아덜이니 당연한 전개인 듯싶기도 하다.
'복돌아 가끔은 엄마랑도 밥 먹어줘. 엄마가 서운해해.
너도 젊은것이랑 밥먹는 것이 더 좋냐 그런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