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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쭈달 Oct 20. 2024

답은 정해져 있다.


- 여보, 미안해..     


서로의 어깨에 기대 고이 잠든 아이들을 보자 마음이 약해지는 장수였다. 그는 운전대를 잡은 채 고개를 떨구고 눈을 질끈 감았다. 답이 없어 여기까지 온 게 아닌가. 그럼에도 이게 맞는 선택일까? 의구심이 들었다. 수영은 세상의 마지막과 마주할 준비를 하고요했다. 그런 그녀의 고이 포갠 두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 역시 겉으로는 덤덤한 척 했지만 두려움과 죄책감을 견디고 있는 보통의 사람이었다. 장수가 그런 수영을 모를 리 없었다. 남은 살이 없어 뼈와 혈관이 마구잡이로 튀어나온 앙상한 그녀의 손 위에 그의 손을 포갰다. 오랜만에 맞닿은 그들의 체온은 생각보다 따스했다. 장수는 곧 닥칠 죽음을 앞두고 잠깐이나마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우리, 잘하는 걸까..


침묵을 깨고 장수가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 방법이 있어?

- ...


딱히 답을 찾지 못해 여기까지 와놓고서 이제와 왜 마음 약해지게 하는 건지. 수영은 마지막까지 장수가 맘에 들지 않았다. 가야한다. 아이들을 위해서. 단호하게 말해야 해.

 

- 먹자.     


모성애가 누구보다 강했던 수영이었다. 그런 그녀가 이렇게 변해버린 건 그녀의 코 앞까지 닥친 죽음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놈의 돈이 문제였고, 평범하게 낳아주지 못한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이 제일 컸으리라. 수영은 하얀 가루를 먼저 입에 털어넣었다. 그런 수영을 보자 정말 마지막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이어 장수도 따라 하얀 가루를 입에 넣었다. 몽롱했다. 구름 위를 떠다니는 기분. 지금이라면 잘 살아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야, 지금이라면.


- 좋은 곳에 가.

- 당신도 좋은 곳에 가길 바라.


평소 생각했던 마지막과 너무 다른 엔딩이지만 그래도 서로의 안녕을 비는 작별인사만큼은 하고 싶었다.


- 우리 애들은 좋은 부모 밑에서 다시 태어나 잘 살거야..

- 우리 애들 다시 태어나면 평범하게 살면 좋겠다..


아이들 이야기에 참았던 흐느낌이 목구멍을 타고 전해졌다.


서슬 퍼런 바다가 그들의 앞에 있었다. 바다는 걱정도 고통도 없으니 어서 들어오라는 듯 어지럽게 춤을 췄다. 파도는 바위에 부딪히고 조각나며 마치 보석처럼 황홀하게 반짝거렸다. 룸미러로 아이들의 마지막 모습을 눈에 담고 장수는 힘껏 엑셀을 밟았다. 수영은 잠든 아이들을 꼬옥 껴안은 채 눈을 질끈 감았다.     


끼이익!!!!!!!!!!


장수의 차가 바다를 향해 굉음을 내며 돌진했다.



풍덩


표면위에 잠시 떠있던 차는 넘실대는 파도 사이로 보일 듯 말듯 형태를 드러내다 곧 사라졌다.

              

한달 전-


수영은 곧 죽을 시한부였고, 빚은 눈두덩이처럼 늘어났다. 채권자들이 들이닥치고 집에 빨간 딱지가 곳곳에 붙었다. 급한대로 집을 팔아 빚이라도 갚으려 했지만 이미 집에 압류가 잡혀 집도 마음대로 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공과금이 밀릴대로 밀려 전기와 수도가 모두 끊겼다. 둘은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음을 깨달았다. 아이들에게 해서는 안될 행동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현실은 자꾸만 그들에게 선택지는 하나라고 알려주었다.    


큰 아이는 지적장애로 태어났다. 그럼에도 그들 부부에게 소중한 첫 아이였고 너무 사랑했다. 하지만 아이로 인해 행복하면서도 힘든 건 어쩔 수 없었다. 조금이나마 도움을 받으면 아이가 좋아질까 싶어 녹록치 않은 형편에도 유명하다는 센터를 전전했고 그만큼 비용도 많이 들었다. 그래도 아이가 호전되기만 한다면 그들은 바랄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이상태는 크게 달라진 점이 없었다. 큰 욕심을 가지고 시작한 치료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무 변화가 없는 아이에게 화도 나고 그렇게 낳은 자신이 원망스러 미칠 것 같았다.

그리고 두 해 뒤, 동생이 태어 났다. 사실 아이 하나도 버겁고 힘든 상황이었지만 자신들이 떠나고 혼자 남을 큰 아이 걱정스러워 계획한 임신이었다. 그래서 벌 받은걸까. 작은 아이는 주수를 다 채우고 태어나지 못해 인큐베이터에 꽤 오래 있었다. 선천적으로 심장에 구멍이 있어서 경과를 지켜보며 아이가 좀 자라면 몇 번의 수술을 거쳐야 한다고 했다. 왜 우리 가족에게 이런 가혹한 시련이 온 걸까. 장수와 수영은 두 아이들을 볼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려 늘 괴로웠다.


나중에 우리가 없으면 아이들은 어쩐다..


치킨집이 잘되면 아이들에게 기술도 가르쳐 주고 가게를 물려줄 생각이었다. 지적장애가 있어도, 몸이 약해도 먹고 살 걱정은 크게 없을테니 둘이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면 될 것이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는 사건에 휘말려 치킨집은 문을 닫아버렸고, 그들의 꿈은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렸다.


장수와 수영은 이 동화의 결말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둘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동화속에서나 존재하는 결말. 현실은 동화와 다르다. 아둥바둥 할수록 더욱 숨통을 조여오는 시궁창 같은 현실. 비참하고 가혹했다.


둘은 수면제를 조금씩 처방받아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오늘, 실행에 옮기는 날이다. 그들에게 거창한 계획은 사치였다. 그저 이 숨막히는 현실에서 어서 벗어나고 싶을 뿐.

아이들은 함께 데려가기로 했다. 치매를 앓고 있는 장수 어머니께 맡길 수 없었고, 뇌졸증으로 쓰러져 몇 년 째 요양병원에 계신 수영의 아버지에게도 부탁할 수 없었다. 아이들의 인생을 부모가 선택할 권리는 없다지만, 부모 없는 세상에 성치 못한 아이 둘만 남겨두고 갈 수 없었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아이들은 모처럼 떠나는 여행에 들뜬 모습이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그저 신이 난 아이들을 보며 억장이 무너졌다. 장수는 인적이 드문 바다 앞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아이들 음료수에 미리 준비해 온 수면제를 넣었다. 자다 깨면 고통스러울테니.. 제발.. 제발..깨지 않길..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음료수를 마시고 수면제에 취해 금세 골아떨어졌다.     


그렇게 그들의 동화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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