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수영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저승에서도여전히 야위고 볼품없는 체구의 그녀의 모습.
- 여보!
둘은 서로에게 다가갔으나 닿을 수 없었다.
- 아..
그렇다. 이곳은 사후세계인 것이다.
- 이 분은 저승으로 인도해주는 택시기사래. 우리 아이들도.. 곧 만날 수 있대.
장수는 잠시 죽은 걸 잊기라도 한 듯, 살짝 들떠 보이기까지 했다. 당신, 정말 최악이구나. 장수를 보며 수영은 혀를 찼다. 아이들이 누구때문에그런 선택을 했는데.. 수영은 다시금 밀려오는 죄책감에 고개를 떨구었다.
- 기사님, 아이들을.. 정말 만날 수 있나요?
- 택시에 타고 가면서 설명 드리겠습니다.
수영은 택시에 급히 몸을 밀어 넣었다. 택시기사가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그런 건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들의 선택으로 꽃다운 인생을 마감해버린 불쌍한 아이들을 만나 사죄하고픈 마음 뿐이었다.
- 여보, 어서.
수영의 재촉에 장수도 얼른 택시에 탔다. 혁수가 시동을 켜고 엑셀을 막 밟으려는 순간,
[띵동]
혁수에게 알람이 도착했다. 망자를 인도할 때는 새로운 알람이 울리지 않는 법인데, 뭔가 착오가 있는 걸까. 잠시 출발을 미루고 알람을 확인한 그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 김장수씨, 이수영씨. 아이들이 소생한 것 같습니다.
- 소, 소생이라고요?그럼 아이들이 죽은 게 아니라는건가요..?
- 그렇습니다. 처음엔 김장수씨 포함 네 명의 명부가 왔습니다만,조금 전에 아이들의명부가 삭제되었다고 알람이 왔습니다.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오열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지금 그들은 부모라는 명분 아래 지옥에서 받을 고통보다 더한 고통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연아 웅아..미안해.. 정말 미안해..
- 사는게 너무 힘들어서.. 너희들을.. 정말 잘못했다..
차마 서로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던 후회와 자책들은 아이들의 생사를 확인하고서야 쏟아져 나왔다.
부모가 자식의 생사를 결정지을 수 있는 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누구든 주어진 운명대로 살아가야 하는 법.한순간의 어리석음으로 아이들의 명을 마음대로 끝내버린 둘은 저승에서 제일 고통스럽고 끔찍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혁수는 마음이 무거웠지만, 저승문으로 가기 전 망자에게 전하는 말을 해야했다.
- 저승으로 가는문은 네 가지 입니다. 그 중'적인문'앞으로두 분을 모시고 가는 것이 저의 마지막 일이죠.적인문 앞에서 만나게 될 꼭두는 망자들을 염라대왕께 인도합니다. 두 분은 꼭두를 따라가면 됩니다.
예외로, 환생을 하는 망자들은 저승문으로 가기 전 삼도천이라는 곳으로 먼저 들립니다. 삼도천 앞에는 '삶' 정류장이 하나 있어요. 망자는 그곳에서 이승의 마지막을 추억하고 버스에 타게 됩니다. 버스에서 내리면 모든 기억을 잃은 채 정해진 저승문으로 가게 되고 이후 염라대왕의 뜻에 따라 환생을 하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두 분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에 환생의 기회가 없을 겁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입니다.
혁수의 말에 둘은 아무런 질문도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택시는 그렇게 침묵을 지킨 채 한참을 달렸다. 자욱한 연기로 가득한 이 곳에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전혀 알길이 없었다.
택시는 한참을 더 달리다 사선으로 넓게 퍼져휘감은 구름 다리 앞에서 멈추었다. 혁수는 택시에서 내려 다리를 건넜고 뒤이어 장수와 수영도 혁수를 따랐다. 다리 너머에 붉은 빛이 세어 나오는 문이 보였다.문 앞에는 하얀 옷을 입고 허리에 금색 띄를 두른 꼭두가 체구만치 작은 말을 타고 있었다.꼭두가 검지 손가락을 허공에 두번 두드리자 문이 열렸다. 문 안은 마치 피바다를 연상시키듯 혐오스러운 붉은 색으로 가득했다. 사방에서 찢어지는신음소리가 괴음처럼 퍼져 울리고 있었다. 장수와 수영은 문 안으로 꼭두가 들어가자 홀린 듯 따라 들어갔다.
두 사람의 형체가 점점 희미해질 때까지 바라보던 혁수는 그제서야엑셀을 밟고 자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