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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쭈달 Oct 27. 2024

붉은 문


한참을 달리던 혁수의 택시가 멈췄다.     


- 도착했습니다.     


도착했다는 건.. 아내와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뜻일까?

장수는 급히 문을 열고 택시에서 내렸다.


- 조금만 기다리시면 아내 분이 여기로 올 겁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여전히 어둡고, 적막하다.

수영의 모습은 커녕 작은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아 입술이 바짝 마르고 애가 탔다.


- 더.. 기다려야 합니까?


장수의 물음에 아무 말이 없는 혁수. 그를 보며 한마디 하려던 찰나,


- 여보? 당신이야?


익숙한 수영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저승에서도 여전히 야위고 볼품없는 체구의 그녀의 모습.


- 여보!


둘은 서로에게 다가갔으나 닿을 수 없었다. 


- 아..      


그렇다. 이곳은 사후세계인 것이다.  


- 이 분은 저승으로 인도해주는 택시기사래. 우리 아이들도.. 곧 만날 수 있대.     


장수는 잠시 죽은 걸 잊기라도 한 듯,  살짝 들떠 보이기까지 했다. 당신, 정말 최악이구나. 장수를 보며 수영은 혀를 찼다. 아이들이 누구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는데.. 수영은 다시금 밀려오는 죄책감에 고개를 떨구었다.


- 기사님, 아이들을.. 정말 만날 수 있나요?

- 택시에 타고 가면서 설명 드리겠습니다.


수영은 택시에 급히 몸을 밀어 넣었다. 택시기사가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그런 건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들의 선택으로 꽃다운 인생을 마감해버린 불쌍한 아이들을 만나 사죄하고픈 마음 뿐이었다.     


- 여보, 어서.


수영의 재촉에 장수도 얼른 택시에 탔다. 혁수가 시동을 켜고 엑셀을 막 으려는 순간,


[띵동]


혁수에게 알람이 도착했다. 망자를 인도할 때는 새로운 알람이 울리지 않는 법인데, 뭔가 착오가 있는 걸까. 잠시 출발을 미루고 알람을 확인한 그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 김장수씨, 이수영씨. 아이들이 소생한 것 같습니다.

- 소, 소생이라고요? 그럼 아이들이 죽은 게 아니라는 건가요..?


- 그렇습니다. 처음엔 김장수씨 포함 네 명의 명부가 왔습니다만, 조금 전에 아이들의 명부가 삭제되었다고 알람이 왔습니다.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오열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지금 그들은 부모라는 명분 아래 지옥에서 받을 고통보다 더한 고통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  연아 웅아..미안해.. 정말 미안해..

- 사는게 너무 힘들어서.. 너희들을.. 정말 잘못했다..


차마 서로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던 후회와 자책들은 아이들의 생사를 확인하고서야 쏟아져 나왔다.


부모가 자식의 생사를 결정지을 수 있는 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누구든 주어진 운명대로 살아가야 하는 법. 한순간의 어리석음으로 아이들의 명을 마음대로 끝내버린 둘은 저승에서 제일 고통스럽고 끔찍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혁수는 마음이 무거웠지만, 저승문으로 가기 전 망자에게 전하는 말을 해야했다.


- 저승으로 가는 문은 가지 입니다.  그 중 '적인문'앞으로 두 분을 모시고 가는 것이 저의 마지막 일이죠. 적인문 앞에서 만나게 될 꼭두망자들을 염라대왕께 인도합니다. 두 분은 꼭두를 따라가면 됩니다.

예외로, 환생을 하는 망자들은 저승문으로 가기 전 삼도천이라는 곳으로 먼저 들립니다. 삼도천 앞에는 '삶' 정류장이 하나 있어요. 망자는 그곳에서 이승의 마지막을 추억하고 버스에 타게 됩니다. 버스에서 내리면 모든 기억을 잃은 채 정해진 저승문으로 가게 되고 이후 염라대왕의 뜻에 따라 환생을 하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두 분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에 환생의 기회가 없을 겁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입니다.


혁수의 말에 둘은 아무런 질문도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택시는 그렇게 침묵을 지킨 채 한참을 달렸다. 자욱한 연기로 가득한 이 곳에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택시는 한참을 더 달리다 사선으로 넓게 퍼져 휘감은 구름 다리 앞에서 멈추었다. 혁수는 택시에서 내려 다리를 건넜고 뒤이어 장수와 수영도 혁수를 따랐다. 다리 너머에 붉은 빛이 세어 나오는 문이 보였다. 문 앞에는 하얀 옷을 입고 허리에 금색 띄를 두른 꼭두체구만치 작은 말을 타고 있었다. 꼭두검지 손가락을 허공에 두번 두드리자 문이 열렸다. 문 안은 마치 피바다를 연상시키듯 혐오스러운 붉은 색으로 가득했다. 사방에서 찢어지는 신음소리가 괴음처럼 퍼져 울리고 있었다. 장수와 수영은 문 안으로 꼭두가 들어가자 홀린 듯 따라 들어갔다. 


두 사람의 형체가 점점 희미해질 때까지 바라보던 혁수는 그제서야 엑셀을 밟고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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