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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쭈달 Nov 03. 2024

그날의 기억


「띵동」     


‘새벽 2시 명성원룸 104호’     


전날의 피로감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알람이 도착했다.

몇 년이 지나도 익숙하지 않구나.


가끔 혁수는 궁금했다. 나는 살아있는 사람일까? 죽은 사람일까?

망자가 아닌 사람들을 태우기도 하니 살아 있는 것도 같고,

저승으로 인도하는 망자들이 나를 볼 수 있으니 죽은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어떤 의미로 존재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저승으로 망자들을 인도하는 일은 아주 우연히 시작하게 되었다.

마치 길을 걷다 갑자기 내린 소나기에 젖는 것처럼.


혁수는 본디 직업이 택시 기사였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성실히 택시를 몰아 택시 기사들의

꿈인 개인택시를 사고, 한결 여유가 더해진 살림살이에 조금씩 사는 재미를 알아가던 중이었다.


매서운 바람이 코끝을 에워쌌던 겨울의 어느 아침. 혁수는 오전 일찍 집을 나서 예약손님을 태우고 목적지인 사동역으로 향했다. 사동역으로 가기 위해선 반드시 이화대교를 건너야 했는데, 대교 너머 산업단지로 출근하려는 차량들로 정체되는 곳이었다. 오늘도 역시 러시아워 중인 이화대교 위, 그 속에서 조금씩 이동하고 있는 혁수의 택시.


- 차가 가는 건지, 서 있는 건지, 원..


손님의 볼멘 소리에 마치 교통 체증이 자신의 탓인양 괜히 멋쩍어졌다.


- 그러게요, 허허. 여기는 늘 막히는 곳인데 많이 답답하시죠?

- ...


대답이 없다. 내 말을 못 들은건가? 룸미러로 손님을 확인하니 그 새 눈을 감고 잠을 청하고 있는 모양새다.

여전히 거북이 걸음 중인 택시 안은 난방 중이라 잠이 잘 올 법도 했다. 문제는 혁수까지 살짝 졸리기 시작했다. 하품을 억지로 여러번 하며 잠을 쫓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렇다고 이 도로 어딘가에 세우고 잠을 청할 수도 없는 노릇. 심지어 손님을 태우고 있으니 더욱 그럴 수 없었다. 잠을 깨기 위해 뭐라도 들어야겠다 싶어 튼 라디오에선 마침 혁수가 제일 좋아하는 올드팝이 흘러 나왔다. 잔잔한 선율을 따라 부르다보니 어느새 졸음은 달아나고 상쾌하기까지 했다. 그 때였다. 혁수의 앞에서 달리던 차들이 순식간에 모두 사라진 것은.

혁수는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택시에서 스파크가 튀고 연기가 아스라히 피어나왔다. 혁수는 정신을 잃어버린 채 눈을 감았다.


- 아저씨, 아저씨! 정신 차려요! 당장 나오지 않으면 죽어요!


다급히 부르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혁수는 겨우 눈을 떴다.


- 으윽..


급하게 택시를 멈추면서 온 몸으로 충격을 받아버린 탓에 고통이 전해졌다. 차에서 나가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혁수의 머릿속엔 나가야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뒷자석에 앉은 손님을 깨워 먼저 내보낸 뒤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도 차에서 빠져나왔다.


- 이게.. 무슨 일이야?


꿈인지 생시인지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 앞에서 펼쳐졌다. 혁수가 타고 있던 택시는 무너진 다리의 끝자락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었다. 혁수가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그들이 타고 있던 택시는 깊고 시퍼런 바닷 속으로 빠져버렸다.


- 헉!


어쩌면 자신도 바다로 떨어졌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자 혁수는 공포가 밀려왔다. 도로 위 남은 차량들은 이리 저리 얽혀 부딪히고 파손된 상태로 아무렇게나 멈춰 있었다. 바다 위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차량들이 내는 굉음들과 사람들의 고함소리가 섞여 아수라장이었다. 

     

- 살려주세요!

- 제발 도와주세요!

- 사람 살..읍..!


살아남은 사람들, 죽어가는 사람들, 부서지고 불타는 차..

차마 눈 뜨고 못 볼 참혹한 현장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한 끗 차이로 생과 사가 오가는 공간.


혁수는 침착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혁수의 시야에 한 대의 차가 들어왔다. 운전석 창문 사이로 노인의 몸이 반쯤 튕겨 나와 있었다. 혁수는 노인에게 달려갔지만 이미 머리에서 많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 어르신! 어르신! 정신 차려보세요!

- 뒤에.. 아이가..

- 아이요?     


아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차의 뒷자석을 살펴보았다. 다리가 무너지면서 받은 충격으로 심하게 뒷문이 찌그러져 있었지만 다행이도 창문이 반쯤 깨져 있어 차 안을 살펴 볼 수 있었다. 작고 여린 팔이 보였다. 아이의 팔임을 직감한 혁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 여기요! 도와주세요! 아이가 있습니다!


아이가 있다는 혁수의 찢어지는 외침에 남성 몇명이 모였다. 문짝을 열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이미 깊숙하게 찌그러진 문은 쉬이 들어올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도 포기하지 않았다.

 

- 하나, 둘, 셋!

- 다시 한번 더 해봅시다. 하나, 둘, 셋!     


얼마나 지났을까. 꿈쩍도 하지 않던 문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혁수가 보았던 작은 팔의 아이는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한 모습으로 누워있었다.


- 어서 꺼냅시다.

- 죽은 건.. 아니겠죠?     


전혀 미동이 없는 아이를 보자 혁수는 심장이 쿵쾅댔다. 하지만 아직 포기할 수 없었다. 떨리는 손가락을 아이의 코와 입에 대보았다. 오, 신이시어! 아이는 약하게나마 숨이 붙어 있었다.  

    

- 아이가 아직 살아 있어요!      


구조대원이 들 것을 들고 달려왔다. 혁수는 아이를 대원들에게 맡기고 노인을 살피러 갔지만 안타깝게도 노인은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혁수는 노인의 눈을 감겨주며 명복을 빌어주었다.


- 아이는 무사히 도착했을까. 숨이 붙어 있었으니 괜찮겠지..


이어 혁수도 구급차를 타고 들린 병원에서 크고 작은 몇 가지의 검사를 했다. 혹시 모르니 입원 권유를 받았지만 아내를 떠나 보낸 병원에서 한시라도 빨리 떠나고팠던 혁수는 끝내 집으로 와버렸다. 잠자리에 누운 그는 이런 저런 생각에 뒤척이며 쉬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벽달이 구름을 넘어가던 시간.


지이익- 지이익-


- 이게 무슨 소리지?


살면서 처음 듣는 낯선 소리였다. 혁수는 불을 켰다. 방이 환해지자 소리가 바로 멈추었다.

너무 피곤해서 내가 잘못 들은건가? 갸웃거리며 불을 끄자마자 다시 지이익- 소리가 났다.

잘못들은 소리가 아니었다. 혁수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 ㄴ, 누구요?


혼자 산지 오래되어 누구 하나 올리 없는 집에 인기척이라니. 더군다나 이 새벽에.

혁수는 거실로 나가 소리가 났던 현관 쪽을 주시했지만,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 그럼 그렇지. 피곤하니 별 게 다 들리는구먼.


안심하고 돌아서던 그 때, 혁수의 앞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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