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푸른 옷을 입은 남자가 혁수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 덕에 혁수는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기묘할 만큼 새하얀 피부, 핏기없는 입술. 미간에서 이어져 있는 두 눈썹은 특이하게도 눈썹의 끝이 머리와 연결되어 있어 참으로 괴기스러움을 풍겼다. 그가 쓴 갓 형태의 모자 앞에는 마치 극락을 연상케 하는 금색의 문양이 수놓아져 있었다. 혁수는 그를 보자 이 세상 사람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 자네가 혁수로군.
좀전에 들었던 괭괭거리는 기계음이 혹시 이 남자의 목소리가 아니었을까. 난생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에 당황한 혁수의 표정을 읽었는지 남자는 피식 실소를 자아냈다.
- 오늘 아이 하나가 와야 했는데 오질 않았다네. 자네가 살린 '그 아이' 말일세.
마치 책망하듯 아이라는 단어에 힘주어 얘기하는 그였다. 혁수는 슬그머니 그의 표정을 살폈다가 간담이 서늘해졌다. 순식간이었지만 분명 남자의 찌푸린 미간 사이에서 무언가가 튀어 나왔기 때문.
혁수는 너무 놀라 온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 아, 내 소개가 늦었네. 난 저승사자일세. 다들 날 '처사'라고 하더군.
아직도 멍하게 입만 벌리고 있는 혁수를 보며 그는 말을 이어갔다.
- 내가 하는 일은 명부를 작성해서 망자를 데려오는 '사자'에게 전달하는 걸세. 사자는 '꼭두'에게 망자를 인도하고 꼭두는 염라대왕께 데리고 가지.
- 그, 그럼 제가 죽은 겁니까?
- 아닐세.
- 혹시 아까 말씀하신 그 아이 때문에..
- 그래, 그아이. 망자 명부에 적힌 그 아이가 안왔어.
- 하지만 아이는 너무 어렸습니다. 차라리 저 같은 놈이 죽으면 죽었지..
- 그 아이의 운명이 거기까지였네. 그리고 염라대왕께서 극대노 하셨어. 명부 꼬이는 걸 아주 골치아파 하시는 분이라.
당연히 해야 했던 일이었다.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하지만 운명을 거스른 대가는 치루어야 한다. 비록 그게 내가 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