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소심한 성격탓에 친구 하나 없었죠. 가끔 보육원에 오시는 수녀님만이 저의 유일한 친구였어요.
하지만 보육원에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못했죠. 만 18세가 되자, 전 다시 혼자가 될 준비를 했어요.나라에서 지원하는 금액은 자립지원금 500만원과 월 30만원의 자립수당이 전부였고 그 돈으로는방 한칸 얻기조차 힘들었습니다..오롯이 제가 먹고 살길을 찾아야 했죠.대학은 고사하고 당장 먹고 지낼 방도 없거니와, 경험도 전무했던 제가 살 수 있는 길은..
'으아앙'
좀전까지만 해도 웃으며 품에 안겨 있던 작은 아기가 얼굴을 찡그리며 투정을 부렸다. 아기의 울음에 남자의 말이 잠시 끊겼다. 남자는 능숙하게 아기를 토닥이며 이내재웠다. 아기는 잠시 울다 뒤척이길 반복하더니 곧깊은 단잠에 빠졌다.
- ..자상한 아빠였군요.
- 혼자였던 저에게 와 준 유일한 가족이었으니까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혁수는 그의 침묵에 함께 입을 닫고 그가 감정을 추스릴 시간을 주었다.
- 저는.. 결국 기초생활 수급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로 나가 모든 것을 홀로 해결하기엔 18살은턱없이 어린 나이였어요. 그렇게 하루 하루 버티며 살다 숙식 제공이 되는 공장에 들어가게 되었죠. 그곳에서 아기 엄마를 만나게 되었어요. 아기 엄마도 저처럼.. 고아였거든요.
멋쩍게 웃는 그의 눈가에 살짝 눈물이 고이는 걸 룸미러로 본 혁수는 손수건을 남자에게 건넸다.
- 아닙니다. 망자를 태우고 가다보면 가끔 필요한 경우가 있더라구요. 그리고 두 분은 사랑에 빠졌나요?
- 그렇게 되었어요. 둘 다 몸서리치는 외로움으로 살아온터라 금방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실이 생겼죠.
바로 이 아이랍니다. 보세요, 너무 사랑스럽지않나요?
- 제가 여태 본 아기 중에 제일 사랑스러운 아기군요.
- 전 부모라는 존재조차 모르고 자랐지만, 내 아이만큼은 그렇게 키우기 싫었죠. 아이에게 자랑스러운아빠가 되기 위해 공장을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공장 쉬는 날은 노가다도 하며 착실하게 돈을모았죠. 그리고 아까 오셨던 작은 원룸도 마련했죠.
- 부모가 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죠.
- 아빠라는 단어 하나에 몸이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요. 하지만 아기가 태어나고 백일도 채 되지 않아아기 엄마가 하루 아침에 자취를 감췄어요. 혹시 어디서 잘못된 건 아닐까 일도 그만두고 백방으로 수소문 하며 찾으러 다녔지만 끝내 찾을 수 없었어요.. 돈이 바닥을 보이자 정신이 들더라구요.계속 찾으러 다녔다간 저와 아이 둘 다 굶어 죽겠다 싶어 아이 엄마 찾는 걸 포기했습니다.그렇게 시간이 흘렀어요. 그리고 오늘, 사라졌던 아이 엄마가 연락이와선 이아이가 제 딸이 아니란 겁니다. 아이 친아버지와 같이 살 계획이니 딸을 데려가겠다고요..!
점점 고조되는 남자의 언성에 혁수는 아기를 힐끗 보았다. 아기는 아직 새근새근 잘 자고 있었다.
- 전화로 애 엄마와 엄청 싸우고선 직접 만나러 나갔습니다. 아이 아버지라는 작자와 함께 나왔더군요.이게 말이 되나요..내 딸이 친 딸이 아니라니요.. 전 믿을 수 없었죠.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아기 엄마가 내민 서류는 친자확인 서류였어요. 그럴리 없다고 부정하면서도 혹시나 하고 우려했던 사실이현실로 나타난겁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어요.. 이 아이마저 없다면 전 살아갈 이유가 없으니까요..곧 딸을 데려갈거라고 말하는 둘을 보며 고통스러웠지만 아무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정신이 나갈 것 같았지만 딸이 배고파 칭얼대는 소리에 번뜩 정신을 차렸습니다.원룸에 도착해서 아이 입에젖병을 물리고 돌아서는 순간, 가슴에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어요. 숨이 제대로쉬어지질 않았죠. 저는 쓰러졌고 그대로 사망했습니다. 심장마비였어요.
- 그럼 아이는..
- 제가 쓰러지면서 딸 위로 쓰러지는 바람에.. 가냘픈 아기가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을 겁니다. 제가.. 딸을 죽인 겁니다. 제가 죽였어요..
기구하고 안타까운 인생이었다. 혁수는 마음이 아팠지만 그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따님은 다시 환생할 겁니다.
혁수의 위로는 이게 다였다. 그저, 이런 식으로만 할 수 밖에 없는.
- 정말입니까? 우리 딸이 다시 태어날 수 있나요?
- 그렇습니다. 따님은 태어난지 100일이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음생으로 환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