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죽일 놈의 죄책감

by 바리데기

최소한의 사랑 전경린을 읽고 있다.

욕망하면 죽는 여자.

모든 욕망을 버려야만 사는 여자, 유린.

왜 이런 것에 공감이 가는 걸까.

어떤 인생을 살아온 걸까.

지금도 그러하다.


무언가를 욕망하면 몸이 아파온다.

저 앞에 날 향해 손짓하는 사랑하는 이가 보이는데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데

오히려 다리는 멀쩡한대

복통과 두통이 이는 느낌이다.

욕망에 죄책감이 들기 시작한 것은

누구한테 배운 걸까.

욕구가 몸의 한계를 넘어설만큼

세상이 추워진 것은 언제부터일까.


최소한의 사랑에는

가난한 이들의 살이 얼마나 빨리가는지에 대한 서사가 나온다.

평안없이 이기심 가득한 노인들, 단칸방에서 끝이 나는 인생

21살에 아이를 낳고 40세에 할머니가 되어버린 미용사

왜이리 가난하고 외롭고

욕망에 따르는 죄책감으로 아픈 이들에게

공감하는 것일까.


내 마음은 왜 이리도 가난한 것일까

왜 이리도 욕심이 많은 것일까

왜 이리도 사랑의 꿈을 꾸고

자본에 상처받는 것일까.


이 모든 것이 나혼자만의 것임이 아니었음에

위로가 된다.

그녀들이 알고 있다.

작가가, 작가가 만났던 사람들이, 소설속 인물들이

나도 그렇다고 조용히 속삭여준다.

그녀들의 다독거림에 나는 오늘도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숨을 고른다.

괜찮아. 괜찮아.

네 잘못이 아냐.

그럴 수도 있어.

다 괜찮아질거야.

이런 인생도 저런 인생도

단칸방에서 늙어가며 무료 급식을 타러오는 노인이 되어도

너무 빨리 할머니가 되어버린 가난한 여자여도

그 삶도 괜찮아.

괜찮다고 말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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