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꾸지 않아도 되는 정원에 대하여

by 바리데기

집 앞에는 작은 언덕이 있다.

이 집은 작은 산 앞으로 창이 내어져 있고

뒤로는 부엌 외에는 열려있지 않다.

산 뒤는 모두 밭이나 더 큰 산들과 연결되어있어

고라니나 새들 외에는 찾아오지 않는다.

그나마 작게 있는 평지의 땅을

양 옆에 줄지어 있는 다른 집들은

잔디를 깔고 가꾸었다.

나무를 잘라 정원수를 심었고

바윗돌로 구분했다.


누군가 보면 정원을 가꾸라 하고

왜 여전히 집 앞 산을 사지 않는지 불안해하기도 한다.

나는 정원 수가 아닌 야생의 나무들이 자라는 이 곳이

마치 내가 자연 속의 일부가 된 것 같아서

그토록 바라던 세속을 버리고 자연 속으로 떠나온 것만 같아서

벌써 9년째, 이곳에서 맞는 사계절의 풍경에 여전히 설레인다.


때대로 여름에는 홍수가

겨울에는 폭설이

봄가을에는 잡초들이 무성이며

그래서 근심을 안겨주는 자연이지만


살아있는 것들이 주는 환희와 행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 곳을 함께 누리고 있는 나의 반려견 토리와 루이 또한

함께 늙고 있어

나의 병으로, 내 아가들의 병으로

몸과 마음을 졸이지만

이상하게도 여전히 이 모든 것을 후회하지 않는 것은

또 돌이키지 않는 것은

이 모든 것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리라.


삐죽삐죽 자라난 잡초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헐벗었던 가지들과 꽁꽁 얼어붙었던 땅을 뚫고 나오는 새순들과 그 힘찬 생명력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창문을 열고 바람이 흐르는 복도에서

고요히 창밖을 바라보며 좋아하는 책 (지금은 이마를 비추는, 발목을 물들이는 - 전경린)을 읽다보면

온 행복과 생명력에 감사하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게 된다.


나는 죽을 때 한없이 부끄러울 것만 같다.

세상의 쓸모가 되지 못해 누구하나 나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원을 가꾸지 않아도 되는 이 삶이 내게는 알맞은 느낌이 든다.


누군가에게 노동을 줌으로 돈을 지불하지도

땅주인에게 땅을 사지도

타인이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지도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기술을 생산적으로 쓰지도

이 행복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지도 못했기에

나는 한없이 이기적인 느낌이 든다.

방법은 모르지만

언젠가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그를 행복하게 하는 일이길

조용히 기도해본다.


죽음을 생각하면 부끄러워 눈물이 난다.

왜 죽음이 두려운지 잘 몰랐었는데

아마도 ..

아마도...

후회가 되서인 것 같다.


세상은 정원을 가꾸라하는데 정원을 가꾸었어도 후회할 것만 같아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

가꾸지 않은 정원을 보며 죄책감 어린 행복을 느낀다.

이 새 저새 찾아와 노래하는 새소리에 깊은 숨을 쉰다.


나는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사는 방법을 아직 모르겠다.

숨을 죽이고 거절만 하며 최소한의 사랑만 하며 지내다가

저들끼리 싸워 다칠 때에만 뛰쳐나가

덩굴을 치우고 잡초를 자르고

강아지를 병원에 데려가고 눈에 안약을 넣어주다 병이 난다.


어쩌면 그저 이렇게 살다가는 것이 삶이련만

나는 여전히 가꾸지 않아 아름다운 정원에 기뻐하고 가꾸지 않았음에 죄책감을 느낀다.

인간이란 이토록 모순적인 것을

지금까지 오랜동안 인정하지 않아왔고 지금도 온전히 인정하지 못한다.

그렇게 도망친 이곳에서 아주 천천히 오랫동안 배울 모양이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어서야

알게된다면

그것을 깨닫고 사랑을 하고 죽을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주어진다면

그 때는 부끄럽지 않고, 편히 눈감을 수 있을까.


자연스럽고 평온하게 살며 서로 사랑하며 사는 삶을 원해왔다.

어리석을만큼 순진한 삶에 대한 사치스러운 탐욕이

어쩌면 이 깊은 수치심을 만든 것이 아닐까.

지금 할 수 있는 것도 포기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나는... 여전히 이 곳에 서서, 아무 곳에도 가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세상이 무서워 오들오들 떨고 있는 나이 든 소녀는

눈을 꼭 감은 채 집으로 들어와 감았던 눈을 뜨고

잡초를 보고 새소리를 듣고 강아지를 만지며 제 몫의 밥만 하고 있다.


정원을 가꾸지 않아도 괜찮다고 충분히 아름답다고 저에게도 말해주지 못하면서

그 기쁨과 환희와 변명의 긴 말들을 타인에게만 늘어놓고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자꾸 놓쳐버리는 것들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