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삶에 대하여

by 바리데기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

그리고 인터넷 기사를 통해서

그리고 때론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꼭 그렇게까지 해야만 할까 라는 생각이 들곤 했었다.

지나치게 탐하고

지나치게 일하고

지나치게 집착하고...

모든 것이 너무나 지나쳤다.


쇼펜하우어가 말했던가

인간은 권태와 고통을 오가는 시계추와 같은 삶을 산다라고.


그러나 아무도 열심히 사는 삶에 대하여

지나치게 이루는 삶에 대하여서는

논하지 않았다.


자신의 자아를 있는대로 실현하는 것을

가까운 사람들은 기뻐했고

조금 먼 사람들은 환호했고

더 먼 사람들은 추앙했다.


요즘 들어서야

생산성 외의 삶의 가치와

소박한 즐거움의 중요성과

홀로인 삶의 의미와

자연의 삶에서의 건강에 관한 이야기가 많아졌지만

그것 또한 성공한 사람이나 인플루언서의 생산적 지식이라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삶의 여유를 말하는 이들은 컨텐츠를 만들어내느라 바쁘고

가난하지만 풍로운 삶을 이야기했던 이들은 더 이상 가난하지 않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살고있다면 그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해질 방도가 없다.

여전히 사람들은

타인의 삶을 관음하고

스포츠 선수의 승리에 기뻐하고

정치 뉴스에 요동하며

좋은 제품을 싸게 사기 위해 검색하고

챗gpt와 함께 일을 하고

아프면서도 일하고 사랑하고

시간을 쪼개 병원을 간다.


미숙하고 가난하고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어린 시절은

실제하는 불안 때문에 쉴 수 없는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마 그것이 '일단 대학만 가면'으로 함축되었던 것 같다.

그것은 모두의 믿는 구석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이어졌다.

취직만 하면, 결혼만 하면 애만 낳으면, 애만 크면, 집만 사면

곧 돈만 벌면으로 끝없이 함축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정말 돈을 벌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정말 돈을 벌면'이라는 때는 오지 않았고

그것이 문자 그대로 경제적 풍요

즉, 죽을 때까지 먹고 살만한 돈과 자가 집이 있다는 의미가 아니란 것을

'일단 대학만 가면' 처럼

삶의 무의미성과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하는 삶 사이의 모순 속에

고통 속에 삶을 놓지 않도록

달콤한 사탕 같은 위로였던 것이다.

아무 것도 해결해주지 않으나 당장은 달콤한.

그러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새

주름진 얼굴과 하얗게 센 머리를 발견하고

어쩌다 이리 오래살았는지 싶지만


여전히 홀로인 자식을 두고 죽을 수 없어

자신도 별로 행복하지 않았던 결혼을 종용하고

일하고 애키우느라 즐기지 못했던 삶을 아쉬워하며

맛집과 명소를 검색하고 해외여행 항공권을 산다.

나이들면 쉴 수 있을 줄 알았건만

홀로됨은 외롭고

함께있으면 자유롭고 싶고

놀자니 몸이 아프고

몸이 건강하니 앞으로 살 돈 걱정이 된다.


몰랐었다.

나는 현명하게 살 줄 알았고

딱, 때가 오면

모든 것이 준비되면

사랑하는 이와 소박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알콩달콩 살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때란

물리적인 조건이 아니었음을

더이상 드라마나 영화, 소설, 인터넷 기사, 가까운 사람들이 아닌

내게 의문을 갖게 되었다.


꼭 그렇게 까지 해야하니.

도대체 어쩌라는 거니.


준비해야하는 것은

정말 준비했어야하는 것은

마음이었다.


고통을 의연히 받아들일 수 있는 굳은 심지와

겸손한 밥상도 맛있을 수 있는 담백한 미각과

돈없이도 즐길 수 있는 풍요로운 감성과

풀밭에 홀로 누워 하늘을 볼 수 있는 자존감과

조건없이 사람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용기를

준비했었었야 했다.


나이들면 잘 배워지지 않는 것은 외국어만이 아니었다.

뇌가 굳기 전에 신경 세포 곳곳에 각인시켜야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감각과 움직임과 마음이었다.


그렇게 소홀히 한 탓에

자라지 못한 옹색한 마음은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듯 쫒기고

쉬고 싶다며 자해하는 고통에 울부짖게 되었을까?


어디로든 도망쳐 그토록 한국을 떠나고 싶었지만

외국어 때문에 번번히 좌절했었다.


하물며 이토록 굳어진 마음을

몰랑몰랑하게 할 수 있을까?

보이지도 않는 곳에 감정공포로 각인된 원시의 뇌를

새롭게 느끼게 할 수 있을까?

외국어를 못하면 한국에서 살면 되었지만

마음이 없이는 이 생을 떠야한다.

막다른 골목에 이른 우리들은

여전히 분주히 쉴 날을 꿈꾸며

무엇이라도 해대며 지내고 있다.


마술처럼,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나 빅피쉬처럼

환상으로 서로를 위로하며 고된 삶을 잊었던 것이

얼마나 따뜻한 것이었는지 이제는 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어른이 되었고

품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깨어진 환상의 날카로운 모서리가

생살 깊숙히 파고 들어 서로를 찢기우고 있다.


어른의 순수성이란 진실에 대한 조건없는 믿음과 사랑일 것만 같다.

내가 써놓고도 무슨 말인지 잚 모르겠고

그것을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어떤 것도 단언할 수 없으나

희미한 빛을 쫓으며 용기를 내 디딛는 한걸음이

진실과 가까워지는 법이란 것만 알 수 있을 뿐.


마주한 진실이 마음이 되고

더이상 춥지도 데이지도 않는 따뜻한 피가 도는 생이 되길 꿈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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