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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 Feb 06. 2023

풍요하리의 바느질 도감 - 10

봄의 정취를 담은 튤립 펠트 컵홀더

며칠 전 입춘이 찾아왔다. 그날은 유독 햇살이 반짝였고 봄이 곧 찾아올 테니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언니가 점심을 먹으면서 오늘이 '입춘'이라고 말했다. 그제야 오늘 햇살이 유독 따뜻하게 느껴졌는지 깨달았다. 절기에 대한 감각도 지식도 부족한 나는, 엄마와 언니가 이야기를 해줘야 인식하곤 한다. 

수많은 절기들이 지나갔지만 '입춘'은 올해 유독 반갑게 들린다. 이번 겨울이 유난히 추웠기도 했고 마스크에서 자유로워지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니 밖으로 돌아다닐 생각에 괜히 들뜬다. 그리고 매년 봄이 되면 생각나는 언니의 작품이 있다. 바로 펠트로 만든 튤립 컵홀더이다.


2019년 봄, 언니 하리는 조그마한 1기 작업실을 꾸리기 시작했다. 엄마의 도움으로 용기를 냈고 이내 우리 집 최초 자영업자가 되었다. 1기 작업실은 지금 작업실 보다 작고 손댈 곳이 많은 장소였지만, 언니 하리는 직접 바닥 장판을 시공하기도 하며 내부를 정성껏 꾸몄다. 환골탈태한 작업실 테이블 위에 선물 받은 핑크색 튤립을 꽂아두니 분위기가 확 살았다. 평소 튤립을 좋아했던 언니 하리는 튤립으로 꼭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그 무렵 일회용품 사용에 대한 문제의식이 사회 전반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시원한 커피 한 잔을 테이크 아웃하여 마시면 반드시 사용되는 컵홀더, 편리하게 잘 사용할 수 있지만 계속 버려지는 쓰레기가 되는 것이 아쉬웠다. 이때 언니는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한 디자인을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2019년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무렵, 튤립을 모티브로 한 컵홀더를 제작한 것이다.


몸체는 발수성이 뛰어난 펠트를 사용했다. 패브릭의 흐물거리고 쉽게 젖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또, 안쪽은 하드펠트를 덧대었는데 이를 통해서 단단한 셰입으로 유지할 수 있다. 단순한 컵홀더는 컵을 감싸는 정도의 용도가 있지만, 언니의 작품은 캐리어 역할까지 겸해야 했기에 탄탄한 형태감이 중요했다. 실제로 사용하는 종이컵홀더를 해체해서 가장 이상적인 크기를 정하기 위해 여러 시행착오를 거쳤고 이내 컵홀더의 적정 크기가 정해졌다.


컵홀더에 아플리케 기법으로 바느질되어 있는 튤립 모티브에도 언니 하리의 의도가 담겨있다. 단순히 튤립을 그대로 재현해 내는 것이 아니라 이파리와 꽃잎이 각각 떨어진 독특한 디자인인데, 이는 세련된 인상을 준다. 그림을 그릴 때에도 모든 선을 잇거나 면을 채우는 것도 방법이지만 단순한 색감을 사용했을 때 각 모티브가 떨어져 있으면 조금 더 세련되고 독특한 느낌으로 완성된다. 이때의 하리는 컵홀더에 그러한 감각을 자연스레 녹여서 디자인하였다. 그래서인지 2023년 봄에 이 작품을 보아도 여전히 예쁘고 세련된 느낌이다. 그 뒤로 여러 컵홀더 디자인을 했지만 그중에서도 이 컵홀더가 가장 돋보이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 뒤로 무수히 많은 작품들이 탄생했고 언니 하리의 디자인도 더욱 발전했다. 앞으로 소개할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여전히 공방 한편을 지키고 있는 맏언니 격의 이 컵홀더는 '풍요하리'라는 사업자명을 사용하던 초기에 만들어졌다. 그래서인지 이 컵홀더를 보면 초창기의 우리 공방이 떠오르며 초심을 아직 잊지 않았구나 하고 안도하게 된다. 우리는 여전히 이 색감을 놓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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