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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 Feb 17. 2023

풍요하리의 바느질 도감 - 21

그림책 [갈기 없는 사자]의 캐릭터 티 코스터

내가 2019년 회사를 다닐 때 온 정성을 다하여 만든 그림책이 있다. 잘하고 못하고는 상관없이 어떤 내적 동기에 의해서 정말 만들고 싶어 제작했던 그림책 [갈기 없는 사자]다. 지금 살펴보면 그림도 엉성하고 내용도 허술하기 짝이 없지만, 그 당시 내게는 살아가는 동기가 될만한 중요한 존재였고 꼭 해내고 싶었던 일이었다. 그림책을 잘 만들기 위해 휴직까지 고려했으니 말이다. 바쁜 일상과 부족한 시간 속에서도 시간을 쪼개고 퇴근한 후에도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약 9개월의 시간이 흘러 첫 그림책이 완성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림에 자신감이 없었다. 그림 그리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시점이라 그런 것이겠지만, 내 그림이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본적이 없었다. 그래서 언니 하리가 나의 그림을 바느질 작품으로 만들겠다 했을 때 회의적인 마음이 가장 먼저 들었지만 한 편에는 어떤 기대감도 생겨났다. 언니의 바느질 실력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대로 재현해 낸다면 꽤 마음에 드는 작품이 나올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녀작인 그림책이지만, 그림책 캐릭터들은 나름의 성격들이 존재한다. 먼저 갈기 없는 사자는 자신의 콤플렉스로 인해 소심하면서도 다른 이들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캐릭터이다. 다람쥐는 장난기가 많고 짓궂지만 쾌활하고 사랑스러운 녀석이고 코끼리는 무난하고 우직한 성격이다. 사슴은 조용하고 차분하며, 주인공의 조력자인 토끼는 의리 있고 적극적이다. 파랑새 또한 마찬가지인 성격이다. 각 캐릭터의 얼굴마다 성격에 맞는 표현을 하기 위해 노력했고 이런 노력은 언니의 바느질을 통해 그대로 표현되었다.


사용한 재료는 보드라운 천연소재의 울펠트와 패브릭이다. 물이 튀거나 얼룩이 묻어도 펠트가 지닌 내수성 덕분에 어느 정도 오염이 방지될 수 있다. 얼굴은 마치 그림을 그리듯이 바늘 땀 하나하나로 표현되었다. 작고 동그란 눈에도 반짝이는 빛이 스며들 수 있도록 흰색 실로 자수를 놓았다.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것이 언니 하리의 주특기다. 귀 안쪽은 그림에 칠해진 색을 기본으로 하여 예쁘고 다양한 톤의 원단을 골라 아플리케 했다. 예쁜 귀 원단 덕분에 캐릭터들이 화사한 블라우스를 걸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갈기가 없는 사자를 놀리던 친구들은 토끼와 파랑새를 통해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게 된다. 상처받은 사자를 위해 직접 그가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무대도 만들어주고 멋진 꽃 갈기도 만들어준다.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숨은 사자를 걱정하던 토끼 덕분에 사자는 무사히 마을로 돌아올 수 있었다. 사자와 토끼는 서로의 조력자가 되었다. 사자는 예쁜 목소리로 토끼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고 토끼는 그런 사자를 응원한다. 


언니 하리는 사자에게 빨갛고 예쁜 포인세티아를 만들어 달아 주었다. 사자만 특별히 달아준 멋진 장식이다. 그림책을 재출간하기 위해 고려하면서 사자의 MBTI를 파워 ‘E’로 바꿔볼까 조금 고려해 보았다. 애초에 무대 체질이라서 이곳저곳 휘젓고 다니는 모습도 재미있을 것 같다. 하지만 원작은 원작대로 소중히 남겨두기로 마음먹었다. 소심하던 활발하던 개인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성격이고 존중받아야 할 자신만의 특성이니까 말이다.


그림책 [갈기 없는 사자]는 내게 '처음'을 만들어준 작품이다. 언니 하리에게 바느질 도감 제1화 작품이 있는 것처럼 내게도 새로운 그림책을 만들 수 있게 만들어준 고마운 주인공이다. 이런 그림책 캐릭터들을 손바느질로 만들어준 금손 하리에게 참 고마운 마음이 드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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