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없어요’ 헥사곤 플라넬백
그날은 풍요하리의 두 번째 겨울이었다. 몸도 마음도 꽁꽁 얼려버릴 것 같은 추위에 팬데믹까지 겹쳐 어딜 돌아다니는 것이 쉽지 않았다. 우리 자매는 공방에만 틀어박혀 열심히 작업만 하다 이내 답답함을 느꼈고, 동네 카페로 뛰쳐나갔다. 언니 하리는 오랜만에 큰 가방 작업을 하고 있었다. 육각형 패치 조각들이 연결되어 있는 숄더백이었다. 알록달록한 색감과 아기자기한 소품만 만들던 하리는 무언가 색다른 것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고양이, 쥐와 같은 동물 모티브를 여전히 좋아하지만 무난하고 누구나 들고 다닐 수 있는 가방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평소 사용하지 않던 색깔의 천을 꺼내놓고 배치를 하기 시작한 하리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그리고 며칠간은 끙끙 앓았다. 자주 사용하던 색 배치가 아니기에 어려움을 느낀 것이다. 밝고 채도가 높은 색들은 조금만 섞어두어도 눈이 화사해지지만, 무채색 계열은 뚫어져라 쳐다봐도 눈에 예뻐 보이지가 않아 천들을 배치하다 덮어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다 언니는 어떤 묘안을 찾았는지 원단들을 뒤적거리기 시작했고 이내 청지 원단을 들고 나왔다. 가져온 청 원단들을 패치워크 중간중간에 배치하니 훨씬 감각적이면서 칙칙해 보이지 않아 보였다. 도트 무늬, 진한 색의 청 등 다양한 원단을 넣어가며 최선을 찾아나가는 언니 하리의 모습이 멋져 보였다.
이왕 이렇게 된 이상 고양이 모티브도 넣지 않기로 결정했다. 퀼트 소품들은 항상 상품명에 ‘고양이’라는 단어를 넣었는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고양이 모티브를 제거해 버리고 이름도 ‘고양이는 없어요. 헥사곤 플라넬 백’으로 지었다. 어느 누구도 이유를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풍요하리 아이템에서 고양이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친절하게 타이틀에 이 부분을 넣어보자고 결정했다.
가방에 사용된 각각의 헥사곤 패치에는 은은한 갈색, 보라색이 섞여 있는 반짝이 실을 사용했다. 반짝이 실은 사용하기 조금 까다로워도 스티치를 놓게 되면 은은하게 천에 융화되어 튀지 않고 잘 어울려 보인다. 우리 디자인의 치트키인 반짝이실을 모든 헥사곤에 스티치로 수놓았다.
하리는 가방 입구도 쉬이 두지 않았다. 독특한 스티치 기법을 사용해 마치 꿀벌이 앉아 있을 것 같은 반 육각형의 모양을 수놓았다. 거기에 깊은 밤하늘을 담고 있는 남색 시드 비즈를 함께 수놓아 입구에 포인트를 넣어주었다. 사진처럼 스티치에 사용된 실은 헥사곤 패치워크 원단 하나와 색이 유사하다. 여러 색이 혼재되어 있는 패치워크된 천과 바이어스의 스티치를 서로 연결 지어 보일 수 있도록 유사색 실을 사용했다. 눈썰미 좋은 사람들은 어떤 원단의 색을 참조했는지 바로 알아봤을 것이다. 또, 언뜻 보이는 가방 안감은 겉면에서 볼 수 없는 한 폭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고양이도 없고 아기자기한 천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우아함과 은근한 매력을 담고 있는 가방이다.
모델 겸 나도 직접 가방을 메보고 사진도 찍어보았다. 큼지막해서 책은 물론 웬만한 잡동사니가 다 들어간다. 가방 스트랩은 천연가죽 소재이고 두 겹이 덧대어져 있어서 튼튼하다. 스트랩도 직접 바느질로 수놓아서 완성하였다. 옆면은 가방 입구가 너무 벌어지지 않게 양쪽 똑딱이를 달아주었는데, 똑딱이는 싸개 단추다. 가방에 걸맞게 금속성이 드러나지 않고 잘 감춰질 수 있도록 짙은색 원단으로 싸져 있는 똑딱이를 사용했다. 그 덕에 고급스럽게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춥게만 느껴지던 그 겨울, 동네 카페에서 언니가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며 완성한 가방은 바느질을 좋아하는 여러 사람들 손에서 다시 만들어졌다. 이 가방은 설명서를 별도 제작하여 패키지로 판매되었는데, 직접 만든 후기를 보니 각자의 개성을 담아 예쁘고 빛나보였다. 우리에게는 큰 도전이었던 색다른 디자인의 가방은 또 다른 취향을 지닌 이들의 마음을 움직여 우리와 연결해 주었다. 그래서 여전히 우리에게 ‘고양이는 없어요. 플라넬 백’은 따뜻하고 포근한 겨울 이불 같은 존재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솜도 두껍고 재질도 보드라워서 덮으면 따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