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 해보겠다고 퇴사했는데 팬데믹이 와 버렸어요..
코로나가 전파되기 직전에
자발적으로 퇴사했다는 사실은
단계별로 내게 각인이 되어갔다.
처음에는 안심으로
다음에는 끝이 없는 불안감으로
현재는,
자발적이던 타의에 의하던
두렵지만 딛고 일어서야 하는
발판으로 말이다.
초기-안심과 합리화의 과정
2015년 첫 번째 회사를 그만뒀을 때도 메르스가 전국에 유행했다. 그때는 딱히 무언가 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어려워진 회사 사정과 더 이상 마음 나눌 동료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컸다. 그리고 20대 중반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과 젊음이라는 패기도 있었다. 하지만 불안했다. 잘하는 것, 내가 쌓아놓은 경력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는 나날이었다. 3개월 뒤 바로 취업했지만, 그 길도 내 길은 아니었다.
그리고 2019년 12월 6일 나는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많이 숙고했고 고민했고 아픈 과정을 거쳤다. 수 없이 대뇌인 한 마디를 내뱉고 나서는 모든 긴장이 풀렸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닌 지난한 시간의 시작이 되리란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바로 코로나 19가 전염되기 시작한 지점이었던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이윽고 12월 말경 나는 회사를 나왔다. 정말 힘들게 버틴 곳이지만 울타리를 벗고 나온 세상은 차갑게 얼어붙은 겨울이었다. 날씨도 추운데 미디어를 통해 매일 마주하는 세상은 더 차가웠다. 그때 처음 느꼈던 감정은 ‘다행인 건가’였다. 모든 게 번 아웃된 내게 코로나의 위협은 더욱 크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감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모두가 두렵고 힘든 상황이 찾아왔다. 전 세계로 위기가 찾아온다고 했다. 검색 포털 앞면에 장식된 두려움의 숫자들과 나날이 늘어가는 비관적 뉴스들에 도피하기 시작했다. 내 안과 밖의 눈을 모조리 가려버린 시간이었다.
네 전 회사 동료들은 휴직에 들어갔다더라
기세는 점점 강해졌고 언텍트의 시대가 다가옴에도 언젠가 나아지겠지, 잠잠해지겠지 하는 등의 성취될 기약 없는 소망들은 나날이 늘어갔다. 그때 나는 그림을 매일 그리기 시작했다. 정말 하고 싶었고 매일 이뤄내고 싶었다. 세상에 대한 귀를 닫은 채 매일 그림만 그리며 살았다.
그림은 일상에 위안을 주고 마음을 안정시켜주지만 내 생계를 바로 책임져주지는 못했다. 이윽고 전 직장에 대한 이야기까지 들려왔다. 퇴사하고 중반부까지는 이루 말할 것 없이 흔들리고 힘들었다. 퇴사하지 않았다면 휴직도 하고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까지 들자 마음속에 큰 웅덩이가 파이고 그 안으로 내가 잠식당하는 기분이 들어 숨도 잘 안 쉬어졌다. 이 혼란스러운 시대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나의 동료들의 고통마저 공감하지 못할 정도로 모든 감각이 마비된 느낌이었다.
어쩔 수 없어도 나는 7년간 직장인이었고 그 이외의 방식으로 돈을 벌어본 적이 없었다. 나는 매일 숨 쉬듯 하던 루틴을 버리고 모두가 힘들다고 하는 길을 가려고 했다. 그래서 애써 사실을 직시하지 않았다. 네가 그림 그려봤자 그 실력으로 얼마나 버티겠냐며 조롱하던 지인의 하등 쓸모없는 말조차 이때는 더 커다랗게 짓눌렀다. 스스로의 무게를 찾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 이때는 아직 언니가 운영하는 공방에 적극적으로 운영 개입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나는 정말 무능한 사람이 된 걸까? 수십 번, 수천번 스스로에게 물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귀퉁이 작은 공방에 나와 언니, 그리고 들르는 여러 고양이들이 머무른다. 수익은 여전하다. 아직 갈길이 먼 두 자매다. 코로나로 인한 언텍트는 더 강해졌다. 하반기 진행 예정인 대면 강의 4건이 잠정 중단 상태다. 그렇다면 코로나 시대 자발적 퇴사자는 그냥 조용히 회사로 돌아가야 할까?
8개월간 코로나 자발 퇴사자로서 살아온 경험에 비추어보면 아직은 포기할 때가 아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내가 이때껏 어떻게 버텼는데 하는 마음이 아니라 진짜 뭐 좀 해보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다행히 전 회사 근속 3년간 몸에 밴 매너리즘, 무기력증의 흔적들이 옅어지는 게 눈에 보인다. 일을 좋아하던 내가 일을 싫어할 만큼 많이 안 맞았던 그때 그 생활이 이제 과거가 돼 버렸다.
그래서 지금 나는 코로나 시대 자발적 퇴사자로 살고 있지만 능력 퇴보자는 아니다. 오히려 지금 더 많이 배우고 공부하고 더 많이 운동하고 있으니까. 아직도 혹자는 그래 봤자 회사 다닐 때만큼 돈은 못 벌잖아라고 물어보고 싶을 테지만, 이건 하나 이야기해줄 수 있다. 처음으로 내 그림으로 돈을 벌어봤다고, 오래 참고 오래 힘드니까 이런 날도 있다고.
그러니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조금 더 노력하겠노라고, 더 많이 알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조금 덜 벌더라도 좀 더 앞으로 내딛으면서 살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자발적 퇴사가 아닌 분들에게도 꼭 같이 한 걸음 나아가자고 말하고 싶다. 지금 힘들고 아파도 지금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마음껏 그 시간을 애도하고 나중에 조금 나아졌을 때 툭툭 털고 함께 일어나자고 말이다. 나처럼 세상에 귀닫지 말고 활짝 열어서 새로운 가능성을 함께 만들어가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