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의로운 민트초코 Apr 04. 2024

서울역에서 난 종종 쌀국수를 먹어

떠나고 싶은 날 현생을 버티기 위해

내가 다니는 회사는 서울역에서 아주 가까운데, 커다란 배낭이나 캐리어를 짊어진 여행자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회사 건물 앞에서 달뜬 얼굴로 사진을 찍는 여행자도 종종 본다. 내 현생인 이곳이, 누군가에겐 여행 중 마주친 새롭고 낯선 곳이라는 사실. 여행자들을 보면 슬며시 미소가 나오지만, 곧바로 지체 없이 나의 현생을 살아내기 위해 발걸음을 돌린다.

대학시절 적어도 1년에 한 번 이상, 부지런히 해외에 들락거렸다. 내가 정말 잘한 일이 있다면 직장인이 되기 전 홀로 여행을 종종 다녔다는 점이고 아쉬운 게 있다면 아시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휴가 쓰기가 어려울 줄 알았다면 유럽이나 미국은 역시 학생 때 다녀왔어야 하는데. 목돈을 모아야 한다는 부담에 동남아시아만 골라 다녔다.

종종 휴대폰 사진첩에서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을 둘러본다. 괜히 스카이스캐너, 아고다를 들락날락하며 비행기표와 내가 다녀온 숙소 가격도 찾아본다. 슬리핑 버스에서 아침을 맞이하고, 휴게소에서 라오스 아저씨들이 사주는 쌀국수를 넙죽넙죽 잘도 받아먹던 나. 에어컨도 없는 저렴한 게스트하우스, 언제 세탁했는지 모를 침대 시트 위에서 잘도 자던 나. 시장 노점에서 비닐봉지에 담아주는 달콤한 커피를 꿀떡꿀떡 들이켜던 나.

꼭 돈 때문에 동남아시아만 골라다닌 건 아니다. 물론 비교적 가깝고 물가가 저렴하긴 하지만, 어디서나 저렴하고 맛있는 쌀국수를 먹을 수 있다는 것. 내가 동남아시아를 사랑한 이유 중 하나다.

당연히 나라별로 쌀국수 특징들이 있는데, 어쩐지 라오스에서 먹은 쌀국수가 해장에 가장 알맞았던 기억이 난다. 베트남은 남부와 북부의 쌀국수 스타일이 달랐는데, 가장 최근 다녀온 북부 지역에선 소스에 적셔먹는 분짜와 해산물 쌀국수인 반다꾸어를 맛있게 먹었다.

동료와의 점심 약속이 취소된 어느 날, 도시락을 싸 오지 않아 오랜만에 쌀국수를 먹으러 갔다. 쌀국수는 내가 가장 즐겨 먹는 외식 메뉴다. 자주 가는 쌀국수집은 가격이 비교적 저렴하고 위생과는 거리가 멀다. 맛은 그럭저럭이다. 그 비위생과 그럭저럭이 어쩐지 좋아서, 종종 그곳에서 현생에서의 지겨움을 달랜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서울역은 늘 여행객들로 붐빈다. 캐리어를 끌고, 배낭을 메고 그들은 어디로 갈까. 어디든, 참 좋겠다.


점심시간은 늘 짧지만, 점심시간이 지나야 퇴근을 하니까. 오후도 잘 버텨보자며 중얼거린다. 한 조직의 구성원으로 현생을 살아내려면,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을 받으려면, 일단 오늘은.

라오스, 태국의 쌀국수
서울역 쌀국수 모음.zip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