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장 줄리어스 시저의 성장

by Poorich

영어로 시저(Caesar)라 불리는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는 기원전 100년에 로마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수준 높은 교육을 받으며 정치가로서의 꿈을 키웠기 때문에 대중 선동에 능했고, 정치적인 수완도 뛰어났다. 30대에 이미 재무관과 법무관 등의 직책을 거치며 입지를 다졌고, 40대에는 갈리아 전쟁과 브리튼 섬의 원정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명실상부 로마의 새로운 권력으로 부상한다.


로마 제국의 역사에서 세 명의 지도자가 권력과 역할을 분할해 통치한 것을 ‘삼두 정치(三頭政治)’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triumvirate라고 한다. 삼두 정치에서 ‘삼두(三頭)’는 ‘세 명의 지도자’를 뜻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힘이 커지면서 기원전 60년에 폼페이우스, 크라수스, 카이사르 등 세 명의 집정관(consul)이 로마 제국을 운영하는 제1차 삼두 정치를 시행하게 되었다. 제2차 삼두 정치는 카이사르가 죽은 후에 그의 측근이었던 안토니우스와 레피두스, 옥타비아누스에 의해 시행된다.


킨키나투스(Cincinnatus)는 기원전 5세기 로마의 공화정 초기에 활동한 정치가이다. 집정관의 자리에 오르지만, 1년의 임기가 끝난 후 은퇴해 고향으로 돌아갔다. 기원전 458년에 이민족의 침입으로 로마가 위기에 처하자 로마의 귀족들은 킨키나투스를 독재관으로 추대하고 전권을 위임했다. 킨키나투스는 전시 체제로 전환하고 짧은 시간 안에 군대를 양성해 위기에 처한 로마를 구한다. 그리고 임기가 남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권력을 버리고 귀향한다. 킨키나투스는 이상적인 정치인의 표상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그의 이름은 ‘숨어 있는 위인’을 상징하는 용어로도 쓰인다.




<아빠와 딸의 육성으로 녹음한 책 내용>

https://drive.google.com/file/d/1O-eRUx2ew2ZZ_5tYJPCXlM9awdTitp87/view?usp=sha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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