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Spirit Reading

살아있는 묵상의 방법

by Poorich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안하고 있다면 내일부터 당장 시행하세요. 작은 수첩을 하나 사!


요정도 크기로 사고 아침이 제일 좋아요. 아침이 왜 좋냐면 아침 시간이 이성적인 시간이에요. 논리적이고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탐구하기에 가장 최적의 상태라 이거지요.


그래서 아침에 성경을 펴요. 내가 여러분들처럼 교회에서 직장 생활을 한다면 난 아침에 한 시간 반 정도 일찍 나오겠어요. 더 열심 있으면 두 시간 정도 기도를 하고, 그리고 조용한 장소에서 큐티를 해야지요.


그런데 큐티 하는 방식이, 성경을 펼치고 성경을 한 장 읽어야 되겠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난 성경 한절을 열두 시간 읽은 적도 있어요. 그러니까 천천히 성경을 읽어가면서 하나님이 자신에게 말씀해주시기를 마음으로 간절히 바라면서 성경을 읽으면 읽어가다가 더 이상 읽기 어려운 지점이 등장을 해요. 그러면 어디까지 읽어야 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지 말고 거기서 멈춰요. 그리고 다시 돌아가요. 마음에 걸렸던 그 부분을 한번, 두 번, 세 번, 네 번 읽어가요. 그러니까 시간이 필요하지요. 오 분 내에 뚝딱 해 치우려고 하면 안 된다 이거지요. 시간이 필요해요. 천천히 읽어요.


두 번 세 번 읽었는데도 처음에는 뭔가 가슴에 와 닿는 게 있는 것 같더니 느껴지지 않아요. 그러면 계속 나가는 거예요. 그러면 한번, 두 번, 세 번 읽으면서 점점 메시지가 아주 뚜렷하게 다가오는 지점이 있어요. 그러면 멈춰요. 그곳을 천천히 읽고 글의 앞뒤 문맥을 생각하면서 거기에 몰입해요.


그러면 거기서 메시지가 들려요. 말씀의 참된 맛을 잊어버리니까 이 사람들이 이렇게 통곡하면서 우는 구나. 자기 자신의 처지가 생각이 나는 거예요. 하나하나 논리를 세우면서 읽어요. 깨달아져요.


그러다보면 어떤 때는 더 이상 참기 어려운 때가 와! 혹은 그 정도 까진 아니어도 감동이 와! 그다음에 중요한건 그렇게 감동을 받은 메시지를 붙들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 하는 거예요. 퍼지지 말고 기도를 확대하지 말고 거길 초점에 딱 맞추는 거예요.


이렇게 통곡하고 우는 이 모습이 제 모습입니다. 제가 바로 그랬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는 나도 명확하게 규명할 수 없는 사실은 수많은 탐욕들이 있었고 그 모든 하나님 앞에서의 패역한 반응 밑바닥에는 여러 날 동안 말씀에 대한 감화를 잃어버리고 살았던 그런 나의 영적생활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가 맛대가리 없는 음식이였던 것처럼 내게도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무미건조 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렇게 기도가 막 쏟아져 나오는 거예요.


때로는 그 기도가 새벽에 나와서 하는 그 기도보다 훨씬 깊고 훨씬 장시간의 기도가 될 수 있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에 이런 감화가 없으면 기도만을 놓고 불을 붙이려고 하는 것은 마치 뭐와 똑같으냐하면 쏘시게 없이 방금 산에서 베 온 큰 통나무를 놓고 계속 성냥불을 계속 켜려는 것과 같은 거예요. 결국 실패해요.


그렇게 하고나면 마음에 흡족한 감동이 쭉 오고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로 적셔지기 시작하지요. 그런데 웬만큼 강렬하거나 혹은 머릿속으로 잘 정리해 놓지 않으면 그렇게 받은 은혜를 삼일 뒤에 다시 반복해서 고백을 하라고 하면 못하는 경우가 허다해요.



그래서 그다음에 뭐냐면 노트가 필요한 거예요. 사라지기 전에 즉시 바로 그 자리에서 펼쳐서 그래서 그것을 기록을 하기 시작하는 거지요.


그래서 어떻게 하냐면 이렇게 뼈대를 만드는 거지요. 만약에 내가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 준다면, 혹은 앞으로도 내가 참고 하면서 이것을 보고 받은 은혜를 충분히 회상 할 수 있기에 충분할 정도로 기록을 하는 거예요.


맨 위에다 성경구절을 적고, 그리고 기록을 하는 거예요. 이렇게, 이렇게 그러다 어떤 때는 굉장히 많은 메시지를 주시는 거예요. 이렇게, 그리고 수시로 이전에 묵상한 내용들을 다시 묵상해! 그러면서 살아가는 거예요.


하나씩 이렇게 어떤 땐 노트가 없어 광고 전단지에다 해 놓았다가 성경책에 끼었다가 노트에다 갖다 붙여. 그러면서 하나하나 씩 그렇게 하면서 아무리 많은 학문을 하고 말씀에 관해서 많이 탐구를 하고 그래도 그것으로서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니에요. 자기마음에 계속 살아 있어야 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그렇게 매일매일 살아가지 않으면 결국은 미끄러진 자가 되는 거예요. 반드시 미끄러진 자가 돼! 그러면 어떻게 그렇게 매일 매일 은혜 받을 수 있습니까? 아니에요. 제가 한 두 달 전에 (처음에는 적응 안돼서 부작용이 났던 런닝 머신도 적응 되어 가면서 개운하게 잠을 잘 자게 되고 저녁마다 달리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된다는 이야기 이하 생략!) 살기 나름이라 이거에요.




여러분에게 이거 하나 이야기 해 주고 싶어요.


내일 아침에 당장 시행을 하면, 내일 아침 당장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거라곤 기대하지 마요. 무슨 이야기냐 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좋아하시지 않을 때 는 성경을 두건 뒤집어쓰고 읽어도 가슴에 하나도 다가오지 않아요. 말씀 안 하셔요. 그래서 사람들이 큐티를 계속 못하는 거예요. 말씀 안하셔요. 이런 이야기 하긴 뭐하지만 어떤 때는 이틀씩, 삼일씩 전혀 음성을 못 들으면서 성경만 넘길 때가 있어요.


그러면 하나님 앞에 다시 나가서 내 마음의 더러움을 고백하고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시지 않는지 하나님 앞에 아뢰는 거지요. 도와 달라고 기도하는 거지요.


그리고 성경을 읽어요. 그러면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실 때는 너무 놀라운 게 뭐냐면 시간이 없어서 성경을 잠깐 폈는데도 한절을 읽었는데 거기서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노트가 늘어나게 되는 거예요. 시리즈가 많아지게 되는 거지요. 그렇게 하면서 살아가는 거예요.


그런데 거기에서 맛보는 그 즐거움이 그까짓 참외나 먹고 마늘이나 먹어서 정욕이 생겨나는 그런 기쁨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거지요.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비밀이야. 그렇게 해서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거지요. 다른 길이 없어요. 이것은 거룩한 삶을 위한 양보할 수 없는 조건이에요.


그리고 거기에서 하나님을 향한 방향이 바로잡힌 간절한 기도가 나오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가운데는 육체의 게으름을 이기고 새벽기도에 나오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러나 기도하지 못한다면 안 나온 거나 마찬가지에요. 그건 사실이에요. 있는 건 있는 거구 없는 건 없는 거예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말씀에 깊이 젖어야 되요. 그것도 매일매일 젖어야 되요. 그런 상태 속에서 여러분들이 성화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누군가가 여러분들을, 여러분 스스로가 들어간 부패의 자리에서 목덜미를 잡고 기중기처럼 번쩍 들어줄 거라고 생각하지 마요. 그런 일은 일생에 몇 번밖에 일어나지 않아요. 그렇지 않기 위해서는 여러분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해야 되요. 양보 할 수 없는 조건 이에요. 그래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요. 뉴 라이프를 위한 뉴 스타트를 하라구! 삶의 방식을 쇄신해요. 해도 안 되는 삶을 계속 살지 말고 말이에요.


성경을 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나 말씀 하시지 않나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면 여러분들의 영혼의 상태가 어느 지점에 있는지 깨닫게 될 거예요. 그런 개인적인 성경의 탐구 없이 주일날 설교만을 기대 하는 것은 그건 절대로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이 있는 신앙생활이 아니에요.


설교자를 의지하면서 사는 거지 하나님을 의지 하면서 사는 게 아니라 이거지요. 그때에 자기가 개인적으로 읽은 말씀과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 사이에 일치가 이뤄지면서 은혜가 증폭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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