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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치 Oct 29. 2022

휴가의 의미

나라마다 다른 것인가?

휴가 불가침 조약을 맺어주세요.

휴가예요?
미안해요. 신경 쓰지 마세요.

휴가기간에 이슈가 생겼을 때 외국인 매니저에게 종종 듣는 이야기이다. 마찬가지로 그들이 휴가라고 하면 아무리 급하고 중요한 일이라고 거의 ‘무응답’ 수준이다. 거의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래도 몇몇은 이메일로 보내 두면 시간 날 때 한 번 체크하겠다는 대답을 하긴 한다. 재미있는 점은 직급이 낮을수록 오히려 휴가 때는 철저한 무응답이다. 아얘 메신저도 오프라인으로 설정하는 게 보통이다.

한 번은 유럽 쪽 직원과 같이 국내 기업의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 국내 고객인 기업으로부터 데이터를 받아야 하는데 계속 지연되고 있었다. 유럽 친구는 점점 채근의 강도를 높이더니 급기야 다음 주 까지 안 주면 기한 내에 일 못한다는 것이다. 왜 그런지 이유를 물어보니

‘나 2주간 휴가야!’

‘아. 그렇군’

신성한 휴가를 위해 나는 이제 고객을 압박했고, 결국 그 친구가 말한 날짜 하루 늦게 데이터를 넘겨주었다. 다행히 야근을 했는지 몰라도 기한 내에 일을 처리해주어서 무사히 프로젝트가 진행이 되었다.


우리나라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올라왔다. 아마도 상사에게 들을 수 있는 말은 정해져 있는 듯하다.

아무리 휴가라고 해도 그렇지.
일은 처리해야지


사실 조직을 구성하는 개인의 삶이 중요해진지 얼마 안 된다. 프로젝트가 한창일 때 장기간 휴가를 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휴가가 먼저 계획되었고, 프로젝트가 나중에 잡혔다고 해도 잘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휴가를 결제받기 위해 한층 한층 올라가며 사유와 업무 공백 최소화 계획 등을 이야기해야 했던 시절까지 가게 된다. 첫 직장에서도 나중에는 휴가 결제 절차 간소화가 추진돼서 팀장 전결로 휴가를 가기까지 발전하긴 했었다. 그러나 여름휴가가 전사적으로 정해진 기간에만 가능하다던지 3일 이상의 휴가는 몸이 고장 나거나 큰일이 있을 때나 가능한 분위기가 존재했다.


휴가는 어떤 의미 일까?

쉬고 싶을 때 쉼을 통해 다시 움직일 에너지를 마련하는 기간이었으면 좋겠다. 쉴 수밖에 없는 몸의 상태나 혹은 긴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들을 처리하기 위한 시간으로 쓰이는 휴가가 아니었으면 한다.

생산성을 향상하는 좋은 복지는 연봉 다음으로 휴가 아닐까? 휴가에 대한 이미지가 복잡해지지 않고 즐거운 시간으로 단순하게 그려지길 기대해본다.

처음에 오퍼를 받고 일단 휴가가 많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고, 실제로 꽤 많은 연차를 쓸 수 있는 시스템이 주어졌다. 지금은 한국의 제도를 따라가게 되어 슬프지만 그 당시에는 휴가를 연내에 다 쓰는 것도 만만치 않았던 경험을 했었다. 그리고 꼭 다시 하고 싶은 경험이다.


일하지 않는 휴가 기간이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니 당연하면서도 놀라운 느낌이다.


오늘은 다음에 해도 될 회의가 급히 잡혔는데, 그 유럽 친구가 또 2주간 휴가를 가기 때문이었다. 휴가 가서 일 생각하고, 일 할 때 휴가 생각하는 나는 여전히 그가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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