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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치 Feb 13. 2024

꽃중년이 아닌 중년들의 세계

중년이 되었다.

청년이 지났다. 중년에 대한 관용어나 유행어는 많지 많았던 것 같다. 인터넷을 보면, 중년이라는 단어에 꽃이라는 접두사를 붙인 꽃중년이라는 말이 꽤나 널리 쓰이고 있어 보인다. 꽃중년으로 검색하면 나오는 이미지는 꽃이란 단어로도 부족할 거 같은 아름다운 미중년들이 나온다. 본인들도 본인이 잘 생겼다는 것을 충분히 자각하고 있는 그런 미소를 띠며 정장을 차려입고 정면을 응시하는 사진이 대부분이다.

거울을 통해 관찰되는 나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정장을 잘 입지 않기도 하지만, 나도 나의 외모에 대해서는 자각할 대로 자각한 상황이긴 하다. 거울은 보통 아침에 출근 전에 한번 보는 것 같다. 아무리 봐도 꽃중년과는 거리가 멀다. 10년이 더 주어진다 해도 어려울 것 같다. 그럼 나는 뭐지? 그냥 중년인가? 그냥 중년보다는 뭔가 접두사 하나쯤은 괜찮잖아?


나무 중년은 어떨까?

일반적으로 나무는 크고 오랜 시간을 자란다. 묘목시절을 지나며 많은 환경의 변화를 겪어내야 한다. 추위와 더위를 오가면서 튼튼해지고, 비와 바람을 맞으며 맞서는 법을 배운다. 어쩔 수 없이 몸에는 상처가 생기겠지만 버티는 것을 터득한 나무는 한 그루만으로도 하나의 세상을 이룬다. 함께 사는 수많은 생명들이 있고, 또 열매를 내기도 한다. 멋지다. 나무는 보기에도 빠지지 않는 멋짐을 갖고 있다.


풀 중년은 어떤가?

잡초 같이 버티고 버텨서 여기까지 온 중년들. 일단 멘탈이 갑이고 여러 번 밟혀봐서 웬만한 압박에는 시큰둥하다. 민초라는 말이 있듯이, 중년의 실제적인 중앙값은 풀일지도 모른다. 특히나 우리나라의 중년은 그럴 것이다. 중년은 말 그대로 중간에 있으니까. 중간이 갖게 되는 양쪽으로부터의 압박이 늘 있어왔다. 허리라고도 불리지만 그래서인지 허리가 많이 아프다. 하지만 풀들은 홀로 있지 않는다. 서로를 세워주고 기대고 함께 비바람을 이겨낸다. 멋지다. 풀!


나는 흙 중년이고 싶다.

꽃, 나무, 풀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도록 양분을 공급하는 흙. 흙은 처음부터 흙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흔히 말하는 흙수저의 흙과는 다르다. 흙으로 탄생하려면 잘게 부서지고 썩는 과정이 필요하다. 아무것도 아닌 듯 보이지만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C, H, O, N의 흙. 꽃도 나무도 풀도 결국 흙이 없으면 살지 못한다. 세상에서 부서지고 마음이 썩더라도 내 안에는 양분이 풍부한 그런 중년이 되고 싶다.



참고 : 명절에 시골을 거닐다 보니 감성이 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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