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지났다. 중년에 대한 관용어나 유행어는 많지 많았던 것 같다. 인터넷을 보면, 중년이라는 단어에 꽃이라는 접두사를 붙인 꽃중년이라는 말이 꽤나 널리 쓰이고 있어 보인다. 꽃중년으로 검색하면 나오는 이미지는 꽃이란 단어로도 부족할 거 같은 아름다운 미중년들이 나온다. 본인들도 본인이 잘 생겼다는 것을 충분히 자각하고 있는 그런 미소를 띠며 정장을 차려입고 정면을 응시하는 사진이 대부분이다.
거울을 통해 관찰되는 나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정장을 잘 입지 않기도 하지만, 나도 나의 외모에 대해서는 자각할 대로 자각한 상황이긴 하다. 거울은 보통 아침에 출근 전에 한번 보는 것 같다. 아무리 봐도 꽃중년과는 거리가 멀다. 10년이 더 주어진다 해도 어려울 것 같다. 그럼 나는 뭐지? 그냥 중년인가? 그냥 중년보다는 뭔가 접두사 하나쯤은 괜찮잖아?
일반적으로 나무는 크고 오랜 시간을 자란다. 묘목시절을 지나며 많은 환경의 변화를 겪어내야 한다. 추위와 더위를 오가면서 튼튼해지고, 비와 바람을 맞으며 맞서는 법을 배운다. 어쩔 수 없이 몸에는 상처가 생기겠지만 버티는 것을 터득한 나무는 한 그루만으로도 하나의 세상을 이룬다. 함께 사는 수많은 생명들이 있고, 또 열매를 내기도 한다. 멋지다. 나무는 보기에도 빠지지 않는 멋짐을 갖고 있다.
잡초 같이 버티고 버텨서 여기까지 온 중년들. 일단 멘탈이 갑이고 여러 번 밟혀봐서 웬만한 압박에는 시큰둥하다. 민초라는 말이 있듯이, 중년의 실제적인 중앙값은 풀일지도 모른다. 특히나 우리나라의 중년은 그럴 것이다. 중년은 말 그대로 중간에 있으니까. 중간이 갖게 되는 양쪽으로부터의 압박이 늘 있어왔다. 허리라고도 불리지만 그래서인지 허리가 많이 아프다. 하지만 풀들은 홀로 있지 않는다. 서로를 세워주고 기대고 함께 비바람을 이겨낸다. 멋지다. 풀!
꽃, 나무, 풀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도록 양분을 공급하는 흙. 흙은 처음부터 흙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흔히 말하는 흙수저의 흙과는 다르다. 흙으로 탄생하려면 잘게 부서지고 썩는 과정이 필요하다. 아무것도 아닌 듯 보이지만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C, H, O, N의 흙. 꽃도 나무도 풀도 결국 흙이 없으면 살지 못한다. 세상에서 부서지고 마음이 썩더라도 내 안에는 양분이 풍부한 그런 중년이 되고 싶다.
참고 : 명절에 시골을 거닐다 보니 감성이 터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