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타고라스학파는 미가 물질적인 대상의 형식적인 구조 속에 표현되는 객관적인 법칙이라고 생각하였다. 피타고라스는 수를 이 세상의 근원으로 보았기 때문에 아름다움은 그 대상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 간의 수적인 비례에 의한 것이라는 균제 이론을 내세웠다. ⋯ 균제 이론은 부분과 부분, 또는 부분과 전체의 관계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다.
[이것만은 …]
*학문에서의 주장을 달리하는 갈래 ( )
*눈 따위의 감각 기관을 통하여 인간에게 좋은 느낌을 주는 아름다움.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없이, 내적 쾌감을 주는 감성적인 대상. ( )
*정신 또는 인식의 목적이 개념이나 언어에 의하여 표상이 된 것. ( )
*부분이나 요소가 어떤 전체를 짜 이룸. 또는 그렇게 이루어진 얼개. 일정한 설계에 따라 여러 가지 재료를 얽어서 만든 물건. ( )
*주관 작용의 객체가 되는 것으로 정신적ㆍ육체적 자아에 대한 공간적 외계. 또는 인식 주관에 대한 인식 내용. ( )
*물줄기가 나오기 시작하는 곳. 사물이 비롯되는 근본이나 원인. ( )
*표현된 물상의 각 부분 상호 간 또는 전체와 부분 간이 양적으로 일정한 관계가 됨. 또는 그런 관계. ( )
피타고라스학파… 균제 이론
“이게 뭐가 좋은 글이에요, 재미 하나 없구만?”
철수 쌤이 국어 지문의 글을 좋은 글이라고 할 때마다 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투덜거리는 말이다. 문제 푸는 고통은 차치하고서라도 재미가 없어 못 읽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학생들이 오해한 것이다. 철수 쌤은 ‘철수 쌤의 슬기로운 국어 공부I’에서 재미를 좋은 글의 기준으로 얘기하지 않았다. 그 기준이라면 철수 쌤이 생각해도 국어 지문의 글은 나빠도 여간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럼 왜 국어에서는 재미없는 글을 가지고 문제를 내서 미운털을 자초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대학 수학 능력 시험(大學修學能力試驗)이라는 말속에 숨어 있다. 대학 수학 능력(대수능)은 ‘대학’에서 ‘수학(修學, 학문을 닦음.)’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그러니까 대학은 학문(學問)을 하는 곳이니, 학문을 잘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알아보겠다는 것이 대수능 시험인 것이다.
학문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것이 무엇이든 일단 가까이하고픈 것은 아니다. 어렵고, 고리타분하고, 하품 나오게 하고, 살아가는 데 당장 도움이 안 되는 것 같고 …, 여간 싫은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을 할 줄 아는 능력을 측정한다니 어떻게 좋을 수가 있는가? 학문이 재미없는 것은 짜증 지수를 높이는 이론(理論)을 다루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이론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국어 공부의 시작이다. 국어 성적은 올려야 하지 않겠는가?
이론은 개별적 사실(현상)들의 공통점을 파악하여 일반화한 것이다. 예컨대 소금이 눈에 보이지 않는데도 소금물이 짜다든지,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이 움푹 파인다든지, 공기 중에 노출된 철에 녹이 슨다는 것은 달라 보이지만, 그것들의 공통점을 파악해 일반화하면 ‘사물들은 입자로 되어 있다.’는 ‘입자(이)론’을 주장할 수 있다. 흔히 이론의 이름은 핵심 개념이나 그것을 제안한 사람의 이름을 이용해 만들므로, ‘입자’가 입자(이)론의 핵심 개념이다. 한편 이론을 바탕으로 또다시 다른 현상들을 설명한다. 예컨대 입자(이)론을 바탕으로, 우리의 몸은 흙으로 돌아간다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아래 도식과 같이 그 체계를 나타낼 수 있다.
이론은 개별적 사실(현상)들의 공통점을 파악하여 일반화한 것이다. 이론을 바탕으로 또다시 다른 현상들을 설명한다.
지문에서 말하는 ‘학파(學派)’는 학문에서의 주장을 달리하는 갈래를 말한다. 학파의 주장은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근거와 체계를 가지고 있는 이론이다. 지문의 ‘피타고라스학파’는 피타고라스라는 사람을 시작 또는 중심으로 발전한 학파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수학자나 철학자들이 되고자 하는 학생 외에는 알고 있을 필요가 없다. 알고 있으면 도움이 되겠지만, 그것이 국어 공부는 아니다. 국어 공부라 함은 글을 읽으며 위의 도식처럼 생각하는 것이므로, 피타고라스학파에서 주장하는 ‘균제 이론’에 대해 ‘알아 가는’ 것이다.
물질적인 대상의 형식적인 구조 속에 표현되는 객관적인 법칙 … 대상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 간의 수적인 비례… 부분과 부분, 또는 부분과 전체의 관계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어휘로 되어 있는데 이 글이 왜 이렇게 어렵죠?”
이런 하소연을 하는 학생들이 많다. 그런 하소연은 어휘들이 추상적, 관념적일 경우에 심하다. 이론은 그런 어휘들로 이루어져 있어 그 경우에 해당한다. 국어 능력을 기르려면 이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의 방법은 어휘들과 대립되는 어휘들을 함께 묶어 이해해 두는 것이다.
어떤 것을 이해할 때 이원론(二元論)을 생각하면 좋을 때가 있다고 했다. 즉 대상을 고찰함에 있어서 서로 대립되는 두 개의 원리나 원인으로써 사물을 이해하면 좋은 것이다. 다음은 이원론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존재 - 인식
이론 - 실제
보편 - 개별
이(理) - 기(氣)
절대(적) - 상대(적)
추상(적) - 구체(적)
일반(적) - 특수(적)
진짜(참) - 가짜(거짓)
물체(물질, 신체) - 정신
아(我, 자아) - 비아(非我)
이데아(본질, 이상) - 현상(현실)
주관(주체) - 객관(객체, 대상, 세계)
이를 염두에 두고 지문의 ‘물질적인 대상의 형식적인 구조 속에 표현되는 객관적인 법칙’이라는 말을 이해할 때, ‘물질-정신’ ‘형식-내용’ ‘객관적-주관적’이라는 이원론을 이용하면 그 의미가 뚜렷해진다. 그러면 피타고라스학파는 ‘정신’ ‘내용’ ‘주관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이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대상을 고찰함에 있어서 서로 대립되는 두 개의 원리나 원인으로써 사물을 이해하는 이원론을 염두에 두고 어휘를 이해하자.
한편 대수능 시험에서는 고등학생 수준 이상의 내용은 쉽게 풀이를 해준다고 했는데, 이를 고려해 글 속의 내용들끼리 서로 연결하는 방법이 있다. ‘대상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과 ‘수적인 비례’는 앞에 나온 ‘구조’와 ‘객관적인 법칙’을 각각 풀어 말한 것이다.
고등학생 수준 이상의 내용은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해 주므로, 글 속의 내용들끼리 서로 연결하며 이해하는 습관을 들이자.
그리고 ‘부분과 부분, 또는 부분과 전체의 관계’도 앞에 나온 ‘구조’와 ‘구성요소’의 관계를 풀어 말한 것이다.
'구조', '구성요소'는 고등학교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개념이다.
‘객관’과 ‘구조’라는 말은 고등학생 수준에서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할 개념이다. 철학에서 ‘객관’은 자아의 대상을 말한다. ‘나는 사과를 본다’고 하면, ‘나’가 자아이고, ‘사과’가 객관이다. 또한 철학에서 ‘객관’은 자아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똑같은 사과를 맛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고, 맛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 경우는 사과가 ‘객관적’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언뜻 생각해 보면 이 세상의 사물들은 모두 주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데, 사물을 수(數)로 인식할 때이다. 사과의 맛은 주관적인 것이지만, 사과의 개수, 크기 등은 객관적인 것이다. 그래서 ‘객관적인 법칙’과 ‘수적인 비례’는 같은 말이다.
‘구조’는 ‘구성요소’와 함께 이해해야 한다. 구성요소는 ‘종류’라는 말과 다르다. 예컨대 사람을 흑인종, 황인종, 백인종으로 나누는 것은 종류를 말한 것이고, 머리, 몸통, 팔다리로 나누거나 정신, 육체로 나누는 것은 구성요소를 말한 것이다. 구조를 전체라 한다면 구성요소는 부분이다. 그래서 ‘구조’, ‘부분과 부분, 또는 부분과 전체의 관계’, ‘구성요소’가 서로 관련 있는 말인 것이다.
… 보았기 때문에 … 이론을 내세웠다.
철수 쌤을 옆에서 보면 잘생겼다고 하는데, 앞에서 보면 더 잘생겼다고 한다.(?) 똑같은 철수 쌤이 둘이 아니라 하나인데, 어찌하여 다르게 말하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려면 관점(觀點)이라는 것에 대해 알아야 한다. 관점은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할 때, 그 사람이 보고 생각하는 태도나 방향 또는 처지를 말한다. 옆에서 보는 것과 앞에서 보는 것은 다른 관점이다. 관점은 전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일부분만 보는 것이기 때문에 관점이 다르면 대상이 달리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주장은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철수 쌤은 주장을 설명하는 글에서 관점을 파악하는 것을 열심히 한다. 관점 이해와 관련해 엄청 많이 출제되므로 이에 대해 추후 별도 설명이 있을 것이다.
‘A라고 보았기 때문에 B을 내세우다’라고 하면 A는 관점에, B는 주장에 해당한다. 지문에서 ‘수를 이 세상의 근원으로 보았기 때문에 아름다움은 그 대상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 간의 수적인 비례에 의한 것이’라고 했는데, 이를 관점과 주장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A라고 보았기 때문에 B을 내세우다’라고 하면 A는 관점에, B는 주장에 해당한다
‘수가 이 세상의 근원이’라는 관점은 앞에서 얘기한 적이 있는데, 세상을 수학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예컨대 무엇을 좋아하는 성향이 아니라 키로 철수 샘을 파악하려 한다면 철수 샘을 수학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색시가 좋으면 처갓집 외양간 말뚝에도 절한다’는 속담이 있다. 한 가지가 좋아 보이면 모든 것이 다 좋아 보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국어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이 속담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학문, 아니 이론이 좋으면 아무리 어려운 글도 반갑기 그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