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이해의 첫걸음을 떼면서

by SCS

“……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新婦)여.”


이는 김춘수의 ‘꽃을 위한 서시’에 나오는 마지막 시구이다. 지문을 읽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꼭 이런 말이 튀어 나오지 않는가? ‘추억(追憶)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나는 한밤내 운다.’고 하는 시인의 노력처럼 우리 학생들도 지문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려고 애를 써 보지만, 알 거 같기도 하다가 끝내는 모르겠는 답답함, 그래서 읽다 읽다 지쳐서 내팽개친 경험, 그것들이 한두 번이 아닐 것이다. 대체 지문이라는 것이 무엇이길래 이다지도 학생들의 애간장을 태우는 것일까?

먼저 지문은 이쁜 신부, 잘생긴 신랑이 아니다. 이쁘고 잘생겼다면 아무리 성질 못됐어도 참고 가까이하고픈 것이 인지상정이다. 철수 쌤이 생각해도 지문은 참 못생겼다. 그래서 지문은 보기도 싫은 것이다. 그런데 철수 쌤이 학생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어쩌겠냐, 태어날 때부터 지문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을?”

대수능 지문은 대학 교수들이 만든다. 교수들에게서 나오는 글이 오죽하겠는가? 물론 시중에 그분들이 쓴 교양서적을 보면 흥미진진하게 쓴 잘생긴 글도 많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글로 지문을 만들지 않는다. 그런 지문은 나중에 큰일을 일으키기도 하므로 피한다. 교수들이 그런 지문을 만드니 철수 쌤도 그런 글로 지문을 만들 수밖에 없다. 철수 쌤이라고 학생들이 싫어하는 못생긴 글을 쓰고 싶겠는가?

교수들은 왜 그런 글을 쓸까? 당연히 그런 글을 잘 읽는 학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못생긴 신랑, 신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그처럼 교양 서적이 아니라 전공 서적을 가까이 할 줄 아는 학생. 그런 학생을 교수들은 뽑고 싶은 것이다. 그럼 학생들은 어찌 해야 하는가? 좋든 싫든 못생긴 신랑, 신부를 가까이 해야 한다. 철수 쌤의 아내는 못생긴 철수 쌤과 어떻게 살까? 검은 피부도 건강미가 넘친다고 하고, 마르면 훤칠하다, 살찌면 후덕하다고 한다.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해 늦게 귀가하는 철수 쌤을 호탕하다 한다. 아무렇지도 않고 이쁠 것도 없는 철수 쌤을 그냥 그냥 이쁘게 보는 것 같다. 그러니 30년간 같이 살아온 것은 아닐까? 지문도 일단 그렇게 봐야 한다.

또한 지문은 속시원히 얼굴을 드러내는 신랑, 신부가 아니다. 몇 겹의 면사포로 싸여 있는 데다가 살짝 돌아앉아 있어 얼굴을 제대로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것처럼, 지문은 일상생활에서 신경조차 쓰지 않는 영역을 말하는 데다가 접하기 힘든 방법으로 말한다. 학생들은 그 면사포를 걷어 올리다가 지치고, 다 걷었다 생각했는데 지문은 돌아서서 얼굴을 잘 보여주지 않으니 속상한 것이다.

그런 신랑, 신부를 맞이하는 데 필요한 것은 하나다. 끈기다. <철수 쌤의 슬기로운 국어 공부 I>에서도 철수 쌤이 누누이 강조한 것도 그것이다. 물론 무턱대고 면사포를 들추고 얼굴을 돌리게 해서는 힘만 들고 제대로 돌릴 수도 없다. 돌린다 해도 찌푸린 얼굴밖에 못 보듯 지문의 내용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신랑, 신부를 달래듯 지문을 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다. 신랑, 신부에 대해 아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애를 쓰면 신랑, 신부가 스스로 얼굴을 돌리듯, 지문에 대해 알고 대하면 지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려 준다.

지문을 아는 데 첫걸음이 개념(槪念)에 대한 이해이다. 개념이 지문을 못생기게도 하고, 지문의 얼굴을 제대로 못 보게도 만든다. 철수 쌤은 학생들에게 개념을 가족들에 비유하기를 즐겨 한다. 개념에게도 부모가 있고, 형제자매가 있으며, 자식들도 있다. 같은 가족이라도 다 다른 것처럼 개념들도 각기 남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 <철수 쌤의 슬기로운 국어 공부 II>는 그런 개념을 알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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