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梅花) 향기(香氣)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육사 ‘광야’-
[이것만은 … ]
*시간이 아주 오래되어 기억이 희미하다. ( )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사랑하여 간절히 그리워함. ( )
*들어가서는 안 되는 경계나 지역 따위를 넘어 들어가다. ( )
*햇빛과 그늘, 즉 낮과 밤이라는 뜻으로, 시간이나 세월을 이르는 말. ( )
*아주 먼 옛적. 아주 오랜 세월 동안. ( )
*보통 사람으로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 ( )
* 텅 비고 아득히 넓은 들. ( )
까마득한 날에 … 모든 산맥들이/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 끊임없는 광음(光陰)을/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 지금 … 천고(千古)의 뒤에
시간은 비가역적(非可逆的)인 것이다. 즉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웜홀이라는 것을 이용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과학이론이 있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결국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인간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이름을 만들어 내고 그것의 순서를 과거-현재-미래로 정했다. 이육사의 '광야'는 시간의 일반적인 순서를 반영하고 있다.
시인은 먼저 ‘까마득한 날’의 과거를 상상한다. ‘하늘이 처음 열’린 날, 즉 개벽(開闢)한 날이기 때문이다. 그 시인은 ‘지금’, 즉 현재로 시간을 이동한다. 그 사이에 ‘모든 산맥들이/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와 ‘광음(光陰)을/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던 날이 있다. 까마득한 날에서 지금까지 시간이 계속 흐른 것이다. 흔히 그것을 개벽 이후에 원시 시대를 거쳐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것으로 해석한다.
시인은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천고의 뒤’, 즉 미래를 상상한다.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리는 현재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초인(超人)이 있어/이 광야(曠野)에서 목놓아 부’를 것이라는 것을 믿고 있는 것이다. 이를 광복을 위한 현재의 노력이 언젠가 올 광복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해석한다.
이렇게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은 인간에게는 익숙한 것이다.
[이것만은 … ]의 정답
까마득하다, 연모(戀慕), 범(犯)하다, 광음(光陰), 천고(千古), 초인(超人), 광야(廣野)
여승(女僧)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늬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女人)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女人)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十年)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山)꿩도 설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山)절의 마당귀에 여인(女人)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 백석, ‘여승(女僧)’-
[이것만은 … ]
*두 손바닥을 합하여 마음이 한결같음을 나타냄. 또는 그런 예법. ( )
*‘남편’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 ( )
*섦게. 원통하고 슬프게. ( )
*실, 나무, 대 따위의 가늘고 긴 조각. ( )
옛날같이 … 평안도의 어늬 산 깊은 금덤판 … 십 년(十年)이 갔다 … 슬픈 날이 있었다
그런데 인간은 한 방향으로 흐르는 물리적 시간을 머릿속에서는 이리저리 뒤섞어 놓기도 한다.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배치하는 것이다.
백석의 ‘여승’에서 시간은 현재-과거-과거-현재 또는 현재 직전의 순서로 배치되었다. ‘합장하고 절을’ 하고, ‘가지취의 내음새가’ 나고, ‘쓸쓸한 낯이 … 늙’은 여승을 '나'는 보고 ‘옛날같’음을 느낀다. 즉 과거에 본 적이 있는 여인이 곧 여승이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곧이어 ‘평안도의 어늬 산 깊은 금덤판’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한다.
거기에서 ‘나’는 ‘여인(女人)에게서 옥수수를 샀’는데, 그 ‘여인(女人)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던 것을 봤던 것이다. 그 여인에게는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 남편을 ‘기다려 십 년(十年)이 갔다’고 한 것을 보면, 남편이 집 나간 지 10년이 지났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나’가 여인을 처음 본 이후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던 모양이다. 과거가 ‘남편의 가출-옥수수 장사-딸의 죽음’으로 세분화되어 서술되고 있다.
그러다가 시인은 다시 현재 또는 현재 직전으로 돌아온다. ‘산(山)꿩도 설게 울은 슬픈 날’, 그 날은 ‘산(山)절의 마당귀에 여인(女人)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었다. 즉 여인이 여승이 된 날이다. 그 날은 앞에서 여승을 보던 날일 수도 있고 그 직전일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일반적인 시간으로 시를 썼다면 남편이 ‘집 나간 날-옥수수 장사를 한 날-딸아이가 죽은 날-여승이 된 날-‘나’와 여승이 만난 날’로 사건을 구성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와 달리 현재를 먼저 말하고, 과거에서부터 다시 현재로 시간을 진행시켰다. 이러한 시간 구성을 역순행적 구성이라 하는데, 물리적 시간을 인간의 상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이것만은 … ]의 정답
합장(合掌), 지아비, 설게, 오리
눈을 가만 감으면 굽이 잦은 풀밭 길이,
개울물 돌돌돌 길섶으로 흘러가고
백양 숲 사립을 가린 초집들도 보이구요.
송아지 몰고 오며 바라보던 진달래도,
저녁 노을처럼 산을 둘러 퍼질 것을.
어마씨 그리운 솜씨에 향그러운 꽃지짐
어질고 고운 그들 멧남새도 캐어 오리.
집집 끼니마다 봄을 씹고 사는 마을,
감았던 그 눈을 뜨면 마음 도로 애젓하오.
-김상옥, ‘사향(思鄕)’ -
[이것만은 … ]
*여러 차례로 거듭되는 간격이 매우 짧다. 잇따라 자주 있다. ( )
*많지 아니한 도랑물이나 시냇물이 좁은 목으로 부딪치며 흐르는 소리. 또는 그 모양. ( )
*나뭇가지를 엮어서 만든 문짝. ( )
*가루를 반죽하여 대추나 쑥갓 잎, 꽃잎 따위를 펴 놓고 지져 만든 전병, 저냐, 누름적 따위의 음식. ( )
*‘산’의 사투리. ( )
*밭에서 기르는 농작물. 주로 그 잎이나 줄기, 열매 따위를 식용한다. 보리나 밀 따위의 곡류는 제외한다. ( )
*아침, 점심, 저녁과 같이 날마다 일정한 시간에 먹는 밥. 또는 그렇게 먹는 일. ( )
눈을 가만 감으면 … 감았던 그 눈을 뜨면
위에서 본 백석의 ‘여승’과 같이 현재에서 과거로 갔다가 다시 현재로 돌아오지만 그것과는 다른 시간 구성을 보여주는 작품이 있다.
김상옥의 ‘사향’은 ‘눈을 가만 감’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현재 시인이 하는 행위인데, 보통 눈을 감는 행위는 생각에 잠길 때 많이 한다. 시인이 생각하는 것은 ‘굽이 잦은 풀밭 길’, ‘개울물 돌돌돌 길섶으로 흘러가’는 장면, ‘백양 숲 사립을 가린 초집들’이고, ‘송아지 몰고 오’는 장면과 ‘진달래’가 ‘저녁 노을처럼 산을 둘러 퍼’지는 풍경, ‘어마씨 그리운 솜씨에 향그러운 꽃지짐’이다. 나아가 ‘어질고 고운 그들’ 즉 ‘멧남새도 캐어 오’고 ‘끼니마다 봄을 씹고 사는 마을’ 사람들도 떠올린다.
그런데 시인은 ‘감았던 그 눈을’ 뜬다. 그러면서 ‘마음 도로 애젓’함을 느낀다. 생각하기를 멈춘 것이다. 대체 시인은 무엇을 생각한 것일까? ‘사향(思鄕)’ 즉 고향을 생각한다는 제목을 고려하면 생각한 것은 고향으로 짐작된다. 다시 말해 어린 시절 고향에서의 삶을 회상한 것이다. 현재-과거 회상-현재로 이어지는 시간 구성을 보이고 있는데, 이를 역순행적이라 하지 않는 이유는 과거의 일을 시간적 순서대로 이어나가지 않고 단지 나열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이것만은 … ]의 정답
잦다, 돌돌, 사립, 꽃지짐, 멧, 냄새(남새), 끼니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 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흰 구름 솜구름 탐스러운 애기 구름
짧은 샤쓰 짧은 치마 뜨거운 여름
소금 땀 비지땀 흐르고 또 흘러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저 하늘엔 별들이 밤새 빛나고
찬 바람 소슬바람 산 넘어 부는 바람
간밤에 편지 한 장 적어 실어보내고
낙엽은 떨어지고 쌓이고 또 쌓여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흰 눈이 온 세상에 소복소복 쌓이면
하얀 공장 하얀 불빛 새하얀 얼굴들
우리네 청춘이 저물고 저물도록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공장엔 작업등이 밤새 비추고
-노래를 찾는 사람들, ‘사계(四季)’-
[이것만은 … ]
*바느질을 하는 기계. ( )
*몹시 힘든 일을 할 때 쏟아져 내리는 땀. ( )
*가을에, 외롭고 쓸쓸한 느낌을 주며 부는 으스스한 바람. ( )
*쌓이거나 담긴 물건이 볼록하게 많다. ( )
*는 자리를 특별히 밝게 하려고 켜는 등. ( )
따스한 봄… 뜨거운 여름 … 소슬바람 … 흰 눈
우리에게 익숙한 시간 개념이 계절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봄, 여름, 가을, 겨울, 즉 사계(四季)의 차이는 뚜렷하고, 그에 따라 생활 풍속도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세계를 철 따라 이해하는 것을 자주 한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사계’는 철수 쌤이 무척 좋아하는 노래다. 줄여서 ‘노찾사’라고 하는 노래모임이었는데, 1980년대 중반, 기존의 노래에 대한 문제제기로 일어난 대학가의 노래운동을 대학 밖에서 사회전문운동으로 발전시켰다. 그들이 부른, 현실인식에 바탕을 둔 진실한 삶의 노래는 철수 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강한 호소력을 갖고 있었다.
이 노래의 주인공은 아마도 ‘공장’의 ‘작업등’ 밑에서 ‘미싱’을 돌리는 사람이리라. 그들이 접하는 것은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고 ‘하얀 나비 꽃 나비 담장 위에 날아’ 다니며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 오는 것이다. 참 싱그러운 봄 풍경이다. 그리고 또 그들은 ‘흰 구름 솜구름 탐스러운 애기 구름’과 ‘짧은 샤쓰 짧은 치마’가 보이는 ‘뜨거운 여름’을 겪는다. 그 계절에 우리의 몸은 ‘소금 땀 비지땀 흐르고 또 흘러’ 내린다. 어느 새 ‘찬 바람 소슬바람’이 부는 가을이 된다. ‘낙엽은 떨어지고 쌓이고 또 쌓’이는 계절이다. 또한 시간은 흘러 ‘흰 눈이 온 세상에 소복소복 쌓이’는 겨울이 된다. 그러면서 ‘우리네 청춘이 저물고 저물’어 간다. 철 따라 변하는 세계의 모습은 우리에게 참 익숙하다. 그래서 우리들은 계절의 순환에 맞춰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물론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는 것이다. 매일 반복되는 공장 생활이 계절의 변화와 대조되면서 부각되고 있는데, 쓸쓸함이 느껴지는 것은 철수 쌤만이 아니리라.
[이것만은 … ]의 정답
미싱, 비지땀, 소슬(蕭瑟)바람, 소복, 작업등(作業燈)
음식물 찌꺼기며 설거지물까지 버릴 것 없이 모아 둔 큰 독 속에서 한때 빛나던 것들이 제힘으로 다시 빛날 때 발효한 이 먹이를 돼지가 먹고 돼지의 배설물은 보리밭 거름으로 이쁜 보리들을 길렀다는데요 그래도 이 짐승의 주식이 사람의 똥이었던 것은 생명은 생명에게 공양되는 법이라 행여 남아 있을 산 것들의 온기가 더럽고 하찮은 것으로 취급될까 두려운 때문이 아니었는지 몰라
-김선우, ‘신의 방’의 일부-
[이것만은 … ]
*효모나 세균 따위의 미생물이 유기 화합물을 분해하여 알코올류, 유기산류, 이산화 탄소 따위를 생기게 하는 작용. 술, 된장, 간장, 치즈 따위를 만드는 데에 쓴다. ( )
*밥이나 빵과 같이 끼니에 주로 먹는 음식. ( )
*웃어른을 모시어 음식 이바지를 함. 불(佛), 법(法), 승(僧)이나 죽은 이의 영혼에게 음식, 꽃 따위를 바치는 일. 또는 그 음식. 절에서, 음식을 먹는 일. ( )
빛나던 것들이 제힘으로 다시 빛날 때 발효한 이 먹이를 돼지가 먹고 돼지의 배설물은 보리밭 거름으로 이쁜 보리들을 길렀다는데요 … 짐승의 주식이 사람의 똥
위에서 말했다시피 시간은 비가역적이어서 되돌릴 수 없다. 그렇기에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그런데 인간은 그 시간을 되돌릴 뿐만 아니라 순환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 위에서 계절이 단순히 나열되고는 있지만 어떤 이는 계절을 순환하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다.
김선우의 ‘신의 방’에도 순환하는 시간을 의식하며 읽어야 하는 구절이 있다. ‘빛나던’, ‘다시 빛날(발효)’, ‘돼지가 먹고’, ‘돼지의 배설’, ‘보리밭 거름’, ‘보리들을 길렀다’, ‘사람의 똥’을 보자. ‘다시 빛’나는 것은 ‘발효’를 비유적으로 말한 것이다. ‘음식물 찌꺼기며 설거지물까지 버릴 것 없이 모아 둔 큰 독’은 바로 발효가 이루어지는 통이리라. ‘사람의 똥’은 ‘짐승의 주식’이 된다고 한다. 발효한 먹이 외에 또 다른 먹이인 것이다. 똥과 발효한 것이 ‘거름’이 되어 ‘보리를 길’러내는 데 사용되는데, 그 보리는 ‘한때 빛나던 것’이다. 그 보리를 인간이 먹지 않는가? 이런 내용을 순서대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엔트로피 법칙에 따라 비가역적이어서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지만 그 속의 순간 순간은 순환하는 과정으로 이해하면 좋을 때가 있다.
이렇게 인간은 일방향의 시간을 쌍방향 또는 순환의 시간으로 인식하는데, 이는 자연의 법칙이기도 하다. 엔트로피 법칙에 의하면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오직 한 방향으로만 바뀌며, 질서화한 것에서 무질서화한 것으로 변화한다. 이는 곧 우주 전체의 에너지양은 일정한 반면 시간이 지날수록 사용 가능한 에너지양은 점차 줄어드는 지구의 물리적 한계를 의미한다. 자연의 법칙은 엔트로피 법칙에 따라 움직이겠지만 시간 속의 순간 순간은 순환한다. 이에 대한 인식이 시간을 재구성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만은 … ]의 정답
발효(醱酵), 주식(主食), 공양(供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