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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teBloomer Aug 08. 2019

노약자석이 꼭 필요해?

어그로 아님...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2015년 개봉한 영화의 제목이다.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제목에 담긴 의미가 인상 깊어서 글을 쓰게 됐다. 그때는 맞지만 지금은 틀린 게 뭐가 있을까. 깊게 생각을 해야 몇 가지가 떠오른다. 

2000년대 초반에 중학교를 다닌 나는 혀의 부위별로 맛을 다르게 느낀다고 배웠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부위에서 모든 맛을 느낄 수 있다고 가르친단다.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린 지식이다(사실 그때도 틀린 지식이라 해야 정확하겠지).

2010년까지 우리나라는 좌측통행이 기준이었다. 2010년 이후에는 우측통행으로 기준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4당5락이 합격의 방법이었다면, 지금은 잘 자고 잘 쉬고 효율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20년 전만 해도 북한과 정상회담을 한 해에도 몇 차례 하리라고는 상상을 못 했었다. 북한은 우리의 주적이었지만 지금은 화합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반대하는 사람도 많겠다 이 부분은).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리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인간은 결코 절대적인 것을 알 수 없다, 지금 옳다고 믿는 것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라는 걸까. 물론 이것도 맞는 말이다.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지만, 나는 오늘 이 말을 ‘당연한 것이 결코 당연하지 않다’라고 글을 전개해 나가려 한다.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있다. 논쟁을 할 때, 어떤 주장을 했으면 근거를 들어 증명을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은 정말 ‘너무나도 당연해서’ 증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예를 들어 ‘사람을 죽여선 안된다’ 라거나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 라거나. 

예외가 있을 수는 있으나 웬만한 상황에서는 당연한 것들도 있다. ‘어른을 공경해야 한다’ 거나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야지’ 같은. 


 이 당연한 것들이 있기에 사람들은 본인의 일에 집중하며 살아갈 수 있다. 매번 이런 당연한 것들이 바뀐다면 그것을 알아채느라 다른 일을 못할게 분명하다. 의사는 나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고, 식당 주방장이 내 음식에 독을 타지 않을 것이고, 내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국가가 내 억울함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다른 것에 한눈팔 수 있다. 

사실 우리가 편하게 살기 위해 그런 약속을 만든 것이고, 각자 그런 ‘당연한 것’ 들을 지키며 살아간다. 오랜 시간이 걸렸겠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각자가 더 편안하게 살기 위해 제도를 만들고 규약을 만든다.




 ‘당연한 것’에는 그에 합당한 이유가 존재한다. 그런데 문제는 당연함이 너무 굳어져서 그 이유를 잊어버리는 경우다. 사회는 빠르게 변한다. 이제 사람들은 국가, 기업, 언론, 은행을 믿지 않는다. 거짓말을 하고 나쁜 짓을 해서 신뢰를 잃었음에도 반성하지 않고 국민을 더 기만하려 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오히려 인터넷에서 보는 낯선 사람을 더 잘 믿는다. 이렇게 신뢰의 중심과 영향력이 이동하고 있고 인터넷의 발달로 우리의 삶이 몰라보게 달라지고 있는 지금, 예전과 같은 당연함을 접목시키지 못하는 영역이 늘어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마케팅을 하려면 주류 매체에 광고를 하는 것 외에는 딱히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개인이 블로그, sns 등을 활용해 TV나 신문보다 훨씬 영향력이 큰 광고를 집행할 수 있다. 그때는 맞았던 것이 지금은 틀린 방법이 된 것이다. 이런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서 어떤 일이 발생했나?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당선’이다. 언론이나 지식인들은 영국이 EU를 탈퇴하는 것이 현명하지 못한 일이라고 공공연히 밝혀왔지만 정작 다수의 영국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누구도 트럼프 같은 ‘미친 사람’이 미국의 대통령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만 지금은 북한의 김정은과도 냉면 친구(?)가 되었다. 시대의 흐름을 잃지 못한 자들이 눈이 가려져 예측할 수 없었던 결과다.


 혁신은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을 결코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났다. 페이팔의 창업자 피터 틸은 이렇게 말한다. “만일 당신이 무엇인가에 도달하는 데 10년이 걸리는 계획을 하고 있다면, 당신은 스스로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아니 왜 이걸 6개월 안에는 해낼 수 없는 거지?’라고 말이죠.”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작은 것이라도 그것이 왜 당연한가 의문을 품는 습관을 가지자는 말이다. 

노약자석을 보고 ‘당연히 노약자를 보호해야지’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은 없는데 왜 우리나라만 노약자석이 있을까’하고 의문을 던져 보는 것이다. 

결혼은 현실이라고들 하는데, 결혼을 한 후 신혼의 로망이 거품으로 변하면 더 이상 사랑은 없는 걸까. 3년을 사랑하고 30년은 전우애로 살아가야 하는 걸까. 아빠는 돈을 벌고 엄마는 아기를 키우고, 이게 당연한 일인가 의문을 던져 보자는 것이다.


 당연한 것에 의문을 던지다 보면 웬만한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간혹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당연함’을 마주하게 된다. “그때는 맞지만 지금은 틀린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자 이제 혁신을 할 일만 남았다. 이런 의문들이 세상을 조금씩 발전시킨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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