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이타주의자
대학교 신입생 시절, ‘편집부’라는 과 동아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1년에 한 번 학교나 과 내에서 일어난 일들을 편집해 회지를 발간하는 동아리였다. 지금 이렇게 취미로 글을 쓰고 있지만, 당시에는 글쓰기에 전혀 흥미가 없을뿐더러 기피했었다.
나는 공대 중에서도 사람이 많기로 소문난 과였다. 한 학년에 150명 이상. 아는 사람도 없고, 친화력도 없었던 나는 그냥 가만히 학교만 다니면 자연스레 아싸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좋아하지도 않은 동아리에 가입했다. 적어도 어딘가에 소속이 되면 그 사람들은 알게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입부하자마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편집부에서 1학년은 절대 돈 못 쓴다.” 밥을 먹든, 술을 먹든 선배들이 끼어있으면 무조건 선배가 후배의 밥이나 술을 사줘야 하는 규칙이 있었다. 당시 편집부 회장이었던 2학년 선배는 후배에게 밥을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전역하고 겨울 동안 공장에서 두 달 동안 일을 해서 2백만 원을 벌어왔다고 했다. 그 돈은 실제로 한 학기 동안 후배들 밥 사주고 회식비 내주는 곳에 사용됐다.
이것만이 아니다. 선배들은 1학년 때 들었던 과목의 레포트, 시험 족보, 책, 정보 등을 아무 대가 없이 제공해줬다. 이해가 안 됐다. 좋아하는 이성에게나 잘 보이려 하는 행동을 생판 남이었던 후배에게, 단지 같은 동아리에 들었다는 이유로 행할 수 있다니.
뭐 우리 1학년이야 밥 사주고, 족보 주고, 과제 가르쳐주니 마다할 게 없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해주는 거야? 나는 딱히 선배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는데.”
이것을 작게나마 이해하기 시작한 곳은 군대였다. 학창 시절 동안, 동급생들과 매년 관계를 하고 대학교에서도 동급생이거나 그 이상의 사람들과만 관계할 수 있었다. 내 인생에 ‘후배’가 존재했던 적이 거의 없었다. 전역하고 처음 교회를 갔을 때 ‘형, 오빠’ 소리가 그렇게 민망할 수가 없었다.
군대에서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후임이 생긴다. 동기나 선임만 있어서 챙김을 받기만 했던 때와는 다른 책임이 생긴다. 처음에는 혼나지 않기 위해 가르쳐주고 잘 대해줬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흐르면서 아무 대가 없이 누군가를 도와준다는 것의 즐거움을 배우게 되었다. 후임이지만 내가 도와줘서 고마움을 느끼고 상황이 개선된다면 그저 그것으로 만족했다. 관계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됨을 처음 경험한 것이다.
이후 복학을 하고 교회도 다니며 나를 ‘형, 오빠, 선배’라고 부르는 사람이 조금씩 많아졌다. 처음에는 어떤 책임감 때문에, 혹은 '남들이 그렇게 하니까’라는 마음으로 후배들을 도와주고는 했다. 하지만 관계하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이해관계나 책임을 넘어선 관계에서 오는 즐거움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더 나아가, 이건 후배에게 주는 내리사랑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내가 관계하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누군가를 돕는 것만으로 쾌락을 느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고 한다. 누군가를 돕고 다시 뭔가를 얻지 않아도 똑같다. 외부적 동기는 오래가지 못한다. 내 안에 내재되어있는 ‘남을 돕는 즐거움’을 아는 본능만이 더욱 누군가를 돕게 만든다. 이것이 매슬로 아저씨가 말한 ‘자아실현 욕구’가 충족된 상황이 아닐까.
좋은 공동체, 좋은 사람, 좋은 관계를 만나면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나도 그 소속감을 느끼고 싶고, 그 좋은 기운에 기여를 하고 싶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 일은 잘하지 않으려 한다. 내 행동에는 꼭 나의 이익이 되는 목적이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다. 남을 돕더라도, ‘남을 도와서 내가 즐거워’가 아닌 ‘남을 돕는 내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까’를 고민한다. 이유 없이 손해 보는 것을 두려워한다. 밑져도 본전은 찾아야 한다. 그놈의 본전 의식.
관계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야 한다. 관계하는 것 만으로 만족을 누리지 못하면 어디를 가도, 어떤 사람을 만나도 이해관계에 따른 긴장감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냥 관계해야 한다. 때로는 내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내어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배워야 한다. 사람은 그렇게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