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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teBloomer Nov 25. 2019

글쓴이는 글에 매인다

말과 글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언젠가 자신의 말과 글에 매인다.



 어디서 들은 말인지는 모르지만 최근에 문득 생각이 난 문장이다. 자신이 쓴 글이 언젠가 자신의 행동을 평가하게 된다는 의미의 문장이다. 이 문장을 곱씹고 있으니 유재석이 한 말 중 ‘혀를 다스리는 것은 나지만, 내뱉어진 말은 나를 다스린다’라는 말 또한 생각이 난다. 


 ‘베풀면서 살아야지’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면 본인은 그 글에 매여 베풀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외모를 안 봐’라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다녔다면 외모로 사람을 판단할 수 없다. 이번 조국 사태에 분노를 느끼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조국이 그동안 한 말과 쓴 글이 실제 삶의 모습과 다르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공자님도 ‘군자는 말이 행동보다 앞서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라고 하셨고 성경에도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입의 말 때문에 망하니, 그 입술의 말이 올가미가 되어 스스로를 옭아맨다’라고 지적한다. 많은 성인들이 같은 지적을 하는 것은, 말이 행동을 제약하는 속성이 진리에 가깝다는 것이 아닐까.


 나 또한 글을 많은 사람에게 공개를 하고 글이 누적되어 감에 따라 점점 두려움을 느낀다. '내가 쓴 글과 내 행동이 다르면 어떡하지?’ 물론 내가 쓴 글 중에 진심이 아닌 글은 하나도 없었다. 처음에는 취미로 글을 쓰는 것이라 가볍게 생각했고, 관심 있게 읽는 사람도 몇 없을 것이라 생각해 쓰는 것에 의의를 두자고 마음을 먹고 글을 썼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는 별개로 내가 쓴 글은 어느새 내 행동을 제약하고 있었다. 나 자신이 뱉은 말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될 수 없으니 그 말에 매여버린다. 내가 쓴 글은 결국 나의 정체성이 되어 내 행동을 제약한다. 어찌 보면 좋은 현상이라 할 수도 있다. 나는 내가 쓴 글대로 살아갈 수가 있다. 내가 선포한 나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글이 쌓이면 쌓일수록 내가 어떤 글을 썼는지 기억이 안 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깜짝 놀란다. 이전에 쓴 글과 지금의 모습이 다르다면 더욱 조마조마하다. 혹시나 누가 내 글을 보고 지금의 내 모습을 평가할까 두렵다. 기억이 안 나는 것도 문제지만 사람이 본질적으로 뱉은 말을 모두 지킬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영화 ‘매트릭스’에 유명한 말이 있지 않은가. ‘길을 아는 것과 그 길을 걷는 것은 다르다’ 내 머리에 있다고 해서 실제로 그렇게 살기는 힘들다. 머리로는 알아도 실제로 행동하는 것은 아는 것에 100배는 더 어려운 것 같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이 말을 많이 하지 말라고 그렇게도 강조하셨던 것 같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라는 말이 이런 맥락에서 쓰이는 말인 것 같다. 그렇다고 말을 안 하고 글을 쓰지 않을 수는 없다. 경험이 쌓일수록 말을 뱉는 것에 더욱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사람의 생각은 변한다. 10년 전에 했던 생각을 10년 후에도 똑같이 하는 사람은 발전이 없는 사람이거나 아무 생각 없이 10년을 사는 사람일 것이다. 같은 주제를 놓고도 예전에 했던 생각과 지금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비판은 피할 수 없다. 말과 글에 의해 비판받는 대표적인 직업이 정치인이다. 정치인들도 사람인지라 의견이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예전에 했던 말과, 글, 인터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정치인들의 말 바꾸기 논란은 항상 공격의 대상이다. 예전에 뱉은 말에 매여 비판을 받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고 내 생각을 개진하며 살아갈 것이다. 조금은 신중하게 되겠지만 그래도 멈출 수는 없다. 예전 글로 내 행동과 삶을 비판한다면 받아들여야 한다. 다른 누구의 말도 아니고 내 입에서 나온 말이니까. 그것은 글쓴이의 숙명이다. 글에 매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글을 바꿀 수 없다면 글에 매여 내 삶을 성찰하며 고쳐나갈 일이다. 고통스럽지만 고통이 있어야 성장도 있는 법이다. 착하게 살자고 다짐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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