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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teBloomer Nov 21. 2019

뒷담화는 사람의 본능일까

 가끔은 사람들이 남을 욕하는  은근히 즐기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딱히 본인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어도 욕을 할 기회만 찾아다니는 것 같다. 뉴스에 싫어하는 정치인, 정당 얘기가 나오면 덮어놓고 일단 욕부터 한다. 그렇게 싫으면 안 보면 될 텐데. 인터넷이나 토크 프로에 간혹 막장 사연이 올라오면 댓글에 욕을 퍼붓는다. 생산적인 비판도 간혹 있지만 감정의 배설, 원색적인 비난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억울하고 짜증 나는 일이 있으면 누구든 붙잡고 내가 겪은 얘기를 들려주고 싶다. 그 문제를 원활히 해결하는 것보다 일단 내 억울함을 토로하고 같이 욕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남 욕을 하지 말라고 배웠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뒤에서 다른 사람 욕을 하다가 당사자의 귀에 들어가면 그 사람과 관계가 깨어지는 일을 피할 수 없다. 학교에서 배우고 머리로 알고 있다한들 무슨 소용인가. 모두가 유치원에서 배운 것만 잘 지키고 살아도 이 땅에서 천국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뒷담화를 하는 게 나쁘다고 들어도 막상 억울하고 화 나는 일을 당하면 그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성경에서도 이런 사람의 본성을 잘 표현한다.

잠언 18장 8절
다른 사람 헐뜯기를 잘하는 사람의 말은 맛있는 음식과 같아서, 그런 말들은 사람의 뱃속 깊은 곳까지 잘 내려간다(잠 18:8)


 그러면 왜 사람들은 뒷담화를 즐길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뒷담화를 통해 타인을 깎아 내림으로써 상대적으로 나 자신이 높아지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더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동물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지 못하면 무시당하고 잡아먹힌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 동료와의 보이지 않는 계급이 생긴다. 남과 나를 비교하고 잘 나가는 세력에 붙으려 노력하고. 이것은 필연적이다. 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실력과 힘을 키우거나 관계를 잘 맺는 것은 본능적인 행동이다. 그중에 제일 쉽고도 효과적인 방법 중의 하나가 뒷담화다. 이유 없는 험담은 그 사람의 손해로 돌아오지만 어느 정도 근거 있는 비난은 손쉽게 다른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 낸다. 한 사람을 비난함으로써 그 사람을 낮추고 상대적으로 그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우월해지는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잘났다는 것을 알게 되면 즐겁다. 뒷담화는 일종의 사람들과 즐기는 유희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세상에는 100프로 선한 것도 100프로 악한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같은 것도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가치판단을 달리 할 수 있다. 뒷담화도 꼭 악한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 공동체 내에서 뒷담화를 함으로써 나쁜 행동이 억제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뒷담화를 나눔으로써 공동체의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읽을 수 있고 그로 인해 타인이 싫어하는 행동을 학습하고 피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뒷담화를 나누는 사람들은 모종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주옥같은 상사가 한 명 있는 팀은 오히려 똘똘 뭉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뒷담화를 하고 나면 뒷맛이 좋지 않다. 남을 욕하고 나면 속이 후련해질 것 같지만 오히려 감정이 더 격해진다. 많은 심리학 실험을 통해 인간의 감정에는 ‘구심성 피드백’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정서적 상태가 생리적 표현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그 반대로 생리적 표현이 정서적 상태에 영향을 준다는 말이다. 사람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행동하기도 하지만, 행동을 역으로 평가해 감정을 더욱 심화시킨다. 화가 나서 화를 내면 화가 풀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뇌가 화내는 행동을 보고 감정을 증폭시킨다. 반대로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라는 말도 근거가 있는 말인 것이다.


 또한 뒷담화는 결과도 썩 좋지 않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입의 말 때문에 망하니, 그 입술의 말이 올가미가 되어 스스로를 옭아맨다(잠 18:7)


 뒷담화를 하면 순간의 감정을 충족시킬 수 있고 동료들과 공감을 형성할 수는 있다. 동시에 나는 ‘뒷담화를 하는 사람’이라고 타인에게 각인이 된다. 이게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쌓이고 쌓이면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뒷담화 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는 사회생활을 하는 그 누구에게도 그다지 유쾌한 수식어는 아닐 것이다.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되기도 한다. 내가 한 욕이 상대에게 들어가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장기적으로 뒷담화는 하지도 말고 전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게 가능하냐고? 한 500년 정도 수양을 쌓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유느님 명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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