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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미 Apr 24. 2023

과거와 현재, 그 다음의 ‘문’을 두드리며

그냥 제주 살아요 : 사진예술공간 큰바다영 제주포구 1

고영일 사진

그 문을 여는 일


제주에서 포구는 ‘문’이다. 일상에서 벗어 났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임계다. 새로운 세계로 가기 위한 발판이기도 하다.

요즘 극장가의 화제인 <스즈메의 문단속>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문’에 대해 인터뷰한 내용이 밟혔다.


‘스즈메의 문단속’중


"우리에게 매일 문을 열고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나가고, '다녀왔습니다' 하고 들어오는 것이 일상이다. 재해는 단절이다. 문을 열고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 재해다. 그래서 문이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됐다"

간절함. 부디 무사하기를 바라는, 포구로 사람을 내보내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얽힌다.


교류와 생업을 위한 삶터


시민생활연구자인 고광민 선생님이 정리한 글을 보자.

“제주도는 '사방 둘레는 칼날 같은 돌'들로 둘러쳐져 있어 썰물과 밀물에 구애받지 않고 배를 붙일 만한 포구는 귀할 수밖에 없는 섬이다. 그러나 제주도 이외 육지부 지역과 교류하려면, 어부들이 바다로 나가 낚시로 고기를 낚고, 그물로 '자리(지리돔)'를 거리려면, 그리고 해녀들이 뱃물질'을 하며 살아가려면 포구는 필수적이었다. 뱃물질'은 해녀들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서 하는 물질이라는 말이다. 제주도 사람들에게 있어 포구는 제주도 이외 육지부 지역 사람들과의 교류와 생업을 위해 바다로 나가는 길목이었다. 제주포구는 갯가 중 후미진 곳에 마련하는 수가 많았다. 이런 곳을 두고 '개라고 했다. 제주 사람들이 굳이 포구라고 이르기보다 '개라고만 이르는 까닭이기도 했다”

고영일 사진


공간에 머무는 동안 비릿한 바닷내가 난다. 소금기 머금은 것들이 진득하게 달라붙는다. 싫지않은 느낌이다. 어딘가 그립다.

공항, 아니 항구라 이름붙여진 근현대식 시설이 들어서기 전까지, 섬에서 벗어나 뭔가를 시도하기 위해서 제주 사람들은 포구를 두드려야 했다. 또 의지해야 했다. 세상이 바뀌면서 쓰임은 달라졌고 모습도 변했지만, 여전히 포구는 ‘문’의 역할을 한다. 제주를 이해하기 위한 보고(寶庫)는 생각보다 단속이 허술하다. 쉽게 가슴을 열고 내어주고 또 내어준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그 곳에 겹겹이 쌓인 민속지식이며 파도와 사람에 부대끼면서도 자리를 지킨 것들은 때로는 거친 마찰음을 내고, 또 때로는 앙칼지게 등을 돌리고도 살 길을 열어준다.

언론인이자 사진작가인 고(故) 고영일(1926-2009) 선생이 남긴 기록에 아들인 고경대 작가가 요즘 모습과 항공사진을 보탰다. 발로 섬 곳곳을 훑으며 연구해온 고광민 선생의 해설이 한참을 머물게 한다.


살아간다는 것 사라진다는 것


기록자의 눈은 시절을 건너 포개진다. 당시 풍경을 살피면서도 그 안 사연을 엿보느라 어정어정 같은 자리를 몇 번이고 돌고 돈다. 눈이 커지고 귀가 길어진다. 혀까지 삐죽 내밀어 마른 입술을 적실 정도면 말 다했다. 아기를 초대기로 들쳐업고 어린 아이의 걸음를 재촉하는 어머니의 손은 묵직하고 그때도 지금도 한결같이 자리를 지키는 나무의 곡선이 애잔하다.

어떻게든 서북풍을 막으려고 서북쪽 둔덕을 높인 방파제의 흔적이며 해안가 용천수 빨래터의 한 때가 아련하고, 발전이란 가면을 쓰고 해안도로 등에 내어주며 지도에서 사라진 것들이 따끔하다.

‘소’를 잡는 풍경 앞에선 쉽게 떠날 수 없었다. 한 두 장면이 아닌 것이, 흥미롭다.

해설을 보면, ‘소‘라는 벌레가 배의 밑바닥을 긁어먹는 것은 제주도에서 배를 부리는 어부들의 근심과 걱정의 하나였다. 소가 배를 갉아 먹는 소리는 귓가를 때릴 만큼 크게 들리는 수도 있었다. 문학박사인 송상조 선생은  『제주말큰사전(한국문화사, 2008)에서 ‘소’에 대해  ‘지렁이처럼 생겨, 배 밑바닥에 붙어 배의 바닥을 갉아 먹는 벌레로, 머리는 점으스름하며, 큰 것은 담배 굵기만 함’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고영일 선생의 1970년대 촬영 사진 속에서 포구 사람들은 나무토막 위에 배를 올려놓고 불을 피여 배 바닥을 그을리는 방식으로 소를 제거했다. 이런 정보만으로 ‘소’가 무엇인지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나방류의 식엽성 해충은 아니었을까 추정해 본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송충이로 인한 소나무 피해가 극심했던 사정도 있었다.

결석은 썰물 동안에 배 밑바닥이 걸리는 현상인 ‘결석’과 썰물에도 배가 바닥에 걸리지 않고 뜨는 자리인 ‘튼석’, 중개와 밧개 같은 자리 이름도 눈에 담았다. 더 살펴야 할 것이 포구 곳곳에 깔린 톳만큼 널렸다.

그 서사가, 소소하지만 삶을 구한 흔적이 사라져간다. 뭔가 해야 할 때다. 먼저 기억하기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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