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공감하기 : 4·3문학 특별전 불온한 혁명, 미완의 꿈
“이 땅에 붉은 색 이외의
꽃은 바랄 수 없고
이 땅에 기원의 계절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봄은 불꽃처럼 타오르고
진달래가 숨 쉬고 있습니다.”
- 김시종 ‘봄’ 중
‘예정에 없던’에는 다양한 감정이 녹아있다. 느닷없이 터지는 폭죽처럼 경이의 무언거가 쏟아지기도 하고 준비없는 아픔과 고통 따위에 일방적으로 무너지기도 한다. 애써 마뤄뒀던 것을 우연을 가장해 들출 때도 꺼낸다. 생색을 낼 때 쓰기 좋은 표현이기도 하다. 주저리 주저리 말이 많아지는 것은 멋쩍은 어떤 감정을 감추기 위함이다.
4·3문학 특별전 ‘김석범·김시종–불온한 혁명, 미완의 꿈’을 마주했다. 솔직히 많이 떨렸다. 다 품고 나올 수 있을까 한참을 망설이다 들어갔다.
재일조선인 작가 김석범과 김시종의 문학세계를 조명하는…는 것은 제주4·3을 둘러싼 역사의 굴곡과 그 시절을 삼키고 여태껏 다 토하지못해 앓았던 고통의 시간을 공유하는 일이다. 쉬울 리 없다.
경계의 시선이 마른 모래를 씹듯 퍼석인다. 뭉툭한 흉기에 짓이긴 것마냥 퍼런 피멍같은 숨이 툭툭 떨어진가다. 주워 삼키기에 내 호흡은 더없이 짧았고 눈동자는 갈피를 잃고 흔들렸다.
경계의 사람들이 오래 삼켜 진득해딩 한숨은 어떤 단어로도, 어떤 도구로도 다 표현하지 못한다.
쉽게 책을 펼치지 못한 채 눈치만 살핀다. 그 안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울컥하고 쏟아진다. 뜨거울 거라 생각했지만 사실 에일 듯 차갑다. 그 안에 아픔, 침묵, 외면, 무관심 같은 단어가 덜그럭 거린다.
지도가 아닌 역사책에서 찾을 수 있는 조선, 분단 이전 하나였던 조국에 대한 연민과 사명을 담은 조선인으로 남은 사람들에게 씌워진 굴레가 좀처럼 느슨해지지 않는다.
책장으로 눌러둔 감정들이 새순처럼 고개를 쳐들고, 하나하나 눈 맞춰주길 기다린다. 덕택에 시간을 좀 벌었다.
전시실 입구 낯익은 얼굴이 반겨준다. 슬쩍 눈인사를 하고 그 안으로 비집고 들어간다.
소설가 김석범과 시인 김시종은 모두 재일제주인 문학의 거목이다. 김석범 소설가는 1951년 <1949년의 일지에서>를 시작으로 4:3의 진실을 탐구해 왔다. <까마귀의 죽음>, 화산도>, <과거로부터의 행진> 등을 발표하며 역사와 호흡을 같이했다.
항쟁에 참여하다 1949년 제주를 탈출한 김시종은 <지평선>과 <일본풍토기>, <니이가타>, <광주시편> 등을 발표하며 제주4·3과 자이니치의 실존에 천착했다.
두 작가 모두 공히 침묵해왔던 억압의 세월, 일본에서 제주4•3의 진실을 규명하고자 노력했다. ‘제주 4:3의 진상규명 운동은 두 재일작가에게 크게 빚지고 있다’는 전시 소개글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시절이 그러했다고 넘어가기에 그 굴곡이 깊고 또 높더. 두 작가는 각자의 무기를 들고 해방 정국 4:3의 역사적 진실을 민중적 혁명의 시각에서 바라보면서 좌우
이데올로기의 대립이라는 이분법을 극복하고자 했다.무기라고 했지만 위협적이지 않다. 4·3을 ‘제주의 역사적 전통과 해방정국의 역사적 과제의 민중적 열망을 관통’하는 활자는 한꺼번에 읽히는 대신 오래 씹어야 삼킬 수 있다. 월경인이자 경계린의 삶이다. 한번도 온전한 편을 얻지 못했고 사시로 세상을 봤던 삶이다
그 것들을 멋대로 재단하고 어두운 미래로 등을 떠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진집 『이카이노」에 담긴 두 노 작가의 감회가 숨돌릴 틈을 줬다. ‘추억의 1960 년대'라는 부제 아래 두 작가의 기억과 감흥은 얽히고 또 흩어진다.
“사람의 생각과 사유는 사람들은 눈으로 볼 수가 없다. 그것을 가시화한다. 즉 눈으로 보이도록 비유를 구사하면서 그려내는 것이 시의 언어다”고 운을 뗀 김시종 작가는 “부제 '추억의 1960년 대'는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이 연장선이 자이니치의 삶이라는 걸 새삼스럽게 동감한다. 어린이와 손잡고 걷고 있는 하얀색 옷 입은 야무진 부인. 어디에도 가지 않는다.이카이노의 집에 바로 돌아갈 것이다“고 열어뒀다.
김석범 작가에게 그 때 그곳은 “언젠가는 고향에 돌아가겠다는 전제가 있었던 타국살이. 동향인을 중심으로 조선인이 모여 사는 지역에는 자연스럽게 소규모이기는 하지만 조선시장이 형성되었고 이국땅에서 동포의 생활을 묶어 내는 마당“이었다. 그리고 어느 시대로 한정하지 않은 ‘자이니치의 역사’라고 평한다.
그 안에서 치열하고 살아남은 이글 중 여성, 해녀의 흔적이 오롯하다.
지난 제주4·3 70주년 위령행사 뒤 비공식적으로 진행했던 ‘백비’행사에서 눈물을 흘리던 김석범 소설가를 아직 기억한다.
“아직 4·3은 정명(正名)을 못하고 있습니다. 이름 바로 짓기, 역사 바로 세우기, 내외 침공자에 대한 정의의 방어 항쟁이 왜 이름 없는 무명비로 제주 평화공원 기념관에 떳떳한 이름을 새기지 못한 채 아직 고요히 누워 있습니까? 이름 없는 백비 에 정명을 해서 바로 세워야 합니다. 왜 70년이 되었는데도 아 직 정명을 못하고 있는가? 4·3역사 바로 세우기, 자리 매김을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90을 넘간 나이가 무색한 단호한 어조는 쟁쟁 심장에 박힌다.
““4·3평화기념관의 백비는 세워야 한다. 20년 가까이 누워 있다. 비석은 실내에 안치하는 것이 아니다. 바람을 맞고 햇볕에 쪼여야 한다. 4·3이 죽었나? 살아났다면 살아난 증거로 비석을 세워야 한다.”(2018년 ‘김석범을 만나다, 4·3 70년을 말한다’중)
김시종 시인의 펜 끝 역시 단단하다.
“세기는 이미 바뀌었다는데/눈을 감지 않으면 안 보이는 새가/아직도 기억을 쪼아 먹으며 살고 있다./영원히 다른 이름이 된 너와/산자락 끝에서 좌우로 갈려 바람에 날려간 뒤/4월은 새벽의 봉화가 되어 솟아올랐다://짓밟힌 진달래 저편에서 마을이 불타고/바람에 흩날려/군경 트럭의 흙먼지가 너울거린다./초록 잎 아로새긴 먹구슬나무 밑동/손을 뒤로 묶인 네가 풍개진 얼굴로 쓰러져 있던 날도/ 흙먼지는 뿌옇게 살구 꽃 사이에서 일고 있었다.// 새벽녘 희미하게 안개가 끼고/봄은 그저 기다릴 것도 없이 꽃을 피우며/그래도 거기에 계속 있던 사람과 나무, 한 마리의 새,/ 내리쬐는 햇빛에도 소리를 내지 않고/계속 내리는 비에 가라앉아/오로지 기다림만을 거기 남겨둔/나무와 목숨과 잎 사이의 바람.//희미해진다./옛사랑이 피를 쏟아 낸/저 길목, 저 모퉁이,/ 저 구덩이/ 거기에 있었을 나는 넘치도록 나이를 먹고/개나리도 살구도 함께 흐드러지는 일본에서 배딱하게 살고/ 확장하게 해는 비주어 사월은 다시 시계(755주) 를 물들이며 돌아 나간다./나무야, 흔들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나무야. 이토록 봄은 무심하게/회오를 흩뿌리며 되살아 오누나“ (4월이여, 먼 옛날이여 중)
그리하여 무엇을 챠율 후 있을까의 답은 6월 29일까지 제주문학관에서 찾을 수 있다.
-소설가 김석범은 대하소설 ‘화산도’로 1983년 아사히신문 오사라기 지로상과 1998년 마이니치 예술상을 수상했다. 1957년 ‘까마귀의 죽음’을 시작으로 ‘땅 밑의 태양’, ‘과거로부터의 행진’ 등 제주 4·3의 진실을 탐구한 작품을 발표했다.
-시인 김시종은 1986년 ‘재일의 틈새에서’로 마이니치 출판문화상, 1992년 ‘원야의 시’로 오구마히데오상 특별상, 2011년 ‘잃어버린 계절’로 다카미준상을 받았다. 1955년 ‘지평선’ 발표 이후 4·3의 진실과 재일제주인으로서 실존을 탐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