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소한 제주 일상 : 설 전날 이야기
1.
어느새 루틴이 되어버린 설 전날.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뒤 차례상 규모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만큼 준비 시간에 여유가 생긴다. 이번에도 슬쩍 늦잠을 자고 일어나 엄마의 ‘도톰하게’ 미션을 성실하게 수행했다.
이럴 땐 칭찬이 덤으로 온다.
“전은 잘하네.”
비교군이 여동생과 나, 단 둘뿐이라 기준이 모호하지만 그래도 칭찬만큼 달콤한 건 없다. 우쭐해진 내 한마디에 엄마가 툭 한마디를 보태신다.
“딸을 낳았어야 했는데….”
“어휴, 말라~”
“딸이면 예쁠 수도 있잖아.”
“아이고, 말라~ 뜻대로 안된다”
역시 엄마의 한 방은 묵직하다. 낳고 기르는 건 딸이든 아들이든 쉽지 않다는 걸 새삼 상기한다. 다섯이나 키워낸 엄마 말씀이니 토 달지 않고 믿는다. 그나저나 내가 부쳤지만 전이 참 곱기도 하다.
2.
오래 자리를 지킨 동네 목욕탕으로 향했다. 분명 서둘렀는데도 꽤 북적인다. 탕 안을 채운 어머니들의 대화 속에서 요즘 명절의 세태가 느껴진다. 차림을 줄이고 가족끼리 딱 한 끼 식사할 것만 챙기다 보니 대충 이 시간에 오게 되더라는 이야기들.
코로나 팬데믹 때문이라고 하시면서도 아쉬운 기색은 없다. 다만, 코로나 시국에 생이별했던 손녀를 데리고 온 어느 어머니의 표정만은 유독 환했다.
연세가 지긋해 보이는 어머니 한 분을 가볍게 도와드렸다가 SNL 수준의 입담에 빵 터지고 말았다. 물바닥이 미끄러울까 신경 쓰여 온탕에 계시는 내내 곁을 지켰다.
“며느리보다 낫다”, “착하다” 하시는 걸로 충분하다 싶었는데, “내가 올해 아흔둘 됐다”는 말씀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머, 절대 그 연세로는 보이지 않으세요.”
‘곱게 늙으셨다’는 감탄을 숨 쉬듯 뱉었다. 그러고는 탕에 나란히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낄 틈이 없어 거의 어머니의 독무대였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설 준비하느라 마트에 갔는데 제수용품 코너에 혼자 된 듯 보이는 중년 남성들이 그렇게 모여 있더라는 것. 어찌 됐든 차례 준비를 하는 정성은 좋게 봐야겠지만, 왜 그리 추레한 차림으로 어슬렁거리는지 영 거슬리셨던 모양이다.
“어디 괜찮은 사람이 있으면 덥썩 데려다 살기라도 했을 텐데, 이것저것 눈에 차지 않아….”
한 번 안 웃으시는 샤침한 얼굴과 걸쭉한 입담에 한참을 쿡쿡 웃었다.
3.
요긴하게 쓰던 주방 장비 하나가 탈이 나서 늦은 저녁 마트로 향했다. 인파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라 한산했지만, 덕분에 평소엔 지나쳤을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눈앞에서 마주친 세 쌍둥이네 가족도 그중 하나다. 올망졸망한 꼬마들을 이끌고 젊은 부부가 고군분투 중이었다. 한창 호기심 많고 제법 말귀도 알아듣는 듯싶지만, 결국엔 통제 불능인 아이들.
“누가 그렇게 했지?”, “소리 지르면 안 돼요.”
같은 말을 최소 세 번은 반복해야 하는 사이, “아빠 왔다!” 하는 엄마의 외침이 마치 “나 살았다!”는 구조 요청처럼 들린다. 결국 아이들 전부를 쇼핑카트에 붙들어 뒀지만 이내 이탈자가 발생한다. 정말이지 심심할 틈이 없는 풍경이다.
그 소란 사이로 종종걸음 치며 장바구니를 채우는 이가 보였다. 산적용 소고기에 나물 몇 가지.
저녁이라기보단 밤에 가까운 시간. 한눈에도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행여 빠진 게 있을까 장바구니를 뒤적이는 모습. 저이의 이 밤은 아주 길겠구나 싶다.
4.
모두가 같은 명절, 같은 하루를 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목욕탕에서 만난 그 유쾌한 할머니는 우리 엄마와 사우나에서 매일 만나는 사이셨다. 이 동네로 이사 오고 나서 엄마를 잘 챙겨주시던, 동네 어귀에 사시는 분이라고.
할머니는 사별 후 얼마 전 아들마저 앞세우셨다고 했다. 며느리와 단둘이 살고 있지만, 슬픔을 회복하는 속도가 달라 거의 혼자 다니신다고 한다. 그래도 게이트볼도 치고, 사우나도 다니며 스스로를 ‘관리’하면서 버티고 계시는 것이었다.
그 유쾌한 농담 뒤에 숨겨진 무게를 알게 되니 마음이 먹먹하다. 할머니에게 설은, 그리고 나에게 설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