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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미 Jun 04. 2022

"제주에선 무슨 결혼 잔치를 5일이나 해?"

그냥 제주 살아요 -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 '가문잔치'

제주에서 ‘결혼’의 의미에서부터 생활력이 명문가나 학벌에 앞선 던 신부의 조건, 결혼 일주일 전 택일 된 날과 혼례 준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납체 예장과 옷감 한 필을 들고 신부의 집을 찾아가는 막펜지(막편지)로 가름하던 약혼 풍습 등은 씬스틸러다.
길게는 무려 5일이나 진행했던 잔치 얘기가 주인공이다. 결혼 잔치에 돼지고기를 사용하는 풍습이 있던 터라 제주에서는 자식이 혼기에 접어들 즈음 일부러 돼지를 길렀다. 통시(돼지를 키우던 재래식 화장실) 하나에 돼지 두 마리를 키우고 한 생에 다섯 번 새끼를 낳는 습성에 맞춰 가장 육질이 좋은 때를 맞추기도 했다. 혼·상례를 위해 쌀 한 두말씩 모아주는 쌀계나 그릇을 한꺼번에 모아 두고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돌려쓰는 그릇계도 있었다.


후배에게서 청첩장을 받았다. 연한 핑크색 봉투 안 가지런히 적힌 글들에 “좋아요/좋다고 하니 나도 좋다”하는 나태주 시인의 짧은 시가 묻어난다. 코로나19로 지난 2년 뜸했던 것이라, 나중 사정이야 어찌됐든 그만 반가웠다. 세상 행복한 얼굴로 곱게 단장한 커플 사진을 SNS에 공개한 것도 봤다. ‘좋을 때다’하다가 서둘러 말을 접었다. 그냥 부러운 정도로 나이도 누르고, 부러움도 눌렀다. 언제였는지 이제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눈부셨을지도 모를 내 그 때의 잔흔도 눌렀다.

제주 고양부가 탄강했다는 삼성혈
제주 삼선인이 벽랑국 공주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는 혼인지
혼인 후 첫날밤을 치렀다는 신방굴 입구. 혼인지 인근에 있다.


# 삼성신화의 큰 줄기도 '혼례'

이제는 따갑기까지 한 햇살 사이로 제주특별자치도민속자연사박물관(이하 박물관)을 향했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응원했던 어느 작가의 전시와 제주 결혼문화를 소개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는 참이다. 특별한 볼 일이 있어서 들른 참이었지만 나름 일석삼조를 노렸다.

제주의 결혼문화는 특이하다. 우주 삼라만상이 등장하는 창조신화를 잇는 건국신화(삼성신화)는 상당 부분 혼례와 연결된다. 태초에 사람이 없던 섬에 한라산이 신령한 화기를 내려 기슭에 있는 모흥이라는 곳에 삼신인이 동시에 탄강한다. 삼성혈이라 하여 3개의 지혈에서 탄강한 성인은 고·양·부라는 세성씨의 시조다. 가죽옷을 입고 사냥을 하는, 원시 수렵 생활을 하던 삼성성인은 동해 벽랑국에서 목함을 타고 온 세 공주와 만나 부부의 연을 맺는다. 삼성혈 외에 삼성신화를 살필 수 있는 연혼포(세 공주를 맞이한 해변), 혼인지(혼례를 위해 목욕제계를 한 연못), 신방굴(첫날밤을 보냈다는 동굴), 사시장올악(도읍을 정하려 활을 쏜 봉우리), 삼사석(화살이 박혔던 돌) 등만 봐도 혼례의 의미가 얼마나 중요했는지 알 수 있다. 보다 유심히 살펴야 할 부분은 벽랑국 공주와 함께 목함에 실려 온 말과 소, 오곡 종자가 이전 신선에서 인간, 그리고 원시 수렵 사회를 농경사회로 이끌어 왕국의 틀을 잡게 했다는 내용이다.

이후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면서 결혼 문화도 달려졌다. 섬이라는 지리환경적 배경도 타 지역과는 뭔가 다른 ‘제주만의’의 특성이 된다. 삼국시대는 어땠고, 고려나 조선 시대의 특징이 어땠는지 두루 알 방법은 없다. 다른 통과의례들과 달리 유행에 가장 민감하고 변화무쌍한 것이 혼례 아니던가.     


#돗(돼지)잡는 날부터 5일 대장정

박물관 수눌음관 특별전시실에 꾸려진 ‘가문잔치’전은 5월 가정의 달과 박물관·미술관 주간(5월13~22일)을 기념해 제주문화원과 공동으로 기획했다. 제주문화원은 지난 2017년 어르신문화프로그램 ‘혼디 어우렁’ 축제 일환으로 1970년대 중반 선흘리에서 행해졌던 가문잔치를 재현했다. ‘1975년 양기택씨 부부 제주도 조천읍 선흘리 가문잔치’는 이듬해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영상과 사진집으로 기록됐다. 제주문화원 문화대학 과정 중 장년 학생들이 장롱 구석에서 꺼낸 자료도 꽤 된다.

전시 제목이자 주제인 ‘가문잔치’는 1950~1980년대 제주에서 성행한 독특한 결혼 풍습으로, 친지들이 신랑·신부의 집에 모여 3일간 잔치를 치르는 것을 말한다.

제주에서 ‘결혼’의 의미에서부터 생활력이 명문가나 학벌에 앞선 던 신부의 조건, 결혼 일주일 전 택일 된 날과 혼례 준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납체 예장과 옷감 한 필을 들고 신부의 집을 찾아가는 막펜지(막편지)로 가름하던 약혼 풍습 등은 씬스틸러다.

길게는 무려 5일이나 진행했던 잔치 얘기가 주인공이다. 결혼 잔치에 돼지고기를 사용하는 풍습이 있던 터라 제주에서는 자식이 혼기에 접어들 즈음 일부러 돼지를 길렀다. 통시(돼지를 키우던 재래식 화장실) 하나에 돼지 두 마리를 키우고 한 생에 다섯 번 새끼를 낳는 습성에 맞춰 가장 육질이 좋은 때를 맞추기도 했다. 혼·상례를 위해 쌀 한 두말씩 모아주는 쌀계나 그릇을 한꺼번에 모아 두고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돌려쓰는 그릇계도 있었다.


혼례에 앞서 보내는 이바지 물품 중에도 돼지가 있었다. 돼지 한 마리(또는 돼지 다리 1개)와 닭 4~10마리, 달걀 100개, 술 1통 등등의 물품을 얼마나 보냈는지로 말썽이 일기도 했다.

결혼은 혼례 이틀 전 ‘돗(돼지)잡는 날’로 시작한다. 을의 장정 여럿과 어른들이 힘을 합쳐 잔치에 쓰일 돼지를 잡기 때문에 온 마을이 떠들썩하다. 추렴한 돼지고기는 잔치 음식으로 요긴하게 쓰인다. 돼지잡기가 끝나면 술을 나누고 다음날까지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음식 장만으로 분주하다.

결혼 식 하루 전인 가문 잔치는 결혼식 전날 가까운 친척들이나 이웃들이 모여 결혼식 준비를 하고 집안 경사를 나누는 일종의 공동체 문화다.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던 시절 ‘고깃반’을 받을 수 있는 기회라 너나없이 밝은 표정으로 몫을 나눴다. 잔치음식 준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이 고깃반을 다루는 도감이다. 지금은 없어진 ‘두불밥’도 글로만 봤다.

추렴한 돼지고기는 가문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골고루 고깃반으로 나눠졌다. 그 역할을 하는 도감은 고기에 대한 정보도 많아야 했지만 공동체 균형을 위한 능력도 인정받았다.


# 그시절 추억이 방울방울

신부댁 잔치라고 해서 신부가 혼례 준비를 하는 동안 신랑상을 받고 신랑측 상객이 신부 부모와 차례로 인사를 하는 ‘사돈 열명(맹)’을 하는 풍습도 있었다.

제주에서는 또 전안례나 혼인식, 신방 엿보기 등이 없는데다 혼례 후 이틀을 묵고 신랑과 함께 시가로 들어가는 삼일우귀(三日于歸) 풍습이 없고 대신 혼례날 밤 마을 청춘들이 모여 노는 뒤풀이에 부신랑·부신부라는 역할이 있다. 혼례를 치른 뒤 이틀 동안 사돈잔치가 열리는 등 말 그대로 큰 일이었다.

흑백과 색바랜 칼라 사진들 속의 혼례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사모관대 신랑과 족두리를 쓴 신부가 등장한다. 1959년 구좌읍 하도리에서 처음 치러진 서양식 결혼식에는 곱게 단장한 화동도 등장한다.

신부를 데려가려고 불러온 택시는 1966 5 국내에서 출시한 ‘코로나자동차다. 1972 11월까지 44348대가 생산된 ‘슈우퍼 앞에서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한참을 머문다. 아내는 ‘코로나?’하는 단어에 잠깐 반응(왜 하필 하는 어감이다)하고는 이내 고깃반이 올려진 상과 오래된 경대에서  기억을 떠올린다. 부부의 뒤를 따라 반응을 살피는 동안 덩달아 가슴이 두근거린다. 사람 사는 것이  그렇지 싶다.


먹고 살기 힘들었다면서 가문잔치까지 몇 날 며칠 판을 벌일 수 있었겠냐 싶지만 그래서 더 떠들썩하게 잔치를 했어야 했다. 지금처럼 쉽게 만날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고 아는 이의 소개나 이웃 동네에 사는 이성과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던 터다. 4.3과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마을이 해체되거나 사라진 뒤 다시 모였던 과정 속에서 ‘괸당(친족)이 된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일 수밖에 없다. 모처럼 고기를 나눠 먹는 자리에 필요한 참여인원과 역할을 배정했다는 점은 유대 강화와도 연결된다. 딸도 팔고, 아들도 팔면서, 왁자하게 잔치를 벌였다고는 하지만 정작 살고자 했음이 간절하게 드러나는 의식이 아니었을까.

전시는 9월말까지 만날 수 있다. 생각보다 글을 많이 읽어야 하는 구성이기는 하지만 볼거리도 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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